日 신문에 ‘한글’ 대제목
  • 도쿄 ·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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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교포 생활소개 기사에 ‘이웃사람’ 타이틀

일본의 일간지 중에서 가장 권위있는〈아사히(朝日)신문〉이 재일교포 사회의 생활상을 소개한 연재기사의 타이틀을 직접 한글로 ‘이웃사람’이라고 표시해 큰 화재를 모으고 있다.

 일본의 일간지로서는 처음으로 한글타이틀을 내건〈아사히 신문〉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규슈에 4개의 지역본사를 설치, 각 본사가 독자적인 편집권을 갖고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이웃사람’이란 연재기사가 실린 곳은 그중 오사카본사에서 발행된 오사카版〈아사히신문〉. 이 신문은 우리 교표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이카이노(猪飼野)지구’를 지난 4월23일부터 5월10일까지 10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교토에 있는 ‘우투로지구’교포들의 생활상을 7월4일부터 7월7일에 걸쳐 세차례 보도했다.

 어떤 경위로〈아사히신문〉이 한글타이틀을 내건 것일까. “그것은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 연재기사를 담당한 〈아사히신문〉오사카본사 사회부의 우에무라 다카시(植村 降·32) 기자는 이렇게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올해로 기자경력 8년째가 된다는 그는 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전후 4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일본은 전후 문제의 청산을 완결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구조적인 차별의식은 45년이란 시간이 경과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합니다. 따라서 재일한국인이 왜 존재하고 있는가를 일본사회에 다시한번 묻기 위해서 일부러 한국말타이틀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에무라 기자는 87년 여름부터 1년 동안 연세대학 한국어학당에 유학한 경력을 갖고있는 이른바 ‘知韓派 일본인’. 그는 이 인터뷰에 전부 한국어로 응대할 정도로 우리말이 유창하고 지금 담당하고 잇는 분야도 재일한국인 문제라고 한다. 그는 그렇다치더라도 한국·한국인·한국어에 대해 아직도 상당한 거부감이 잔재하고 있을 일본사회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

 우선 그가 소속해 있는 사내의 반응부터 물었다 “〈아사히신문〉은 이전부터 재일한국인의 인권문제에 관해 큰 관심을 갖고 이를 보도해왔습니다. 이번 연재기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됩니다. 따라서 한글타이틀에 대한 사내의 반발은 전혀 없었죠.” “일본신문은 기사제목에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한국관계 연재기사에는 한글을 써보자는 발상이 나온 겁니다.”

 우에무라 기자는 이 연재기사가 나간 후 일본인으로부터 항의전화는 딱 한건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그 내용은 “왜 일본신문이 한글을 사용하느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글타이틀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의외로 적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풀이한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價)지방에는 옛부터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재일한국인의 약 절반이 이 직역에 거주하고 있지요. 따라서 이 지방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이웃의식’도 어느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이웃사람’이란 연재기사의 무대가 된 오사카市 이쿠노(生野)區는 전체 주민 16만명 중 재일교포가 4만명이나 된다. 4명 중 1명이 우리 교포들인 이 지역은 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고 있으며 여행자유화 이후 한국에서 몰려들고 있는 단기체재 노동자 1만5천명까지 합치면 가히 ‘일본 속의 한국’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 중심부에는 통칭 ‘이카이노’라고 불리는 한국인 상점가가 있으며 〈아사히신문〉은 이를 “김치·파전냄새가 풍기는 서민의 거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곳의 한국인 밀도는 더욱 높아 2명 중 1명이 재일교포 내지는 단기체재 한국인노동자들이며 일본어를 몰라도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 곳이다.

 

교포 2·3세 ‘일본인화’ 문제점 지적도

 ‘이웃사람’이란 연재기사는 이 이카이노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오늘의 생활상을 기록하고 있다. ‘빈곤과 차별이 교차하는 거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카이노지구는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온 1세, “우리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교포인’이라는 2·3세, 본국에서 몰려들고 있는 신한국인들이 혼재하고 있는 거리다.

 빈곤과 차별에 맞거 이를 악물고 밤낮으로 딸흘려 온 이카이노지구의 1세들은 이제 그 수가 약 1할로 줄어들고 있다. 아쿠타가와(茶川)상을 수상한 李良枝씨의 소설 《由熙》의 주인공처럼 일본에서의 차별, 본국으로부터의 소외라는 이중의 벽에 직면하고 있는 2·3세들. <아사히신문>은 이교포 2·3세들이 민족성을 읽지 않기 위해 매년 10월이 되면 ‘生野민족문화제’를 개최한다는 사실과 지난 4월에는 근처의 공원에서 봉산탈춤을 공연한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인과 결혼하는 2·3세들이 연간 7천6백명에 달해 10명 중 6명이 일본인을 배우자로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2·3세들의 일본인화 현상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점가 한복판에서 만난 중년의 재일교포 남성은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라고 한글타이틀에 대한 감상을 토로했다. 그러나 “재일교포들을 진정한 ‘이웃사람’으로 보는 일본인들은 지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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