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석기 시대 암각화展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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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瑞之, 옛문양 되살려

거석기념비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바위덩어리 전시회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려 일반인들의 호기심어린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12월24일까지 경희궁 공원(구 서울고등학교)에서 열리는 ‘岩刻???전시회가 그것이다. 특히 작가 李瑞之씨(57)는 판에 박은 미술수업을 떠나 ??독학??으로 자기 세계를 확립한 국외자라는 점에서 화단가에 화제를 뿌렸다.

 크게는 높이 3m 너비5m나 되는 큰 돌 21점이 강강술래하듯 공원을 둘러싸고 있어 조물주의 천진난만한 돌장난을 보는 듯하다. “모든 것이 축소화는 전자문명 속에서 신석기시대의 거석문명을 보여주고 있다??는 許英桓(성신여대?미술사)의 설명이 이런 시각을 대변한다.

 굉음과 돌가루 날리는 경기도 포천의 채석장에서 깨낸 모양좋은 돌덩어리에는 단청에서 흔히 보는 십장생·천도복숭아·탈·와당 들이 굵고 분명한 선으로 물결치듯 새겨져 있다. 그의 섬세유연한 線條美는 작가가 풍속화에서부터 갈고 닦아온 선을 조각에 투영시킨 것이다. 충청도 시골 작은 동네에서 자란 이씨는 산지기 집·행랑채 등에 둘러싸인 채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제1회 풍속화전??(72년)으로 화단에 데뷔했다.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천시되던 풍속화를 외형적이나마 고집스럽게 이뤄내었다 해서 하루아침에 화가로 데뷔한 이씨는 그 이후 ??단청의 현대화를 위한 시도전(87년)??으로 세인의 눈길을 모으더니 이번에는 암각화에까지 장르를 확장시킨 것이다. 미술평론가 金福榮씨는 ??풍속화와 단청화에서 그가 추구한 선의 표현이 돌의 인각선에서 재확인되고 있다??면서 성공적인 변신에 찬사를 보낸다.

 전통 문양을 가지고 한국적 조각으로 발전시킨 이씨의 작품은 현대 조각의 형태가 무엇인지 모른 채 서구 일변도로 조형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일단은 ‘반갑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참신한데 거창한 작업치고는 단순한 도안화에 그치고 말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특히 작가 자신이 이번 작품들을 ??돌의 결을 따라 바위에 그린 그림이므로 岩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데서 비판의 소리는 더욱 큰 것 같다.

 경희대 사학과 黃龍渾교수(고고학·미술사연구소장)에 의하면, 암각화란 신에게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전달부호??로서 주술적 성격을 띤다고 한다. 이씨의 암각화에서 주술적 성격은 거의 드러나지 않아 보인다. 작가 역시 ??옛 것 재현작업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미술이 암각화 재현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예술로서의 승화를 위해 그 혼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어야 했다고 미술계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점심시간마다 공원을 찾아온다는 柳美淑씨(28·회사원)는 “우둘두둘한 화강암조각이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면서 조각공원안에 영구히 보존되기를 바랐다.

 대중적 기호와 문화적 평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대중적 기호에 부합된다고 해서 미술사적 평가의 대상의 되지는 않는다. 또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순을 앞두고 머리에 흰 서리가 많이 내린 이씨의 이번 전시회가 잔근심으로 찌든 현대인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훑어준 ‘거석문화??의 서곡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잊혀져가는 전통의 ??틀??을 재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의 시각에서 그 ??혼??을 살려내는 작업으로 진입해야 진정한 ??큰돌 미술??의 오케스트라가 창출될 것??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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