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대통령의 기준을 말한다면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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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南다코다州에 있는 라쉬모아山, 산봉우리를 이루는, 웅대한 대리석을 새겨 만든 彫像넷이 하늘에 솟아 있는 높이 1천7백45m의 산, 우리나라 지리산 정도의, 그러나 거대한 바위덩어리의 산이다. 그 산 정상의 바위를 깎아 새긴 얼굴의 길이가 15m. 규모에 있어 물론 세계 제일이다. 역사책에서 낯익은 이집트의 ‘기자의 스핑크스’얼굴 길이의 두 배쯤 된다. 매사에 ‘넘버원’을 자랑하는 미국의 긍지라 할까.

 라쉬모아山上 石像의 주인공은 조지 워싱톤,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리햄 링컨 및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 건국의 아버지요,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요, 노예해방의 기수요, 해외진출의 키잡이였다. 나라를 만들고, 다듬고, 분열을 막고, 웅비시킨 지도자들이다. 山上石像을 만들기 위해 조각가 구추온 보르글럼은 1927년부터 14년간이나 작업하였고, 끝을 맺지 못하고 순직하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완성하였다.

 

국가운명을 앞장서 결정짓는 강력한 리더십

 그들은 라쉬모아山上에 모시게 한 위대함의 본질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의 비결은 무엇인가. 우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주의자들이었다. 전체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명실상부한 나라의 어른이요, 스승이요,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남다른 구체적 자질, 그러니까 미국대통령으로서 후세에까지 존경을 받게 만든 자질은 무엇일까. 다시 라쉬모아국립기념비에 추가되어야 할 대통령이 있다면 그 평가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몇해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역사는 그들의 업적을 다음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그 하나는 예상치 않은 것(the unexpected)에 대응하는 능력이요, 두번째로 예상치 않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상치 않은 것이란 예고 없이 밀어닥치는 위기상황을 말한다. 예컨대, 턱 밑의 쿠바에서 소련의 미사일이 미국을 겨누고 있는 사태라든가, 이란 혁명시 미국대사관점령 사태라든가, 그런 상황을 단호하게 그러나 지혜롭게 극복하는 판단력과 결단력이다. 대통령이 반드시 어렵고 복잡한 문제의 전문가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단, 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과 답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성이 있어야 하고, 좋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보좌관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대처해야 할 문제의 겉과 안을 동시에 식별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예상치 않은 것’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은 좀 다른 것이다. 위대한 대통령이 그의 뜻을 이루자면 반드시 민심의 흐름과 역사의 진로에 거역치 않고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무엇을 이룩하려 하는가의 목적의식과 역사의식이 분명치 않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한번 백악관에 들어서면 순간순간 대처해야 할 수 많은 문제에 매몰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함은 ‘예상치 않은 것’을 성취하는 데 절대 금물이다. 이상 두 가지 자질을 갖춘 대통령, 그는 일을 추진하는 데 남다른 조직력이 있어야 겠고 명석한 두뇌와, 무엇보다도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이룩하느냐에 대한 설계도가 머리속에 있어야 한다.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들에 있어 공통된 요소를 다시 정리하자면,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역사의식이 뚜렷하고 민심의 흐름을 바로 인식하는 가운데 단호하게 국가운명을 앞장서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영구의 처칠수상이나 프랑스의 드골대통령도 이 범주에속하며 그들이 미국인이었다면 족히 라쉬모아국립기념비 대열에 끼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정은 어떠한가. 가령, 설악산의 어느 높은 바위봉우리를 깎아 얼굴을 새겨, 자손만대가 우러러보게 할,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있었는가. 아직 45년이란 짧은역사의 탓도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역사상 영웅을 갖지 못했다. 우리 마음속에 신화를 남긴 대통령이 없었다. 李承晩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세웠고 6·25전쟁을 이겨내 ‘건국의 아버지’로 숭앙받을 수도 있었고, 朴正熙대통령은 농업사회를 공업사회로 바꿔놓는 데 견인차 역할을 맡아 ‘민족중흥의 기수’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심의 흐름과 역사의 진로에 거역하다가 끝내는 비운에 가고 말았다. 尹潽善대통령은 아예 시비의 논의대상 밖이겠고, 全斗煥대통령은 아직도 유배생활 속에 있다.

 


盧대통령은 뚜렷한 비전과 설계도를 갖고 있는가

 지금의 盧泰愚대통령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역사의 평가는 먼 훗날에 가야 내려지겠으나, 이른바 6·29선언 3년이 지났고 대통령임기 5년의 상반기를 마친 오늘, 그에 대한 중간평가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이 있다. 6·29선언 당시 그는 가혹한 군사통치의 제2인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용기로써 ‘예상치 않은 사태에 예상치 않은 일’을 단행하였다. 바로 그것으로 해서 그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야권분열이라는 요소와 집권당 후보가 갖는 프리미엄도 크게 작용했지만, 그러나, 그후2년반 남짓한 그의 치적이 6·29선언 당시 보여주었던 바른 판단력과 단호한 결단력으로 성공한 대통령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아닌지, 그 스스로 자문자답하여야 겠다. 실패한 대통령의 공통된 점이지만, 우유부단하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따라서 나라가 방향감각을 잃고 조타수 없이 大海를 표류하여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그런 리더십 결여의 대통령인지 아닌지, 역시 그 스스로 자문자답하여야 겠다.

 그러나, 남은 2년반의 임기 중 무엇을 이루려는지, 어떻게 이루려는지 뚜렷한 비전과 설계도를 갖추고 있는지, 실로 불안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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