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곱사등 된 증권사 직원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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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증권사는 초상집 분위기다.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한탄한다. 영업직원은 더 괴롭다. 얼굴이 흙빛이다. 고객의 원망과 위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ㅎ증권 ㄷ지점 대리 ㅂ씨(31)는 자신의 일에 환멸마저 느낀다. 고객의 손실을 변상하려고 13평짜리 아파트를 처분해 손실액의 반인 4천만원을 변상하고 나니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난해 9월부터 1억5천만원으로 거래를 해오던 고객 ㅇ씨에게 일임매매를 부탁받고 대용으로 3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인 것이 화근이 댔다. 주가가 계속 빠져 3월초에 손절매를 했으나 7천만원의 원금만을 건질 수 있었다. 이 고객은 “8천만원의 투자손실을 물어내라” 닦달하더니 급기야 본점과 증권감독원에 투서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ㅂ대리의 경우는 어쩌다 일어난 분쟁사건이 아니다. 규모나 상황만 조금 다를 뿐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분쟁의 원인이 된 일임매매는 사실 오래된 증권사의 영업관행이다. 호황기였던 지난 몇년간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 전혀 분쟁의 소지가 없었다. 증권사직원이 사례비조로 떡고물을 받았다는 것도 알려진 일이다.

 문제는 장이 계속 빠지기 시작한 작년 4월 이후부터 생겨났다. 이른바 ‘터지는 금액’이 많아진 것이다. 집 팔아 변제해준 것은 좀 심한 경우이지만 몇백만원을 물어준 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 증권사 직원은 말한다.

 일임매매를 둘러싼 이 분쟁에는 하나의 전형이 발견된다. 증권사의 직원과 고객의 유대관계는 견고하다. 1~2년 거래하다보면 서로 정이 들고 신뢰를 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장이 좋아 이익을 올린 것이 이 밀월관계를 더욱 강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장이 빠지기 시작할 때도 처음 얼마간은 손실이 양해가 되지만 손실액이 20~40%쯤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떻게 투자했길래 이렇게 되었느냐”고 노골적으로 원망하기 시작한다.

 여기도 또하나 악수를 만난다. 주식으로 주식을 살 수 있게 한 대용제도의 허용이다. 주가가 올라주면 어느정도 만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오를 줄을 몰랐다.

 손실폭이 커져 고객이 자꾸 항의를 하자 증권사 직원은 “어느 시점까지 되지 않으면 책임진다”는 실언을 하고 만다. 이것이 결정적 덜미가 된다.

 증권사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ㄷ증권은 깡통이 된 문제구좌에 대해 “책임지고 해결해라”는 직원들의 각서까지 받았다고 전해진다. 고객과 회사 사이에서 ‘안팎 곱사등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사주를 받아 거액을 챙길 수 있는 시절도 지나갔다. 증권주 가격이 50% 가까이 떨어져 자기 회사주를 사기 위해 회사에서 돈을 꾼 직원들은 죽을 맛이다. 우리사주가 ‘노비문서’라는 자조도 튀어나온다.

 일임매매는 명백한 불법이다. 증권거래법상 종목 등 아주 까다로운 단서를 달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거의 금지와 다름없다. 억울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반 이상은 증권사 직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분쟁의 위험이 있는데도 일임매매를 계속하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증권사간의 무리한 약정고(매매체결거래액)경쟁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당국인 증권감독원은 이 문제에 대해 “수시 감시사항”이라고만 말한다. 근절책에 대해선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李鎭茂부원장은 “매우 예민한 문제”라고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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