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뜯어고쳐야 증시 거듭난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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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침체 계기로 ‘창업자 과보호’등 부조리 개혁요구 높아

주가지수는 당분간 6백선 맴돌듯…중동사태가 변수

 증권시장은 장기침체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8월30일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 내용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판단되자 그날 주가는 다시 20포인트나 뚝 떨어졌다. 그 직전 27·28일 이틀간 6백40선까지 힘차게 치솟았던 주가가 자율반등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司正중단으로 큰손의 장세개입이 시작됐다는 설 등이 나돌았으나 반등장세의 원인이 불명확해 앞날의 예측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요즘 증권가에서는 두사람만 모여도 증시회생책을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한사람은 이지경까지 버려둔 정부를 성토하며 빨리 자금지원을 하는 등 획기적인 부양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급조절을 통해 시장여건을 호전시켜야 한다는 중장기대책을 말한다. 지금이 보통 때냐, 6백선 이하로 다시 침몰할지도 모른다, 한가한 소리 그만하라고 반론이 즉시 나온다. 중장기대책론자도 위기 강조론에 다소 주춤해진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데 있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닥점이 안보여 더욱 불안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주식값은 최고점(1천7.77포인트)이었던 지난해 4월1일에 비해 40%나 떨어졌다. 올해초에 비해서도 30% 이상 하락하여 장기침체기간이 1년5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다. 7백선이 무너진 지 불과 40일만에 6백선이 무너졌고 겨우 회복한 6백선이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과거에도 장기침체 국면은 세차례나 있었다. 주가는 폭락할 수도 급등할 수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침체국면은 예전보다 하락폭이 크다는 데 특징이 있다. 여기다 아직 바닥점이 확인되지 않아 증시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8월초까지만해도 증시는 바닥권에 대한 공감대가 제법 형성돼 대세하락 국면을 벗어나는 듯했다. 이 떠오르는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이라크의 후세인이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대형악재는 한국증시를 강타, 주가를 1백포인트 이상 곤두박칠치게 만들었다. 물론 중동사태로 세계증시도 일제히 폭락장세를 보였다. 지난 달 27일 현재 일본과 대만증시가 각각 연초대비 35%, 70%씩 하락했고 미국 서독증시도 각각 7%, 9%의 하락률을 보인 것이다.

 증시의 흔들림은 증시내적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어 그 심각성이 더하다. 우선 증시에 발을 들어놓은 투자인구가 직접투자자들만도 5백여만명, 간접투자자들까지 합치면 8백여만명이나 된다. 이들이 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입은 손실규모는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인당 2백31만원 꼴이다. 파장은 이러한 재산상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자산감소, 저축감소, 투자감소, 실물경제 위축이라는 연쇄적 파급 효과를 부른다.

 증권 투자신탁 등 증권관계기관의 어려움도 심각하다. 고객예탁금 격감과 주식형수익증권의 환매(만기 전에 중도 해약하는 것)사태는 이들의 자금난을 가중시킨다. 또 산업자금조달 창구로서의 기능을 위협해 기업은 자금난에 봉착한다. 기업의 은행에 대한 대출수요 증대는 금리 상승을 부르고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최근 급속한 주가의 하락에는 페르시아만 사태가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침체에는 보다 구조적인 요인이 있게 마련이다. 주가는 수급이 결정하는 것이고 보면 수급불균형에서 근본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2~3년간 주식공급이 새로 창출되는 수요보다 너무 많았다는 것이 증권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다 물량공급은 주가하락을 초래, 결국 자금을 조달해가는 상장사가 거꾸로 증시에 돈을 내야 하는(증안기금 출연) 도착된 증시현실을 만들기에 이른다.

 우리경제가 3년간의 증시 급팽창을 감당해낼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과, 신3고의 충격에 휩싸인 우리경제를 증시가 그대로 담아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더욱 악화된 까닭은 정부의 증시개입이 때마다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끝내 개입을 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증권관계자까지 있을 정도이다. 정부가 물가를 희생하더라도 돈을 풀어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12·12조치’도 결과적으로는 대주주 등 큰손들의 ‘위장분산구좌 팔기’ 잔치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증시가 비명을 지르자 정부와 정치권은 바삐 움직였다. 정부와 정치권을 몰아붙이는 구호가 연일 시위에서 등장하기도 했지만 중산층의 분노는 정권유지 차원에서 지극히 ‘악재’였다. 평민당 金大中총재가 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대통령에게 공한을 보내 증시는 정치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사실 증권가에서는 당정의 증시부양책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으며 그 움직임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었다. 좀더 큰, 강도 높은 요구에 당정은 부응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고민에 빠져있다.

 재무부가 제시한 증시안정대책은 증안기금 4조원의 조성시기를 연말에서 9월말로 앞당기고 주식매입 때 받지 못한 미수금(28일 현재 4천8백4억원)과 증권사가 돈을 꿔주고 5개월 만기가 지나도록 받지 못한 미상환융자금(7천67억원)을 증권사가 자체 처리, 이를 증안기금으로 매입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민자당은 재무부의 대책이 미흡하다고 보고 주식 액면가 분할과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법안 개정, 자본시장육성법을 입법하려고 한다. 증안기금이 소진될 경우 제2기금 조성도 촉구하기로 했다.

 

“5백50선도 무너진다” 비관론도

 이번 대책에는 신규 자금공급은 들어 있지 않다. 부양책이 나올 때마다 증권가에서는 “역시 돈 푸는 것이 효과적”이란 증시 중심적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대책에도 불만이 제기해 추가 부양책 시비가 재연될 소지가 높다. 이에 대해 고려대 李弼商교수(경제학)는 “증시대책이란 근본적으로 주식이 시장에 나와 있을 때 가격기능, 주가의 주식수급조절 기능을 더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금 많은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항은 앞으로의 주가향방에 모아지고 있다. 이번 대책이 나옴으로써 지리한 장기침체국면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전문가는 “이틀간 급등한 후 주가가 주춤해진 것을 보면 알려진 대책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면서 대책이 실제로 나와도 대세전환을 하기는 어렵겠다는 견해를 나타낸다. 페르시아만사태가 중요한 변수라는 지적을 하는 이들은 많다. 제일경제연구소 張時榮부장은 “중동사태가 장세에 이미 많이 반영되었다고 보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고유가는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끼쳐 주가도 급락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정부가 저강도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중동사태를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상황이 불투명해 자짓 약효가 듣지 않는 사태를 염려한 것이다. 조정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옆걸음을 계속하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우투자자문 沈根燮상무는 “수급불균형이 현저히 개선되고 있으나 대세전환을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조정양상을 보여 6백선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5백50선마저 무너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없지는 않다. 얼마나 떨어질 것이냐 보다는 어차피 손바뀜이 일어나는 일대개편이 불가피할 것 같다.

 바닥권이라는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주가가 이미 너무 많이 떨어진 일 자체가 기막힌 호재로 작용하리라는 관측도 없지는 않다. 제일증권 嚴吉靑영업추진부장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대세바닥은 3~4년만에 한번 오는 가장 좋은 매입시점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라며 투자심리가 증시로 돌아옴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주가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도 장기침체로 일반투자자들이 주식매입의 여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또 반등을 점치기 어려운 것은 종합주가지수 7백~8백10포인트에서 대기하는 물랼이 2억5천만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체 대기물량의35%나 된다는 점이다. 7백선으로 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시련기에 증시체질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도록 제도와 운영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음은 고무적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안정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鄭雲燦교수(경제학)는 “정부는 증시를 빠져나간 대주주의 자금을 다시 끌어들이는 정책을 써야 한다. 이는 창업주의 경영권에 대한 과잉보호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증시에서 기업취득이 불가능한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창업주와 대주주는 타인명의로 되어있는 자신의 주식거래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이는 실질적인 내부자거래이며 우리증시가 ‘내부자거래의 천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또 창업주 경영권 보호 제도는 자사주의 대량매각을 가능케 해 번번이 주가폭락의 주범으로 기능해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증시확대정책이 중산층의 재산형성을 돕는데 있다면 이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동안 일반투자자들의 ‘쌈지돈’이 대주주에게 ‘뭉치돈’으로 이전돼왔기 때문이다.

 모간 그렌겔증권 金圭淵 서울사무소장은 우리증시의 체질개선을 위해 “투자수익률에 대한 기대감의 조정, 정부에 대한 기대감의 조정, 정부가 갖는 기대감의 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지난 75년부터 89년말까지 투자수익률은 연평균 24.7%(복리개념)나 됐으나 이를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가는 비싸지만 오랜 장기침체 증시를 “증권투자를 하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위험스러운 발상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증시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악의 화원’이란 비난을 받기도 한다. 우리증시에서는 그동안 후자의 역기능이 더욱 많이 나타났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증시는 공정한 경쟁원칙이라는 자본주의 방식에 충실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또 왜곡된 시장구조 아래에서는 정부개입이 필요할 경우도 있지만 과도한 인위적 개입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1년5개월여의 장기침체가 응축된 모순의 표출이었다고 보면 결국 증시를 살리는 방안은 구조적으로 수술해나가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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