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해빙 동북아로 오는가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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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 太회의, 蘇외무순방-아시아판 ‘헬싱키체제’ 논의될 듯

페르시아만에서 터져나오는 뉴스의 홍수에 파묻혀 그다지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는 앞으로 이 지역의 정세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중요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동북아시아 3개국(중국 북한 일본) 방문과 그 기간중에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제2차 아시아·태평양국제회의가 그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9월1일 하얼빈에서 있을 예정인 錢其琛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을 시작으로 9월2~3일에는 평양을 방문하고, 9월4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개막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다. 또 9월4일부터 7일까지는 일본을 방문한다.

 고르바초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88년 9월)을 끝으로 약 2년여 동안 ‘휴지기’에 들어갔던 소련의 아시아·태평양정책이 보다 구체적인 새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소련이 현재 아·태정책에서 새롭게 제시할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을 들어 셰바르드나제의 순방외교가 갖는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소련이 현재 아·태지역에서 당면하고 있는 현안으로서 군축 및 안전보장문제, 한반도·캄보디아 등의 지역분쟁, 북방도서를 둘러싼 일·소관계 등을 꼽고 있다.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순방은 소련이 이제 이같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들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그것을 위한 탐색전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전반적인 정세와 관련해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가 블라디보스토크 회의에서 행할 개막연설이다. 아·태정책에 대한 소련의 새로운 구상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같은 연설은 고르바초프가 지난 6월의 한·소정상회담 이후 소련 극동의 캄차카반도에 들러 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캄차카연설’은 불발로 끝났다. 이후 소련 고위관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셰바르드나제가 이 회의에 참석, 획기적인 내용의 연설을 할 것이라고 언론에 흘려왔다.

 

訪北 蘇외무. 북한에 개방압력 가할 듯

 일부 관측통들에 따르면 셰바르드나제가 밝힐 새로운 구상의 핵심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헬싱키협정 이후의 ‘유럽안보협력회의’를 원용한 새로운 안보체제를 수립하자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한다. 즉 ‘아시아판 헬싱키체제’의 구성문제가 핵심적인 주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셰바르드나제는 8월27일자 일본〈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태평양의 안전보장을 위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블라디보스토크 선언과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을 확대 발전시키는 몇가지 제안을 이번 개막연설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특히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이같은 제안의 성사여부는 소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의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9월2~3일로 잡힌 그의 평양방문은 북한·소련간의 한·소정상회담이후 갖게 되는 첫 번째 고위급 회담이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9월4일 서울에서 남북 총리회담이 열릴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반도 정세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평양방문에서 그는 최근의 한·소관계의 진전 상황 등 소련의 한반도정책을 북한 수뇌부에 설명하면서 북한에 대해 ‘간접적’으로 개방압력을 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평양방문이 미국측과의 사전협의에 따른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즉 평양측이 남북관계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경우 미국도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미국측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당초 9월7일경으로 알려졌던 방문일자가 남북 총리회담 직전인 9월2~3일로 수정된 것만 봐도 그의 방문이 남북대화의 진전과 깊은 함수관계를 갖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밖에 평양방문 하루전에 있을 중국방문에서는 중국과 전면적인 관계개선을 이루고자 하는 소련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중동사태와 캄보디아문제에 대한 중·소간의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9월4일부터 7일까지로 예정된 일본방문에서는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소련측의 새로운 제안이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의 일본방문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訪日을 위한 사전 정비작업의 성격을 띤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동북아시아 순방은 유럽에서 이미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한 냉전체제 해체작업이 이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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