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性’의 슬픈 지문
  • 이세용(영화평론가) ()
  • 승인 199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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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감독 : 장선우
주연 : 문성근, 장선경

 소프트 포르노를 표방하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성욕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해서 위엄을 갖추게 된 문화를 억압에 따른 허위의식의 소산이라고 본다.

 도색 소설을 쓰는 ‘나’(문성근)에게 섹스마니아인 ‘바지 입은 여자’(정선경)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와서 다짜고짜 동거를 시작한다. ‘나’의 친구은 ‘은행원’은 임포텐스인데, 두 사람은 카페 ‘주스’에서 술을 마시며 섹스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 이야기로 시간을 죽인다.

 <너에게…>에서 성(性)은 소재이면서 주제이므로 상스러운 말과 음란한 몸짓에 망설임이 없다. 남과 여느 노골적으로 벗어던지고 쉽게 뒤섞는다. 이 작품에 비하면 여태까지의 한국 영화들이 보여준 섹스 장면은 수치심의 흔적을 지닌 낡은 것들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적어도 성 묘사에 관해서 새롭다.

 이 새로움은 장선우 감독이 ‘무엇’을 만든다는 뚜렷한 의식과 ’어떻게‘ 만들고 있다는 방법을 자각한 결과로 보인다. 민중 그림 풍의 강렬한 터치로 그린 애니메이션의 효과적인 활용이 좋은 예인데, 작품 속에 익명으로 등장하는 개인들의 성욕이 실제로는 우리 시대의 욕망이었음을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가 성적으로 일그러진 세계임을 빗댄다.

 따라서 성의 쾌락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남과 여, 옐로 보이스의 남자들, 바나나 껍질로 최음제를 만드는 ‘은행원’(여균동)의 에피소드가 웃음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내며 성에 압도당한 세태를 풍자한다. 구성 또한 재치있으며, 세련된 연출에 의한 장면화도 뛰어나 이 작품은 단순한 포르노가 아니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포르노그라피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위선적인 사회 통념과 가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영화인가?

 <너에게…>는 이런 물음 앞에서 답변이 궁색해진다. 성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포르노 영화의 특징을 숨기지 못하는 까닭이다. 뿐만이 아니다. 인물들의 대사, 특히 ‘나’와 ‘바지 입은 여자’가 나누는 대화의 상당 부분이 공중 변소의 낙서 수준이라는 점도 <너에게…>에 대한 평가를 꼬이게 만든다.

 이 작품은 인간의 문화 능력의 소산인 대화에서 상징?메타포?암시 등을 활용하는 표현 기법이 솔직한 감정을 수준 있게 드러내는 장치임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그러나 충격과 자극을 위한 전략 때문에 자진해서 포르노의 울타리에 갇힌 점은 몹시도 안타깝다.
李世龍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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