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발전 가꾸는 공직자의 청렴결백
  • 타이베이 ●박순철 편집부국장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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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간소화하고 부정 땐 사형까지…“공무원은 종” 인식 확산

行政院 건물 근처 北平東路에 타이베이시 지방 국세청이 있다. 타이베이시 대부분의 빌딩이 그렇듯 실용적이고 꾸밈이 없는 이 건물에 들어서면 1층에 서비스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2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널찍한 사무실은 환하고 밝아 방문객의 기분마저 유쾌하게 해준다. 직원들은 대부분 아가씨들로서 흰색 바탕에 붉고 푸른 밝은 반점이 있는 이색적인 제복도 사무실 분위기를 더욱 밝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곳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공무원들은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5시에 퇴근할 때까지 점심시간도 비우지 않고 세금에 관한 문의에 부지런히 대답한다. 직접 찾아오는 시민도 있지만 전화문의가 많다. 1년에 약 15만통이 된다고 한다. 사무실 벽에는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免費服務電話’(무료서비스전화)라고 써붙였고 그 바로 밑에 080~23~6969라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도입할 예정인 수신자부담전화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彭永秀씨(여)는 “세무공무원은 납세자의 납세의욕을 높이기 위해 편의를 제공하고 봉사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전 11시30분 현재 이미 약 50통의 전화문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영수증에 관한 규정과 영업세에 대해 질의가 많았다고 했다. 현재 월급은 3만元(1元은 약 26원)이며 남편과 맞벌이를 한다고 말했다.

 

부정 발각되면 가정까지 파괴돼

彭씨는 대만정부에서 일하는 53만1천명의 공무원 가운데 한사람이다. 여기에는 공공기업 직원 16만2천명과 공립학교 교원 17만9천명이 포함된다. 개발도상국에서 공무원의 청렴 여부는 나라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대만정부는 그 중요성을 어느나라 정부보다도 깊이 느끼고 있다. 공무원의 청렴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추진해온 방안 가운데 하나는 모든 규정을 단순화하고 절차를 분명하게 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 건물의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잘 띄는 큼지막한 게시판에 명시된 각종 민원 사무처리 기한도 이러한 ‘투명성’의 본보기이다.

이 서비스센터의 책임자 廖明鋒 과장(52)은 세무공무원 생활만 27년간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 밑에는 특별한 係가 설치되어 납세자가 신청한 민원사건을 그 시간 안에 처리했는지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그는 법규의 ‘허술한 구멍’을 없애고 수속을 간단히 해 세무공무원이 ‘일을 지연시켜 부패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개인수양과 생활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경우 직장의 상사와 선배들이 공무원은 절대로 부패하면 안된다고 가르쳤다. 일단 부정을 저지르면 반드시 적발당하며 이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교육을 받아왔다.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이는 직장생활은 물론 가정생활마저 파괴한다. 국민당 대변인 祝基瀅씨는 “중국문화에서는 가정생활과 친구· 친척과의 인간관계가 직장생활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廖씨는 부정을 피하기 위해 생활습관을 조심스럽게 가다듬어왔고 항상 절약하는 생활을 해왔다. 현재 그의 월급은 4만5천元이며 개인회사의 회계일을 하는 부인의 월급은 3만5천元인데 이중 매달 3만元을 저축하고 있다.

직원들이 부정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각 세무서에 설치한 감사실은 가장 가까운 ‘감시의 눈’이다. 가령 월급 3만元을 받으면서 고급승용차를 갖는 등 생활이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문제가 있다고 보고 반드시 조사에 나선다. 세무공무원과 세관원은 임용될 때 자신의 가족상황과 재산을 상세히 신고한다. 그 내용은 봉투 안에 넣어 봉해진 채 보관된다. 이 봉투는 사건이 터지는 등 문제가 있을 때에만 뜯는다. 그래서 문제된 공무원의 재산이 임용시점과 조사시점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는지 여부를 알아낸다.

어느나라도 그렇듯이 대만의 공무원들도 민간기업보다 못한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기본급 이외에 각종 수당을 받는다. 정부는 공무원의 결혼, 자녀출생, 부모사망, 자녀교육, 가족입원 등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가정에 재난이나 긴급한 사태가 있을 때면 저리융자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협동조합에 의해 생필품을 시장가격보다 약 20% 싸게 구입해 쓴다. 대만에도 최근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데 1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주택구입을 위한 장기저리의 융자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가지 혜택이 있지만 역시 공무원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생활의 안정이다. 대만사람들은 공무원을 ‘쇠밥그릇’(鐵鈑碗)이라고 부른다. 깨질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공무원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난해 월급을 13% 인상했고 앞으로 매년 10%씩 올릴 계획이다. 또한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상당한 여유가 있다. 생계의 위협을 받아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게 돼 있다.

 


‘낙하산’ 없어 李登輝 총통도 말단 출신

타이베이시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한 한국기업인은 공무원 부정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생활이 매우 검소한 것도 부패가 없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위층에는 부패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처럼 ‘낙하산 인사’가 없어 큰 잘못이 없으면 세월이 흐르는 데 따라 계속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하위직부터 장관까지 승진한 사람이 많고 李登輝 총통도 농업분야의 말단공무원에서 출발해서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行政院新聞局의 연락실 책임자인 鄒元孝 주임은 “공무원은 매우 좋은 직업인데 왜 (부정을 저지르는)모험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어느날 밤 8시경 타이베이시에서 30㎞쯤 떨어진 台北縣汐止鎭合順街에 사는 ?國隆(25)씨의 집을 찾아 나섰다. 행정원신문국에서 문서수발 등의 일을 하는 ?씨는 1등에서 14등까지 나뉘어진 대만공무원 직제의 제일 말단인 1등공무원이다. 50대의 택시운전사는 주소만 갖고 집을 찾아내려고 소방서 파출소 등 대여섯 군데에 물어보며 이 위성도시를 배회하다가 집이 빽빽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드디어 찾아냈다. 미터기 요금이 3백60元이 나와 5백元짜리를 내주자 그는 굳이 2백元을 거슬러주려고 애썼다. 돌아오는 길에 그 운전사가 집을 바로 찾지 못하고 한참 돌았기 때문에 미터요금보다 덜 받으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택시운전사가 한밤중에 외국인에게 정직한 요금을 받는 사회에서 공무원이 부정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

?씨의 집은 좁은 땅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듯 3층으로 올려져 있었다. 지난해 부인 郭瑩瑩씨와 결혼할 때 국민학교 교사인 어머니가 물려준 집이다. 집값과 월세가 뛰어오르는 요즘 자기집이 있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다. 그 부부는 25평 정도의 1층만 쓰고 있는데 검소한 가구들과 함께 한 구석에 퍼스컴 한대가 놓여 있었다. 그와 부인은 모두 台北工專 야간부에 다니고 있어 젖먹이 딸은 부모집에 맡겨놓고 있었다. 남들처럼 맞벌이도 못하고 있어 매우 빠듯한 생활이다. 현재 받는 월급은 1만6천3백30元으로 초과근무수당이 월 3천元 정도 된다. 1급의 경우 독신이면 월급이 1만5천元이지만 결혼하면 1천元이 추가되고 애를 낳으면 다시 3백30元이 더 지급된다. 이밖에도 그는 결혼할 때 정부로부터 축의금 2만元을 받았고, 딸을 낳았을 때 1만8천元을 또 받았다.

그는 이 박봉에도 한 달에 6천元씩 우체국에 예금하고 있다. 주요 생활비는 식료품구입 5천元, 양육비(부모에게 매달 드리고 있다) 3천元, 전기료 1천元, 가스료 3백元, 전화료 2백元 등이다. 그는 가장 큰 희망이 봉급인상이라면서도 “박봉이지만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부패에 관해 묻자 그는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속담을 인용했다. 그는 현재 돈과 시간에 쪼들리고 있지만 야간대학을 마치면 미국에 가서 토목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돌아와 고위공무원으로 새 출발하는 꿈을 안고 있다.

대만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대만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가 가운데 싱가포르와 함께 가장 공무원 부정이 없는 나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의 공직자들이 늘 이처럼 청렴했던 것은 아니다. 1949년 본토를 철수하기 이전의 심각한 부패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산업연구원(KIET)의 李?圭 책임연구원은 “국민당정부는 국공내전에서의 패배가 공무원 부패에 크게 기인했다고 자성해서 대만에 건너온 뒤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안정, 경제적 발전과 국민 교육수준의 향상은 모두 부패척결에 기여했다. 80년대에 들어와 공무원의 복무자세는 더욱 단정해졌다. 80년대 후반 민주화의 진전은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또하나의 촉진제가 됐다.

翟宗泉 법무부차장(차관)은 “정부가 민주적일수록 공직자들은 깨끗해진다”면서 권위주의적 정부에서는 정권유지가 최대의 목적이기 때문에 부패나 범죄에 대해 별로 관심을 안쏟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민주화, 공무원의 생활안정, 부정할 수 있는 기회의 축소와 아울러 공무원 부정에 대한 엄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공무원 부정을 다스리기 위해 형법 이외에도 ‘動員勘亂時期懲治貪汚條例’라는 특별법이 있다. 이에 의하면 공무원 부정은 최저 5년 내지 15년의 징역형에 처하며 중죄의 경우는 10년 이상 사형까지 처하도록 돼 있다. 또한 법무부는 산하에 공무원범죄수사를 전담하는 특별기구를 두고 있다. 공무원 부정은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신고제도를 두어 사실로 확인되면 신고자에게 포상을 한다.

대만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관리들의 권한도 많이 약화되었다. ‘관존민비’는 이미 옛말이고 ‘관비민존’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국민들의 교육수준 향상이 한몫을 했다. 공무원들이 옛날에 누리던 큰 권한이 축소된 데는 법령의 간소화도 주요 원인이 됐다. 이제 국민들이 법령을 잘 알아 공무원들이 멋대로 횡포를 부릴 수 없게 되었다. “공무원은 우리의 종”이라는 국민들의 의식도 이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뇌물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대만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낮다는 불만을 갖게 되었다고 국립정치대학 공공행정학과의 許濱松 교수는 말했다. 공무원의 사회적 지위변화와 대만경제의 역동적인 발전에 따른 민간부문의 팽창은 공무원에 대한 인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신문국의 鄒주임은 이렇게 개인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1973년에 國際新聞人員特考라는 일종의 고등고시를 치렀다. 7백명 지원에 15명이 선발되었으므로 경쟁률은 약 47대1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20명을 선발하는데 응시자는 2백명으로 줄어 경쟁률은 10대1로 뚝 떨어졌다.

 

官이 民보다 높지 않은 시대

대만에서는 이처럼 官이 民보다 높지 않은 시대, 官이 民을 누르지 않는 시대로 이행되고 있다. 그리고 官의 내부에서도 위계질서는 엄정하지만 민주적인 인간관계가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은 “대만정부의 장관이나 차관은 우리와는 달리 매우 겸손하고 친절하다”고 평했다. 신문국의 鄒주임에게 승용차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 국장급의 고위공무원은 차를 살 만한 여유는 있지만 사무실에 주차장이 없어 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무실의 사무관급인 朱盛鴻 비서는 자기 차를 갖고 다닌다. 그는 사무실의 주차장 이용권을 놓고 제비를 뽑은 결과 당첨이 되어 자기 차를 구입한 것이다.

대만의 1인당국민소득은 지난해 이미 7천5백달러를 넘어섰다. 대만은 경제적으로 이미 선진국에 바짝 다가갔다.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번영과 자유의 중요한 기초는 도덕적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다. 翟차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부는 부패척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부패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우리는 아직 만족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공정하고 깨끗한 정부야말로 민주주의체제를 보전시키는 최고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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