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교회는 민중에게 바치는 집”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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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1백주년 맞는 대한성공회 金成洙주교

‘예수그리스도 겨레의 생명’. 오는 9월29일로 선교 1백주년을 맞는 대한성공회가 23일 기념주간을 선포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조용하지만 ‘열린 교회’, 교회의 크기보다는 교회의 質을 다듬으며 ‘사회 속의 교회’를 강조해온 대한성공회의 선교 1백주년 행사는 성공회가 이땅에 뿌리를 내린 이래 가장 큰 의의를 갖는 잔치이다. 큰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는 金成洙주교(60)를 찾았다.

서울 정동, 덕수궁 옆에 자리잡은 대한성공회의 주교관은 성공회성당 건물이 고풍스러움과는 또다른 옛멋을 자아낸다. 5백년 가까이 된 한옥인데, 천정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주교관의 ‘한국적인 모습’은 성공회의 한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성공회를 소개하는 관용어구 중에 “아프리카에 들어갈 땐 아프리카 북을 친다”라는 말이 있듯이 성공회는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한다.

간밤에 새벽 1시까지 행사준비회의를 가졌다는 김성수주교는 물난리를 염려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잔치를 벌이자니 면구스런 마음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굳이 이렇게 큰 행사를 벌여야 하는가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값비싼 향유를 바친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옳고 마땅한 헌신이 아닌가라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그래도 수재민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신문사에 ‘제일 먼저’ 의연금을 전했다고 김주교는 말했다. 1백주년 잔치 준비로 지난 6월의 환갑도 ‘슬쩍’ 넘겼다며 웃는 김주교는 성직자의 권위나 엄격함은 찾아보기 어려운 부드럽고 밝은 느낌을 준다.

“오늘에 있어 눈에 보이는 흔적이 없다 하여 1백년을 일구어온 그분들의 수고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어쩌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수행한 까닭으로 역사적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선교 1백주년 기념주간을 선포하며 김주교를 비롯 대전굑구장 윤 환주교와 부산교구장 김재헌주교가 함께 전한 메시지의 한 대목이다.

성공회의 ‘눈에 보이는 흔적’은 기실 그리 많지 않다. 신도수 5만2천여면, 3개 굥구, 89개 성당과 87명의 사제 등 다른 종교에 비해 ‘작은 교회’이다. 선교 1백주년에 즈음한 성공회의 자체 평가에서도 적극적인 선교활동과 성직자양성의 부족이 지적되었다. 김성수주교는 한 인터뷰에서 “일요일에 다들 바쁜데 시내까지 나올 것 없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라. 교회는 어디에 있든 다 하느님의 집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느 기독교 성직자로부터는 ‘듣기 힘든 소리’이다.

성공회를 아는 사람들은 성공회의 작고 낮은 목소리가 ‘수퍼신드롬’에 걸려 있는 일부 종교와 대비돼 오히려 신선하게 들린다고 평한다. 참종교의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주교는 그러나 다른 해석을 내린다. “교회가 많고 거대한 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하느님과 핍박받는 민중들에게 바치는 건물이라고 여기면 된다. 물론 종교인들의 순수한 헌신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교는 말했다.

 

초창기부터 한국문화와 접목

19세기 말엽 개항 격변기에 존 코프 초대주교가 인천에 발을 디디면서 한국선교를 시작한 대한성공회는 의료활동을 통한 선교에 힘쓰면서 인천 여주 진천 등에 병원과 보육원을 세우는 한편 개화기 신교육운동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공회는 초창기부터 한국문화와 접목했다. 그 좋은 예로 지금도 남아 있는 경기도 강화의 온수교회는 ‘절 같은 성당’이다. 한문으로 된 성경구절 위에 ‘연꽃’을 그려놓았다.

20년대부터 평안도 지역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인 성공회는 이 무렵 성공회신학교의 전신인 성미가엘신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를 졸업한 金熙俊(마가)신부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으면서 전기를 맞았다. 25년에는 첫 한국인 수녀가 나왔고 성가수녀회가 설립됐으며, 동양 유일의 로마네스크 양식건물인 서울 정동의 서울대성당(서울지방유형문화재)이 26년에 세워지면서 대한성공회의 기반을 단단히 했다.

일제강점기인 41년 모든 선교사가 국외로 추방되면서 성공회는 공백기를 갖다가 해방이후 다시 선교사가 입국, 교회 재건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6· 25가 터지면서 수도자들이 납치되어 순교하는 등 수난을 겪으며 성공회 역시 ‘분단’되고 말았다. 그후 65년 李天煥주교가 첫 한국인 주교가 되면서 명실상부한 한국인교회로 거듭난 성공회는 74년 부산대교구를 설립했고 특수아동 교육기관 성베드로학교를 열었으며,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마당으로 상록학원을, 80년대 들어서는 서울 상계동 삼양동 등지에 나눔의 집을 마련해 빈민지역 선교활동에 힘썼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선교 초기의 활발한 활동에 비추어 오늘의 선교현실이 미약함을 자각하며 선교 1백주년을 맞는 성공회는 1백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선교 2세기’의 발판을 마련코자 한다. 23일 기념주간선포식을 시작으로 30일 켄터베리 대주교 초청만찬까지 일주일에 걸쳐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주요 행사는 다음과 같다. *성공회 1백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전시회(9.24~30 지하철 1호선 시청전시실) *레코드로 발매될 예정인 성니콜라합창단 기념연주회(9.25 예술의 전당) *순교성직자와 수도자를 기리는 제막식인 ‘순교자추모행사와 은퇴 · 별세 성직자와 유족 감사행사’(9.26 서울대성당) *켄터베리 대주교 방한(9.28~10.1) *평화통일기원예배(9.29 임진각 망배단) *기념우표 발간(9.29) *선교 1백주년기념대회(9.30 올림픽공원) *대주교 영부인 연주회(9.30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이번에 방한하는 런시 대주교는 1백2대 켄터베리 대주교이다. 영국 왕실 다음의 제1귀족인 켄터베리 대주교는 영국왕의 대관식을 집전하는 등 영구그이 상징적 존재이다. 켄터베리 대주교는 전세계 1백60여개 국가의 44개 관구 4백80개 교구의 7천5백만 신도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세계성공회 주교회의와 서계성공회 협의회의 의장 · 총재를 맡아 ‘성공회의 교황’으로 불린다. 런시 대주교는 방한 기간중에 대통령을 예방하며 임진각 평화통일 기원미사와 1백주년 기념 대미사에 참석한다.

“신도들의 힘을 결집하고 성공회의 참모습을 국내외에 알리는 뜻깊은 행사들”이라고 김성수주교는 말했다. 특히 연주회 행사가 많은데 이는 김주교가 음악의 힘을 크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을 음악이 갖고 있다”고 그는 음악의 역할을 강조했다. 성공회에 음악연구회가 산하 기관으로 있는 것도 그 때문인 듯 하다. 김주교는 교회가 문화공간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통일문제를 비롯해 환경공해, 장애자 복지, 빈민선교, 음성나환자 복지 등 사회의 모든 그늘을 찾아 사랑과 나눔의 진리를 펼치고 있는 성직자. 그러나 김주교도 이런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언행을 일치하기란 정말 어렵다. 늘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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