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하고 성급한 사람들”
  • 파리ㆍ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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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고급 호텔 “시끄러워 싫다” 한국 단체관광객 기피

어느날 베니스에서 일어난 일. 한국 관광객 일행이 배를 타게 되었다. 안내원은 세번째 멈추는 데서 내리자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러나 첫번째 멈추었을 때 어느 한사람이 내리니까 20명중 절반이 따라내렸다. 그 결과 길을 잃어버려 서로 찾아헤매느라 그날 하루 일정은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몹시 서두르는 것이 한국 관광객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이 경험 많은 이곳 관광업계 전문가들의 평이다. 늘 안내원보다 앞질러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어디로 가야되는지 아시나요”라고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한다. 길도 모르면서 앞질러가야 할 정도로 마음이 급하다. 한 안내원은 “관광객 가운데 안내원보다 앞서가는 사람은 한국인뿐입니다”라고 말한다.

 또 한가지 특징은 여행중에 보고 배우고 느끼려 한다든지, 무엇인가 알아보겠다는 호기심을 보인다든지 하는 ‘진지한 맛’이 없다는 점이다. 덤덤하게 구경하다가 빨리 사진이나 찍고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어디어디를 갔다왔다는 것 가체를 자랑할 수 있는, 별로 의미가 없는 여행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얘기다.

 한국 관광객의 행동이 빈축을 살 만큼 불미스러운 면이 있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첫째는 호텔 로비나 식당 등에서 큰 소리로 누구를 부른다거나 떠드는 경우다. 업계 전문가들은 일부 최고급 호텔에서 한국 단체관광객을 기피하는 예가 있는 것은 주로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술관에 갔을 때 “이거 진짜 같다”라면서 그림을 손으로 만져보아야 속이 시원한 사람, 양품점에서 남이 보고 있는 물건을 빼앗아 보는 몰염치, 고급 의상실에 진열되어 있는 의복을 만져보는 행동등도 문제이다.

 그러나 관광객만 나무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중에는 한국의 사찰에 대한 내용까지 미리 책을 통해 읽고 배우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 관광객은 유럽 여러 나라에 관해 미리 공부하고 떠나려 해도 믿음직하고 착실한 책이나 자료를 구해보는 것이 쉽지 않다.

 금년에 유럽을 방문할 한국인 수는 작년보다 30% 많은 2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중 상당수는 대학생 배낭족이다. 이들이 참고하는 일본 관광 서적의 한국어판에 수록된 내용은 이미 낡은 정보인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값이 뛴 것을 보고 당황하는 예도 많다.

 일반적으로 한국 관광객이 과잉쇼핑을 한다고 비난하지만 프랑스에는 화장품 이외에는 별다른 인기 품목이 없을 뿐더러 웬만한 것은 한국에서 살 수 있으므로 쇼핑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광객의 마음이 급한 것은 짧은 시일안에 여러 나라를 돌도록 되어 있는 일정 탓도 있다. 욕심 때문에 내용없는 주마간산식 관광이 되는 것은 여행사와 관광객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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