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한 김에 法도 바꾸자”
  • 도쿄ㆍ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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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 중동 파견 계기로 관련법ㆍ헌법 개정 논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빚어진 중동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요즘 밖으로는 미국의 ‘위기분담금’ 증액 요구, 안으로는 자위대법ㆍ헌법 개정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집단안전보장체제에 의해 안전한 해상수송로를 확보해 오늘의 경제적 번영을 구축한 일본은 이제는 그에 상응한 책임을 분담할 때다.” 이같이 미국의 對日 압력이 거세지자 일본정부는 지난 8월말 한달간의 눈치작전 끝에 제1차 중동사태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에 10억달러의 자금지원, 의료ㆍ수송ㆍ자재협력”을 골자로한 제1차 지원책은 미국의 더욱 거센 대일 비판을 자초한 자충수에 불과했다. 지원책을 결정하는데 무려 한달간의 시간을 낭비, 미국 여론을 악화시킨 데다 일본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분담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중동사태의 긴장도가 높아짐에 따라 미국상원이 ‘동맹국에 대한 기여확대 요구’를, 하원이 ‘주일미군 주둔경비 전액부담 요구’를 결의하는 등 의회와 행정부가 대일 압력의 고삐를 바짝 죄어오자 일본정부는 지난 14일 서둘러 제2차 중동사태지원책을 결정하는 촌근을 벌였다. “다국적군에 10억달러의 추가자금 지원, 이집트 터키 요르단 등 분쟁지역 주변 3국에 20억달러의 경제원조”가 2차 지원책의 주요 내용이며 이로써 일본의 분담금 총액은 40억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의 중동사태 분담금이 40억달러에서 그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동사태가 장기화되어 해를 넘기게 될 경우, 또는 무력충동이 일어나 교전상태에 돌입할 경우 등 페르시아만 위기의 국면전환에 따라 미국의 대일 요구도 확대되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본을 미국의 51번째 州 정도로 생각하는가.” 미국의 대일 압력이 가중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일본내 여론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여론의 화살은 미국보다는 오히려 일본정부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일본정부가 미국의 대일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식의 ‘對美 추종형 정책수립’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중동사태로 일본이 안게 된 또 다른 문제는 자위대원의 해외파병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자위대법ㆍ헌법 개정 논란이다. 일본정부와 자민당 일각에서는 페르시아만 위기가 확대되자 “현행 법체계로는 국제분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체제의 가동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관련법규의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행법으로도 자위대원의 해외파견은 가능하다”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민간인을 파견한다면 자위대는 무엇 때문에 존속하는가.” 자민당 고위당직자들은 이런 의도적인 강성 발언을 흘리면서 “의료ㆍ수송ㆍ통신분야 등 후방 지원부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자위대법을 개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헌법개정도 고려해야 한다”며 대정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에 대해 “무력행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전투요원의 해외파병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공식견해를 밝히고 있다.

 

자민당 ‘민간인 자격’ 파병에 반발

 이러한 위기관리체제 정비문제에 대해 가이후 총리는 지난 8월말 “헌법에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현행 법령ㆍ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천명하고 요원 파견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키 위해 ‘유엔평화협력법안’을 제정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법안의 대강을 가이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는 이달말까지 확정하고, 10월의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법안작성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 내용을 둘러싸고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가이후 총리와 외무성은 자위대 소속 의료진을 외무성 소속으로 신분을 변경, ‘평화협력대’의 일원으로 파견한다는 방침이다. 즉 자위대법을 개정하지 않고 비전투 자위대원을 민간인 자격으로 파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제복군인을 민간인 신분으로 파견하는 것은 고식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차제에 자위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참의원의 여소야대 현상, 개헌정족수 미달, 개헌에 대한 일반의 거부반응 등으로 실제 자위대법ㆍ헌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사막에 내리는 비도 한방울의 빗방울로부터 시작된다”는 중동지역의 속담처럼 일본의 경우 헌법개정 문제가 거론되는 그 자체가 주변국들에게는 큰 경계심을 갖게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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