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김씨 물러나라”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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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정국 닥칠 조짐 고개드는 세대교체론, 정파ㆍ계보 달리하며 우후죽순

 최근의 정치권, 특히 집권 민자당내 민주계 김영삼 계보의 陣中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 살기 위해 새끼들을 나 몰라라 하는 어미’로 보스를 격하하는 악평이 나돌고 있다. 김대표가 대권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민정계와 공화계를 끌어들이기 위해 민주계는 아예 제쳐놓고 있다는 불만의 표시다. 김대표가 지난 20일 “지난번 농어민 후계자대회 말썽 후 농림수산장관 경질을 진언했다”고 표면적으로는 이번 개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듯이 말을 흘리면서 실제로는 초계파적으로 처신해온 데 대해서도 민주계 의원들 스스로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계 의원들. 양김씨 싸잡아 공격

 물론 민주계는 이러한 김대표의 ‘무관심’이 한시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세를 굳히기 위해서는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 민주계의 ㄱ의원은 “91년 상반기야말로 김대표가 당권을 명실상부하게 쥐어 잡느냐, 아니면 후계자 지명에 실패하여 당이 쪼개지는 사태로 갈 것이냐 하는 대전환의 시점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하면서 민주계에 대한 김대표의 방치가 91년 상반기라는 시한을 정해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대표가 과연 차기 대권 후계자로 지명될 수 있느냐 하는 대목에 이르면 민주계의 갈등은 최대로 증폭된다. 심정적으로야 그리 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만약 ‘김영삼의 시나리오’대로 정국이 전개되지 않을 경우, 민주계 의원들은 설움은 설움대로 받고 14대 총선에서의 재선마저 보장받기가 어려워지는 탓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민정계뿐만 아니라 민주계 일각, 특히 초ㆍ재선 중심의 신진그룹에서도 이른바 세대교체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정황의 한 단면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부심하게 되는 더 본질적인 문제는 두 김씨의 감정 싸움이 계속되는 한 현재의 파행 국회를 정상화시키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또 두 김씨가 서로 나서서 ‘대통령 쟁탈전’을 재연할 경우 지난 대통령선거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결과적으로는 국론이 양분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민주계의 한 초선의원은 “합당을 하기 전 먼저 김대표는 평민당 김총재를 어떻게 조절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부터 검토했어야 했다. 김대중씨에 대한 아무런 대비 없이, 또 정국안정에 대한 심각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결국 김대표가 스스로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계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대교체론은 민정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세대교체론보다는 그 강도가 훨씬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계의 세대교체론은 두 김씨가 대권을 향한 싸움만을 고집할 경우 정치권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원론적 수준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정계의 세대교체론은 민주계의 그것과 비교할 때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김대표가 대권을 잡았을 경우 민정계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민정계로서는 내각제 개헌을 실현해 김영삼 대표가 권력을 정점에 서있는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길이고, 민정계 스스로가 베풀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계의 세대교체론이 두 김씨를 싸잡아 공격하는 데 맞춰져 있다면 민정계의 그것은 김대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정계가 김영삼 대표를 공격하는 명분은 뚜렷하다. 3당합당은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것이고 이에 따라 김영삼씨가 민자당의 대표최고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인 만큼, 김대표와 민주계의 끈질긴 저항에 의해 원래의 약속 사항이 파기된 현시점에서는 김대표도 당연히 현재 누리고 있는 특혜를 도로 내놓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즉 ‘약속불이행’의 책임으로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 전면전 치를 시점 아니다”

 현재 일정한 구심점이 없이, 한갓 ‘방황하는 군상’으로 비치고 있는 민정계는 대략 3가지로 구별되는 세대교체론을 펴고 있다.

 민정계 세대교체론의 첫 번째는 南載熙 李鍾贊 金潤煥 李春九 李漢東 吳有邦 李慈憲 의원 등 중량급 의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체질개선론’이다. 이들이 ‘물갈이’ 혹은 ‘3김씨 퇴진’이라는 강렬한 단어를 가급적 자제하고 체질개선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즉 아직 전면전을 치를 시점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김대표를 향한 직격탄을 퍼부을 만큼 민정계 내부가 정리되지도 않았고 盧泰愚대통령의 결단이 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포문을 열 경우 민정계 내부의 자중지란에 말려, 자칫 민주계로부터 역공마저 당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이 그룹에 속하는 한 의원은 “성급한 세대교체론 제기는 자칫 레임덕 현상을 재촉할 우려가 있다. 이제 경우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마당에 후계자 구도를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된다면 대통령의 통치권 누수는 불보듯 훤한 일이다. 따라서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까지는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국파행이 계속된다면 예상외로 불이 일찍 당겨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말을 바꾸면, 이들은 당내 민주화와 체질개선을 최우선의 명제로 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사실 경선을 통한 민주화 주장이야말로 민주계로서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아닐 수 없다. 소수 계보에 불과한 민주계로서는 모든 것이 경선으로 이루어질 경우 당권 장악은 고사하고 말 그대로 枯死당할 위험성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진그룹은 차기 대권 후보 선출대회나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틀림없이 ‘경선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세대교체론은 朴哲彦 캠프의 이른바 ‘차세대 대권 수임론’과 朴泰後진영의 ‘제3의 인물론’이다. 국회 날치기 사태 이후 김대표에 대해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짙어가는 것과 때를 맞춰 제기된 박철언 의원 계보의 ‘차세대 주자론’은 과거 두 김씨가 들고나온 이른바 ‘40대 기수론’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어떤 아이러니마저 느끼게 한다. 최근 박의원은 각종 모임에 연사로 나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계속하고 있어 세대교체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을 가급적 삼가온 박태준 최고위원이 본격적으로 민정계 결속에 나서고 자신의 발언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의 청남대 4자회동 이후부터다. 청남대 회동 이후 김대표와 金鍾必 최고위원간에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공방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시점과 ‘제3의 인물론’이 돌출한 시점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박최고위원은 “내각제 개헌 여부에 앞서 정치인들의 자기 희생이 있어야 이 나라 정치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하고 “대결상황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이 자기 희생을 실천하지 않는 한 국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제3의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제3의 인물이 박최고위원 자신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지만 박최고위원 자신이 ‘칼’을 빼들 시기가 다가왔다는 시사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재 박최고위원의 직속 계보로 분류되는 인물은 崔在旭 朴在鴻 金重緯 李珍雨 의원 등이다. 특히 金重緯 의원은 민정계 초ㆍ재선급 의원들의 결속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세대교체론의 그물망에 평민당의 김총재가 벗어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평민당내의 3김씨 퇴진론은 민자당에 비해 훨씬 잠복성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돌출될 가능성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야권통합 작업과 관련해 민주당에서 김대중씨의 2선퇴진 주장이 활기를 띤 것도 결코 무시될 사안은 아니다. 김총재가 원내 복귀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민자당의 시각은 바로 김총재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퇴진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즉 파행 국회의 책임은 김영삼 대표나 김대중 총재에게나 똑같은 하중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평민당내 사정에 밝은 민주계의 한 의원은 “세대교체론에 깊게 공감하고 있는 평민당 의원이 예상회로 많다. 중부권뿐만 아니라 호남지역 의원들도 상당수이다”라고 말하면서 “문제는 두 김씨를 보낼 수 있는 시기가 확실히 도래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정가의 관측통들은 정기국회를 전후한 지금의 가을정국을 흡사 살얼음을 딛는 기분으로 주시하고 있다. 수해와 아시안 게임에 묻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정기국회가 폐회될 시점에는 결국 또 한번의 파란과 그로인한 정치권의 대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서 정계를 떠나야 할 사람으로 김대중 김영삼 두 김씨가 선두에 꼽혔다는 사실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지만 정황에 따라서 3김씨 퇴진론은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예상보다 빨리 전면에 재등장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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