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정하고 묘역 관리
  • 도쿄ㆍ채명석 통신원 워싱턴ㆍ이석열 특파원 파리ㆍ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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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심각해지는 묘지문제의 대책수립이 시급하다. 실효있는 제도 마련에 도움이 되도록 선진국의 장례 및 묘지제도를 살펴본다.


미국 법인체의 영구적인 사업

 《미국에서 죽지 말라》는 책이 몇해 전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3천달러(약 2백10만원)는 남기고 죽어야 최소한의 절차를 통한 장례식을 갖고 땅에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1평 크기로 분양된 관 하나 들어갈 땅값이 70만원, 관값이 최소 35만원, 비석값이 약 1백만원 등 매장에 필요한 기본 예산이 그렇다는 것이지 여유있는 사람들은 보통 그 두배 이상을 쓴다.

 묘지에 관한 한 미국처럼 땅을 아껴쓰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일부 농촌지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공동묘지를 으레 만들고 일정한 크기로 땅을 잘라 팔아 그 돈으로 묘역을 영구히 관리하는 공원묘지제도가 발달해 있다.

 미국은 지방자치제가 철저한 만큼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묘지사용에 관한 법이나 규제도가 가는 곳마다 조금씩 다르다. 州가 나서서 이를 관여하는 것보다는 市나 郡이 지역의 특성과 사정을 고려하여 거기에 알맞은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공동묘지를 소유하고 영업을 하려면 개인은 안되고 몇사람이 법인체를 만들어 영구적인 사업을 해야만 허가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원묘지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법인체라 할지라도 무제한으로 땅을 점유할 수는 없다. 워싱턴 D.C.의 경우를 보면 한 법인체가 2백18만평(50에이커)까지만 갖도록 상한선을 정해놓고 있다. 또 묘지로 사용될 땅은 시내에서 2.5km 이상 떨어진 곳이어야 하며 사람이 사는 집에서 1백83m(2백야드) 거리 밖에 있는 땅이라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시의 조례에 명시돼 있다. 이 조례에는 매장 장소ㆍ허가ㆍ방법 등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물게 돼 있다.

 이와 비슷한 조례가 있는 버지니아주 패어팩스市의 페어팩스기념공원 묘지에는 매장을 위한 땅말고도 모소리엄이라는 관을 층층이 보관하는 건물도 있고 지하 납골당도 따로 있다. 모소리엄은 땅 위의 묘라고 할 수 있는데 자리를 절약하는 방법으로는 썩 좋지만 별로 인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값도 한 자리가 1천달러로 땅 한 자리 값과 같다.

 화장을 하여 뼛가루를 그릇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고 납골당에 따로 보관도 하지만 강이나 바다에 나가 재를 뿌려 수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원묘지는 한 자리가 1.16m, 세로 2.44m(약 1평)로 그 크기가 똑같이 나뉘어져 있다. 혹 가족묘지로 쓸 때는 최고 12자리까지만 살 수 있다고 한다. 곳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마련이지만 대도시 주변의 묘자리 하나 값은 줄잡아 1천달러(72만원) 정도다.

 

프랑스 인구집중형 ‘가족묘’

 프랑스의 묘지에는 무덤들이 매우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만일 고인들에게 입이 있다면 너무 답답하다고 소리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하자면 ‘인구집중형’으로 묘지가 운영되고 있으므로 땅을 너무 차지한다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첫째, 무덤 하나가 차지하는 면적이 매우 작고 무덤 사이의 간격이 별로 없다. 둘째로는 한 묘소 밑을 수직으로 깊이 파서 유해 여러 位를 겹겹이 한 자리에 모시는 방식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지상으로 고층건믈을 짓듯이, 땅 속으로 저층 지하실을 층층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묘비들을 둘러보면 ‘뒤퐁 一家’ 하는 식으로 성이 크게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가족 여러사람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을 가족 묘지라고 부르지만, 프랑스 경우는 아마 ‘가족묘’라고만 불러야 할 듯하다.

 묘지정책이 확립되어 교회마당이나 동네에 매장하는 것을 엄금하게 된 것은 1804년에 이르러서였다. 아울러 새로 3개의 시영묘지를 성 밖에 만들었다. 프랑스의 모든 묘지는 소유권을 그 고장의 지방자치단체가 가지고 있으며, 운영도 자치단체가 직접 하고 있다. 개인 소유 묘지로는 일부 옛날 귀족들 집안의 것이 남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현재 파리시정부는 도합 23개의 묘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중 6개는 교외에 있다. 교외의 것 중에 가장 먼 것은 시경계선에서 6km. 가장 넓은 것은 1백4만㎡(1백4ha)나 된다. 19세기초에 신설된 3개 묘역들도 이제는 시내로 편입되어 있다. 그중 제일 큰 것인 파리 동북부에 있는 페르-라쉐즈 묘역의 경우, 면적은 약 45만㎡(45ha), 약 10만2천명의 유택이다. 이곳에서 1830년에 유해를 수직식으로 한 무덤에 모시는 방식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 교외 또는 지방의 묘지로서 땅 여유가 많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족단위의 수직식 분묘가 일반화되었다.

 묘자리를 세내는 임대료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페르-라쉐즈 묘역에서는 현재 길이 2m, 폭 1m(2㎡)당 1만7천2백89프랑(2백34만원)을 받고 있다. 면적이 그 절반도 안되는 ‘카즈’(Case)를 빌려서 유골을 지하에 안치할 경우에는 영구 대여는 8천2백44프랑(1백11만6천원), 50년간 대여는 3천4백55프랑(46만7천원). 그밖에 30년 대여와 임시(6년) 대여도 있다.

 한편, 근년에는 매장 대신 화장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89년의 프랑스 화장건수는 2만8천5백92건으로 사망인구의 5.3%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화장의 경우 그중 30% 이상은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거나, 묘역 안에 특별히 마련되어 있는 ‘자르댕 드 수브니르’(추모의 정원)라는 마당에 가족들이 재를 뿌리거나, 또는 강이나 바다 등에 뿌리기 때문에 묘지가 필요없게 된다. 나머지는 역시 유골을 가족묘지에 모신다.

 

일본 맨션형식에 ‘라커 룸’까지

 “거주할 주택도 없지만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협소한 일본도 요즈음 주택문제 못지 않은 심각한 묘지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의 도시집중, 도시전역의 시가지화 등으로 묘지용 토지가 태부족한 데다 최근 수년간에 걸친 지가폭등으로 묘지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토장’방식보다는 묘지면적이 적게 드는 ‘화장’방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일본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심각한 묘지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도쿄都를 비롯한 대도시 지역에서는 토지부족과 위생상의 문제로 화장을 거의 의무화 하고 있어 ‘화장률’은 1백%에 가까운 비율을 보이고 있다. 도쿄도의 경우, 작년 한해 동안의 매장건수 약 6만6천2백건 중 토장건수는 1백건에 불과해, 대도시 지역에서는 화장이 일상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화장방식이 각 자치단체의 조례로 규제되고 있다고 해서 꼭 어떤 법적 강제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국에서 이 화장방식이 70년 79.2%, 80년 91.1%, 83년 93.4%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묘지용 토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묘지ㆍ매장 등에 관한 법률’로 공동묘지ㆍ납골당ㆍ화장장을 운영하고자 할 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공동묘지의 전체 면적이 1ha 이상인 경우에도 ‘도시계획법’의 적용을 받도록 되어 있으나 개인묘지의 규모ㆍ면적 등에 관해서는 법적 제한이 없다. 따라서 최근의 묘지부족현상은 지가폭등으로 새로운 묘지용지 취득이 불가능해져서 심화된 것이다.

 이제는 죽는 데도 순서를 기다려야 할 판이다. 이같은 토지부족현상의 영향을 받아 공영묘지의 공급부족, 민영묘지의 가격폭등은 일본인들의 묘지취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묘지 87%(절에 부속된 사원묘지 52%, 공원묘지 34%), 납골당 13%. 이것은 일본인들의 매장관습을 형태별로 본 숫자이다. 그러나 “최근 단독주택에 비견할 수 있는 사원묘지ㆍ공원묘지의 비율은 묘지가격 폭등으로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대신 연립주택과 같은 납골당형식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고 한 민간연구소는 지적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이같은 묘지부족현상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나고야에 있는 어느 절은 단독주택형식인 사원묘지를 맨션형식으로 입체화,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빌딩옥상에 묘지를 건설하거나 납골당을 ‘라커 룸’방식으로 개조, 묘지를 집약화하는 등 ‘축소지향형 아이디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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