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개인적 전환기 맞고 있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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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자유인》 펴낸 李泳禧 교수 … “펜 놓고 잠시 쉬었으면…”

 ‘나는 이제 가벼운 피로를 느낀다… 잠시 쉬면서 상처를 아물리고 기운을 회복할 필요 또한 절실할 수가 있다’고 이 책의 머리말에 李泳禧 교수가 밝혀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그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 교수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이교수는 밭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기관지염이 재발했다고 한다. 이교수는 “좀 쉬고 싶은데 사회 각 분야에서 ‘매우 현실적’인 글 청탁과 자문을 요구해와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범우사에서 나온 이교수의 《자유인 자유인》은 저자의 민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민중을 뭉개는 자(힘)’들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70년대 이후 정권으로부터 ‘의식화의 교과서’로 불린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하여 《우상과 이성》 《역설의 변증》 등 그의 기왕의 저서들에 비해 이번 책은 본격적인 논문집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 민족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그때그때 지적하고, 반향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허위의 장막을 벗겨 진실을 드러내는 역사적 책임감’에 의해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에서 앞 저서들의 연장선에 놓인다.

 《자유인 자유인》에서 이교수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논문은 ‘남북한 전쟁능력비교연구ㆍ한반도 평화토대의 구축을 위한 모색’이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에서 북한보다 남한이 우세하다고 주장한 이 논문은 일반 국민은 물론 정부 당국에 충격을 던진 ‘획기적인 발언’이었다. 이교수는 이 논문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적할 수 없는 성역을 개인이 드러낸 것”이라고 자평한다. 4년여에 걸친 자료조사와 연구 끝에 발표한 이 논문은 정부로 하여금 3개월 후에 《국방백서》를 발간하게 했으며 “타성에 젖어 있던 군부가 나의 논리에 대항, 군내부의 연구자들이 새로운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이교수는 말했다.

 위의 논문과 함께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민족의 현실과 과제’ ‘분단고착 역풍 맞서 민족통합의 길로’등 통일문제에 대한 분석과 그 대안을 제시한 논문 모음인 제2장과 릴리 주한미대사와의 공개논쟁을 실은 제3장이 이 책의 기둥을 이루고 있다. 이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좋은 출발’로 보고 있다.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통일문제에 대해 이교수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최우선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지식인과 기회주의’를 비롯한 시평 모음인 제1장 ‘민주주의적 정기를 확립하기 위한 제언’과 짧은 평론을 모은 제4장 ‘문제를 보는 사각 교정’은 ‘쉽게 읽히지만 송곳같은 독후감이 남는’ 글이다. 이 책의 뒷부분 ‘삶과 사상의 뒤안길’은 그가 어떻게 민족주의자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인텔리로서 겪은 좌절, 뒤늦게 돌아본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글쓰기의 혹독함 같은 ‘이교수의 육성’이 들어 있다. ‘인간 이영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이교수는 요즘 ‘겸허와 반성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국제 정치를 연구해온 학자로서 요즈음의 세계사적 변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책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적 겸손이 아니다. 지식인, 학자로서 좀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통절한 인식이다. 개인적으로 편치 않는 전환기이다.”라고 이교수는 말했다. 그간 ‘반문명적 정치권력’과 싸워오면서 등한시했던 학자로서의 길에 당분간 충실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현실을 진단ㆍ전망하는 작업은 이제 그가 믿음직스러워하는 소장학자들이 담당해도 괜찮을 것이란 판단과 기대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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