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통일의 ‘아이러니’
  • (본지 칼럼리스트ㆍ고려대교수)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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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서울을 방문했던 독일(이제는 서독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어졌다)의 언론인 좀머(Theo Sommer)씨는 자기 나라의 통일에 관하여 인상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는 독일통일이 이렇게 빨리 온 것은 예상밖의 일이며 독일국민이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을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We did not make it happen;it happened to us"). 좀머씨는 동서독이 공식적인 ‘통일방안’도 체계적인 ‘통일정책’도 갖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서독정부는 통일을 위하여 동독의 공산주의(호네커) 정권과 협상한 일도, 그들에게 양보한 것도 없으며 다만 그 정권이 붕괴된 후 그들의 승계자들과 통일의 절차를 논의한 것뿐이라고 했다. 즉 독일의 통일은 동독의 정권이 무너지고 그 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에만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좀머씨의 관찰을 들으면서 필자는 분단국의 통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문제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즉 통일은 분단 당사자들의 욕구가 크면 클수록, 통일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이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성립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서독이고 남북한이고 분단된 한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정부당국이나 지배세력이 통일을 역설하면서도 그것을 위하여 자기들의 체제와 위치를 희생시킬 용의는 절대로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쪽의 통일의지 표명은 상대방으로서는 폭력, 또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정복하여 흡수시키겠다는 위협으로 들리게 마련이다. 남북한의 경우 남의 입장에서 북한의 ‘적화통일’을 경계할 수밖에 없고 북은 남한의 ‘흡수통일’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북한 당국은 남북교류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독일의 ‘예기치 않은’ 통일은 우리에게 한반도 통일의 희망을 자극해준 것은 사실이나 한편 그렇게 함으로써 통일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독일이 통일됨으로써 남에서는 한반도 통일에의 기대와 희망이 부풀어오르고 그에 비례하여 북에서는 체제에 대한 위협의식과 그것을 수호하겠다는, 즉 남과의 통합을 막아야 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남북한간의 부산한 움직임은 마치도 우리의 통일문제에 어떻게든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남북한 총리회담, 서울ㆍ평양 축구경기 등으로 분위기가 들떠 있다. 우리는 과연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나아가서는 통일까지도 이루어 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봐도 좋을 것인가. 만약 남한측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에는 우리 사회는 통일이 당장이라도 되는 듯한 흥분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냉정을 찾고 도대체 이러한 남북교환을 통하여 북한정부 당국은 무엇을 얻으려고 하며 남한측은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무엇을 원하고 또 그 의도는 무엇인가. 북한정부와 집권층은 남북간의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자기체제 유지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통합을 거부하는 대신 단일국호, 유엔단일의석, 올림픽 단일팀 구성 등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통일을 역설하고 있다. 한편 총리회담등을 통하여 대외적으로는 남북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주어 미ㆍ일 등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고 대내적(남북한을 포함하여)으로는 공연장과 스테디움 교류를 통하여 북한이 통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북한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남한 내부의 정치통합 먼저 이뤄야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측은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장단기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우리의 대응과 조치가 그것에 어떻게 부합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컨대 남북대화가 그 자체로서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선 그것의 직접적인 목표가 통일이 될 수는 없다. 앞에 소개한 좀머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남북한 정부가 과연 대화와 협상에 의해 통일을 이룰 수 이다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와 교류는 그것이 실속없는 총리회담이거나 구경만 하는 스테디움 교류이거나 간에 많으면 많을수록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이 실질적인 교류를 두려워하여 외양의 교류와 교환만을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같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은 상호간 또는 어느 한쪽의 체제변화를 통해서 가능한 장기적인 전망일 뿐이다. 정부로서는 통일이 마치도 고위급회담이나 형식적 교류로 가능한 것같은 인상을 국민에게 주어서도 안될 일이다. 밑받침없는 기대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실망만 더 크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통일이 장기적인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남쪽에서는 당장 시작해야 될 일이 있다. 그것은 안정된 민주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호 《계간사상》에 실린 ‘민족통일과 민주화문제’라는 글에서 梁性喆교수는 남한의 정치엘리트는 정치를 싸움으로만 생각하는 ‘분열형’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이 정치는 협상이라고 생각하는 ‘통합형’으로 탈바꿈하기 전에는 평화적인 통일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평화통일이 곧 민주통일을 의미한다면 남한이 민주화뿐이 아니고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야 북한과의 통일을 기대할 수 있다. 자체 내부에서도 정치통합을 못하면서 남북의 정치적 통일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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