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 1백년래의 ‘호황’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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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외교·분열논리로 기회 놓칠까 우려…6공의 통일의지 궁금

한반도 일원이 개방과 질서 개편의 태풍권에 휘말려 있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트고, 앞으로 서너달이 지나면 85년 동안 無主의 凶家가 돼온  러시아제국의 서울 정동 소재 공사관이 주한소련대사관의 단청을 다시 칠한다.

  일본다 북한과 터놓고 악수를 나눌 낌새를 보이고 있다. 남북한 분단의 원초적 책임을 진 일본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한국만을 인정한다는 기존의 약속을 깨고, 마침내는 한반도에 ‘두 나라, 두 정부’를 사실상 인정한다는 섬나라 특유의 ‘혼네’(本音)를 내비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공 국적을 가진 캐나다 거류 화교 한명이 모국방문길에 임시통과 비자를 갖고 김포공항에 일시 착륙한 사실을 국내의 조간이 1면 톱기사로 보도했던 것이 불과 15년 전의 일이다. 그 중국이 15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 와서 우리와 영사관계의 개설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를 놓고 따질 때 넉넉잡아 20~30년, 빨라야 10년 이상 걸릴 사안이 최근 2~3년 동안에, 그것도 한꺼번에 한반도 일원에서 동시다발로 터지고 있으니 그 중요성과 심각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바가 없다.

 한반도 주위의 이같은 급한 기류를 국민과 정부는 모두 익히 알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국민들이 이를 알고는 있되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동시다발적인 이 일련의 사태가 추석을 전후한 황금연휴 기간을 골라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북경 아시안게임의 열기에 가려 퇴색했기 때문일까.

 뉴욕의 유엔총회 현장에서 한·소수교가 합의 발표된 지난 1일 밤, 서울의 한 텔레비전은 이 ‘역사적’인 한·소수교 합의에 대한 여야 3당 대변인의 논평을 방영했다.

 이 가운데 두 야당 대변인의 논평이, 그 논평 가운데도 특히 다음과 같은 대목이 관심을 끌었다.

 “소련 특유의 남진정책을 조심해야 합니다.” “환영할 만한 일이로되, 차제에 한·소수교를 낳기까지의 비밀협상 내용이 낱낱이 공개돼야 할 것입니다”

 두 야당 대변인의 논평을 해석해본다면 굳이 오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정답으로 볼 수도 없다.

 정답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사사건건 모두를 으레 분열과 흑백논리 차원에서 다뤄온 우리의 습관적인 발상이 아직껏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자가진단의 결과 때문이다. 또 지금의 한반도 주변 기류가 우리에게 너무나 과분하게 ‘우호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순간적인 오판으로 이를 자칫 무용화시킬 수도 있다는 기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1백년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국제정치적 호황이 한반도 주변에 몰아닥치고 잇는 시점이다. 한·소수교와 관련해서 한 야당 대변인이 우려한 소련의 ‘남진정책’의 위협은 허름한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나 남아 있는 死可에 불과할 뿐, 현실적으로는 전혀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식자우환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그가 내세운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의 당면한 입장에 역경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해왔는지를 유념해온 정치인이라면 지금의 소련이 예컨대 “부동항을 얻기 위한 남진정책을 펴고 있으며, 따라서 한·소관계 역시 이런 남진정책의 제물에 불과할 뿐이다”하는 케케묵은 교과서 내용의 발언을, 개인 차원이 아닌 당의 입을 대변하는 차원에서 공식 표명할 수 있을지 자문해볼 일이다.

 틀정 야당 대변인의 논평을 거듭 논평하는 까닭은 그 대변인의 발언이 유독 중요하다거나 무게가 실려서가 아니다. 우리의 습관적인 국론분열의 한 단면이 한 야당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이나 일의 경중을 따지기 앞서 집권당이 벌이는 일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반대기치를 들어야하고, 그래야만 야당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는 이 可歎할 오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출범과 동시에 북방외교에 집착해 왔고 흡사 이의 성패 여부에 국운을 걸다시피 해온 6공 정부의 작전개념적인 외교접근 역시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누누이 지적돼온 바이다. 다른 한 야당의 대변인이 지적한 ‘한·소 비밀협상의 내막’ 공개는 바로 이 대목을 지목한 표현이다.

 문제는 돈으로 귀착한다. 소련과 수교를 따내기 위해 정부는 얼마만한 ‘經協액수’를 소련측에 극비리에 약속했느냐, 일설에는 30억~40억달러, 정부 측근의 소식통에 따르면 20억 달러설이 나돌고 있는데 이돈은 결과적으로 누가 부담해야 할 돈이냐 하는 문제댜.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물음이 있다. “지금의 북방정책이 막바지의 순항을 거듭한 결과 ‘남북한이 과연 하나가 되는’ 極點에까지 이르게 만들 의지와 담력을 6공 정부가 과연 가지고 있느냐”하는 의문으로 귀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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