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신화’바탕은 정직
  • 김태희(조사분석실)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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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안하고 기밀비도 안써 …“무리한 확장” 비판도

 폭우로 많은 집들이 물에 잠긴 지난 9월 서울 창천동의 한 오피스 빌딩.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사무원은 보이지 않고 이불과 취사도구 등을 옮기느라 분주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한구석에서 수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만이 눈에 띄었다. 이 빌딩에는 의류전문업체는 (주)이랜드(대표 朴聖秀·39)가 이달 중순께 입주할 예정이었다. 이랜드측은 수해를 당한 창천동 일대 1백47새대 1천여주민을 도울 겸 사무실 입주를 늦추기로 결정했다. 집이 물에 잠겨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이 빌딩은 ‘피신처’구실을 톡톡히 했다. 복구작업이 끝날 때까지 열흘 동안 이 회사 직원들이 나와 화장실 청소까지 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기도 했다. 이 건물로 피신했던 주민李龍雨(63)씨는 “요즘 기업들은 모두 부동산투기나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좋은 일 하는 기업이 좀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외활동 어렵지만 자부심”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이랜드라는 회사가 조용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설립 10년만에 약 2조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캐주얼웨어 시장의 12.5%에 달하는 점유율을 확보, 놀랄 만큼 빠른 신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회사라는 점이다. 회사를 법인체로 등록한 가장 큰 이유가운데 하나가 세금을 정당하게 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에는 전체 매출액의 10%가량인 약 2백50억원의 세금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86년에 납부한 세금의 3백배에 가까운 액수이다. 이 회사의 지출항목에서는 세법상으로도 허용되고 있는 기밀비와 접대비를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자금부의 余成鎬주임은 “대개 음성적으로 쓰이기 마련인 기밀비와 접대비는 사회에 악영향을 끼쳐왔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이랜드 사람들은 대외활동에 어려움도 많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이 크다. 기밀비·접대비에 상당하는 금액은 회사내에 있는 ‘아시아미션’과 기타 단체에 기부하여 선교사업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지원활동에 쓰도록 하기 때문이다.

 

중저가 정책으로 싼값에 공급

 이랜드는 지난 80년 이화여대 앞에서 자본금 5백만원의 잉글랜드라는 2평짜리 가게로 의류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남대문시장이나 평화시장에서 옷을 가져다 자기 상표를 붙여 파는 소위 ‘마트브랜드’로 시작한 잉글랜드는 83년 브렌따노, 85년에는 언더우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박사장은 지난 86년에 상호를 잉글랜드에서 이랜드로 바꾸면서 정식으로 법인체를 설립, 그해 65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올해에는 예상 매출액 2천5백억원의 목표달성이 무난할 것이라고 한다. 종업원 수도 공채로 입사할 4백여명의 신입사원을 포함해서 약 1천4백명에 달하게 되며, 전국의 대리점 수는 9백개를 넘게 된다고 한다.

 이 회사는 잉글랜드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학생층을 대상으로 中低價 정책을 펴오고 있다. 이는 전량 하청에 의존하는 제품생산 방법으로 가능했다. 자체적으로 공장을 운영하면 단기적으로 생산원가가 높아져서 소비자에게 옷을 싼값으로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랜드는 박성수 사장을 중심으로 한 거의 전직원이 기독교 신자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를 본다. 매일 아침일과 시작 전 30분간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또 일요일에는 전국의 대리점이 일제히 가게문을 닫아야 한다. 이를 어기는 대리점은 두 번까지는 상품공급중지 조처를 받지만 세 번째에는 계약해제를 당한다고 한다. 이같은 ‘청교도적’분위기는 광고에서도 느껴진다. 이랜드 광고시리즈의 하나인 ‘장학생편’을 제작할 때 광고회사측에서는 처음에 “당구를 칠땐 피타고라스를, 알콜을 보면 분자식을 생각한다”라는 문구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박사장은 ‘당구’와 ‘알콜’이라는 문구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를 들어 한사코 거부, “시험을 볼 땐 우정을 생각하고, 팝송을 들으면 영어를 공부한다”로 바꾸게 했다. 이랜드 광고제작을 전담하는 엘짐애드의 金顯善 대리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광고를 제작하는 것이 이 회사 광고목표 가운데 하나”라면서 극도의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세태에서 박사장 같은 이는 드물다고 평가했다.

 현재 이랜드는 산하에 12개 자회사를 두고 의류업뿐 아니라 시계와 구두 그리고 액세서리에 이르는 본격 토틀패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설사업부를 두어 건설업에 뛰어들 채비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업계에서는 너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의 소리가 없지 않지만 부러움과 경계의 눈길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랜드의 사업확장이 지금까지처럼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정직한 기업은 성공한다”는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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