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줄고, 희생 따르지만 “통일과 자유는 행운”
  • 베를린 ·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10.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집권 예상되는 콜 총리 ‘서독의 인내’당부

 10월2일밤 브란덴부르크 문 일대에서 열린 시민축제에 1백만명이 모여드는 등 감격적인 ‘통독의 날’ 자축행사를 마친 독일국민은 연내에 거행될 두차례 선거쪽으로 곧바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통일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울 헬무트 콜 총리의 인기 상승 때문에 선거는 기민당(CDU)을 주축으로 한 집권 보수·중도 연립세력의 승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우선 10월 14일에는 구 동곧 5개 주에서 주의회 선거가 벌어진다. 1952년 동독의 개헌으로 14개  제도가 생기면서 폐지되었더 州제도가 통독으로 부활된 것인데, 야당인 사민당(SPD)은 1개주에서 밖에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당간부들이 스스로 점치고 있다. 주의회 선거는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독일 젇치제도의 중요한 기둥이 되어왔다.

 중앙집권이 악용될 경우 히틀러시대와 같은 독재로 흐를 것을 우려한 나머지 독일에서는 연방제가 강조되고 있는데 구 동독 지역도 마침내 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연방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12월2일의 총선에서도 연립 집권세력이 이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에 7천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콜 총리의 재집권을 예측하는 사람이 75%나 되다.

 따라서 시민당의 명예 총재인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등 당의 중진들간에는 잠정적인 거국 연립내각을 만들어 사민당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교섭을 콜 총리 상대로 해보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구 동독지역의 사민당 당원들에게 연설하는 자리에서 브란트는 “독일이 사민당의 의사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다스려지는 것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되었다.

 ‘통독의 날’ 다음날인 4일 57년만의 처음으로 全獨의회가 베를린의 라이히스타크(제국회의)에서 열렸을 때 본회의장에서는 선거의 전초전이 벌여졌다. 콜 총리는 그동안 통일에 따르는 비용 문제를 들고나와 비판을 계속해온 사민당의 집권 도전자 오스카 라퐁텐의원에 대해 매서운 반격을 가했다.

 콜총리는 구 동독의 경제를 재건하고 환경을 정화할 만한 힘이 독일에 충분히 있다고 단언하면서, 동독 사람들이 겪을 고생을 생각해서 통일에 따른 지출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줄 것을 독일 국민에게 당부했다. 콜 총리는 이어 공산정권이 지난 10년 동안 저지른 무책임하고 부패한 정치 때문에 동독이 입은 엄청난 상처를 아물게 하자면 적어도 7천달러 상당의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퐁텐 의원은 독일민족주의가 다시 대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7월1일의 경제통합에 앞서 준비작업을 소홀히 함으로써 구서독에서는 붐을 일으켰지만 구 동독에서는 경제·사회적 피폐가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구 동독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었던 것을 감안하여 통일독일에서도 낙태금지를 완화하도록 하는 입법조치를 추진하겠다고도 말했다.

 콜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동독 경제 복구계획의 입안을 서두르고 있다. 전화망의 근대화에 3백60억달러, 지방행정기구에 65억달러, 송전시설에 1백30억달러가 투자될 것이며, 매년 1백만호의 주택을 신축하는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구 서독과 대비했을 때 구 동독의 경제적·사회적 격차가 극복되자면 적어도 몇 년이 걸린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더구나 현재 동독지역의 경제상황은 악화일로에 있다.

 경쟁력이 약한 국영 기업체들이 잇따라 문을 닫거나 감원조치를 하는 바람에 실업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단축근무라는 형식으로 반실업 상태에 빠지는 사람까지 합하면 연내에 총 실업인구는 2백만명에 다라하리라고 추산되고 있다.

 본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구동독에 대한 지원부담 때문에 독일경제가 곤경에 빠질 염려는 없다고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 경제성장률 등 경제통계는 구동독과 구 서독의 것을 분리해서 발표할 방침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 동독 지역에서는 믿을 만한 집계를 하기가 아지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양 지역간의 경제적 격차가 앞으로 몇해 동안은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깔려 있는 듯하다.

 한편, 통독에 대한 기대와 감격은 작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에 비해 한풀 꺾인 것 같다는 말이 구 서독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 통일이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느 사람보다는 하나의 ‘과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과업이란 동독쪽을 되도록 빨리 서독쪽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키는 일이며, 이일을 하면서 서독쪽의 경제 번영이나 민주주의 정치에 손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이다.

 최큰에 ≪슈피겔≫의 여론조사 결과, 통일이 썩 마음에 안든다거나 전혀 마음에 안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서독쪽에서는 29%나 되었다. 통일에는 희생이 따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사람은 67%로 나타났으나, 스스로 그러한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말한 사람은 38%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독과의 통을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일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제 독일의 통일은 국내외의 지지와 찬사 속에서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인구에 있어서는 동쪽의 1천6백60만명을 합쳐서 7천7백60만명(터키사람 등 외국인 5백만명 포함)으로 프랑스(5천6백만) 영국(5천7백만) 이탈리아(5천8백만)보다 약간 많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따지면 미국 일본 유럽공동체(EC)로 묶여지던 선진그룹의 개념이 깨지고 미국 일본 독일, 그 다음에 여타 유럽 공업국가들로 분류될지 모른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록 독일의 경제력은 강하다.

 통독 전에는 유럽공동체의 국민총생산 중 25%를 서독이 차지했으나 통독으로 독일은 28%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또 2차대전 때와 그 이전에 저질러진 나치의 엄청난 죄악 때문에, 새로운 독일은 폴란드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이웃나라의 걱정스러운 눈초리 속에서 탄생하였다.

 콜 총리가 되풀이하여 강조한 대로 독일국민이 과거를 열심히 되새기는 한, 독일이 민주주의를 힘차게 실천해가는 한, 독일은 유럽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평화와 자유를 신봉하는 이웃으로 살아나갈 가능성이 충분할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주권을 회복한 독일국민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