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과 잠롱 시장
  • 박순철 (편집부 국장)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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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롱 시장은 하루 한끼만 먹는다. 채식주의자인 그에게 과일은 중요한 식품이다. 지난 8월 태국 수도 방콕에서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이런 말을 했다(《시사저널》44호 참조), “(주로먹는 과일은) ‘쿠에이 남무아’(짧고 통통한 바나나) 람부탄 파인애플 파파야 등입니다. 멜론은 비싸서 아내가 보통때는 잘 안주고 파인애플, 바나나는 매일 줍니다.”

 태국은 열대과일의 천국이다. 파인애플, 바나나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신기한 과일도 많다. 그 가운데 ‘과일의 왕’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두리안이다. 학명으로는 Durio Zibethinus로 불리는 이 과일은 동남아가 주산지이다. 두리안 열매의 모양은 매우 괴상하다. 울퉁불퉁한 타원형으로 딱딱한 껍질 위에 도깨비 방망이처럼 험악한 가시가 가득 돋아 있다. 큰 것은 수박만하다. 이것을 날카로운 칼로 조심조심 껍질을 배어내면 속은 다섯 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고 각 칸마다 크림색의 ??이 들어 있다. 내용물은 과일이라기보다는 무슨 ?? 같은 모습이다. 냄새가 지독하기 때문에 동남아의 호텔 가운데는 ‘두리안을 객실에 갖고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써붙인 곳도 있다.

 외국인이 두리안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맛을 들이면 왜 ‘과일의 왕’이라고 불려지는지 차츰 이해하게 된다. 묵직한 바나나 한 묶음에 25바트(7백50원), 파인애플 한 개에 10바트(3백원) 정도지만 두리안은 한참 쌀 때인 5월에도 한 개에 50바트, 1백바트를 쉽게 호가한다. 태국의 국민소득이나 다른 과일의 가격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비싼 값이다. 그러나 “아내를 팔아 두리안을 사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까지 두리안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한국의 ‘과소비바람’과 잠롱의 ‘무소유’

 잠롱 시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두리안에 얽힌 일화 한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불교의 교리를 지키게 된 이래로 모든 욕망을 절제하려 노력했지만 두리안에 대해서만은 어쩔 수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즐기던 음식이나 좋아하던 간식을 먹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또 그대로 실천했으나 어쩐 일인지 두리안만은 끊으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잇는 그날, 아주 가난해뵈는 여인이 낡디낡은 치마를 입고 두리안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 뒤에 서 있는 것을 우연히 쳐다보게 되었다. 여인은 땀에 다 젖어버린 만큼 돈을 꼭 쥐고 있었는데, 10바트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그돈으로는 두리안을 살 수 없음이 분명했다.

 나는 가슴이 찡하게 저려옴을 느꼈다. 두리안 값은 해마다 들쑥날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가난한 사람이 먹기에는 지나치게 비싼 과일을 과연 내가 고개를 치켜들고 먹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7년 동안 두리안을 먹지 않았다.“

 잠롱 시장이 서울에 왔다. 불교의 8계를 엄격히 지키는 자제력의 화신 같은 그가 두리안에 대해서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는 고백이 흥미롭다. 가난한 여인이 먹을 수 없는데 내가 먹을 자격이 있느냐는 자괴심에서 칼로 베듯 애착심을 잘라버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그가 서울체류중 무엇을 볼 것인가.

 그는 방콧 못지않은 서울의 교통체증을 보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자제력을 잃은 과소비의 군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신동아》가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벼락부자의 ‘과소비바람’이 연전히 미친 듯이 불고 있다고 한다. 6천만원짜리 악어가죽가방, 5천만원짜리 모피코트, 3백g한 접시에 70만원하는 곰발바닥 요리, 1억원이 넘는 이탈리아 장롱이 과소비의 편린을 엿보게 한다. 불로소득에 의해 뒷받침된 과시욕 앞에 ‘이웃’은 제압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 경제 되살리는 큰 길 ‘두리안을 삼가는 마음’

 70년대 중반 태국의 수상을 지냈던 쿠크릿 프라모즈는 불교도로서 명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명상을 할수록 나 자신의 중요성이 점점 작아진다. 나의 자아는 점점 작아져 어느 날엔가는 소멸될 것이다. 자아가 없는 인간이 되려는 것이 목표이다. 자아가 완전히 사라질 때 집단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 남을 도울 때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지난번 선거를 앞두고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마음을 비웠다”고 요란을 떨었던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잠롱 시장은 자신을 작게 만들고, 이기심과 욕망을 줄여가는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 그의 물질적 소비생활은 방콕의 가장 가난한 시민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그는 ‘과소 소비’를 하고 있다.

 태국의 빈부격차는 한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동북부 이산지방 여러 주의 1인당 평균 소득은 방콕의 10의 1도 안된다. 방콕시민간의 빈부격차도 엄청나다. 잠롱 시장은 가난한 시민을 위해 자선 상점을 열고, 생활필수품을 원가에 공급하는 자선회사를 조직했다. 그의 노력이 아시아 ‘제5의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물가고, 부동산투가, 소득불균형의 확대라는 병을 앓고 있는 태국경제를 치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려운 사람들과의 ‘同行’은 방콕시민을 한 마음으로 모으고 있다.

 우리사회는 지금 앓고 있다. 과소비는 그 아픔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흉하고 큰 상처이다. 물난리가 났을 때 옆에서 골프를 치는 무관심의 깊은 골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두리안을 삼가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앓고 있는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큰 길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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