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기능 넘어 정부조직 ‘장악’
  • 조용준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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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결정 영향력 ‘인정받은’ 대통령비서실

 權府의 중심, 대통령비서실은 통치권자와의 밀착성으로 인해 흔히 ‘작은 내각’으로 불려왔다. 《시사저널》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집단으로 비서실이 2년 연속 수위에 꼽힌 것이나, 한국을 움직이는 집단으로 비서실이 비교적 상위에 오른 것이 다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이 고유 업무인 정책 보좌 기능보다는 실질적 결정권자의 모습을 보일 때 그 폐단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행정부의 관련부처에 앞서 계통을 무시한 채 청와대비서실이 먼저 나서는 ‘직권 남용’의 사례는 3공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한·소수만 실행에 옮기는 종속적 위치에 처해 있다는가 청와대비서관들이 예전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은 6공화국 들어와 커다란 변화를 두차례 겪는다. 그 하나가 지난해 8월 청와대 정책보좌관실을 해체한 것이고 또 하나는 역시 지난해 11월 장·차관급 특별보좌역을 신설한 것이다.

 이 두가지 직제개편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정책보좌관실의 해체는 朴哲彦 특별보좌관이 정무장관으로 변신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고, 특별보좌역의 신설은 결과적으로 盧在鳳 전 정치특보가 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돋움하면서 6공 후반기의 실세로 자리잡을 수 있는 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李洪九 정치담당특보, 金學俊 정책조사특별보좌관 등 정치학박사 출신 학자들의 청와대내발언권을 강화시키는 계기도 함께 마련해주었다. 6공 이전 대통령 비서실의 인적 구성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두가지는 또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즉 참모 기능에 머물러 있던 박철언 특별보좌관이 행정부로의 진출에 성공, 국내 현실정치 쪽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반면, 북방정책과 관련된 모든 실무가 노재봉 비서실장이 총괄하는 현재의 실무진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청와대에 정책보좌관실이 신설되고나서부터는 비서실 각부가 보고할 내용이 정책보좌관실을 거치도록 돼 있었고 대통령도 주요 사항은 정책보좌관실을 거치도록 돼 있었고 대통령도 주요 사항은 정책보좌관실을 통해 업무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비서실이 고유기능을, 무기력하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비서실은 통치권자가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본 업무에만 충실할 수도, 無所不爲의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는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비서실장이 등장하면서 洪性澈 비서실장 때보다 훨씬 비서실의 영향력이 강화됐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이는 특명사정반의 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조직 개편과 군축 문제까지도 비서실이 담당하는 등 비서실의 힘이 훨씬 증강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노실장과 金宗輝 외교안보보좌관 콤비는 북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무부 국방부 안기부 통일원 등 4개 부처를 관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학계 출신의 인사들이 관료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과거의 예를 본다면 노실장의 비서실 및 행정부 장악은 확실히 범상의 수준을 넘는다. 최근 노대통령이 비서실에 농수산담당 비서관을 신설하도록 지시한 것도 우루과이라운드 등을 염두에 둔 농촌문제의 적극적 대비로 해석할 수 있지만 비서실의 정부조직 장악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노실장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지배 엘리트의 분열 방지를 통한 통치권 누수현상의 차단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비서관 회의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점차 가속화될 통치권 누수현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느냐하는 점이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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