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와 가난한자의 중매인”
  • 정리·성우제 기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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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정기독자와의 대담/ “시청 출입기자 ‘환대’한 적 없어”

 독자들이 《시사저널》‘잠롱 시장’커버스토리(8월30일자)에 보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평소보다 다섯배 이상의 독자편지가 밀려들었고 그 내용은 우리나라에도 잠롱 같은 청렴한 공직자가 나오길 열망하는 것이었다.《시사저널》은 이같은 독자들의 관심에 부응하여 10월10일 편지를 보내온 정기독자 중 5명을 선정, 잠롱 시장과 마주않아 대담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부인 시리락 여사와 함께 나온 잠롱 시장은 빠듯한 일정 탓인지 약간 피곤해보였으나 독자들의 여러 질문에 시종 미소 띤 얼굴로 답변했다. 대담에 참석한 독자는 다음과 같다. 박경화씨(의사·54·경북 상주) 이선우씨(서울 공항중 교사·36) 조판철씨(군산대학 교무과·35) 손형국씨(금성소프트웨어·27·경기 부천) 황유진씨(연세대 사회사업학과 4년·23).

 

박경화 : 하루 한끼밖에 식사를 안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 건강에 지장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잠롱 : 하루에 한끼라도 필요한 열량을 충분히 섭취하면 됩니다. 그러나 세끼씩 식사하다가 갑자기 한끼의 식사로 바꿔서는 안됩니다. 세끼에서 두끼, 한끼로 천천히 바꿔나가야 합니다. 태국의 의사 여러분도 저의 영양섭취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단을 해보면 모든 것이 건강한 상태로 나옵니다. 전에는 줄곧 아침 한끼 식사로 지내면서 그냥 찬물만 마셨는데 시장이 된 뒤에는 집사람이 제 건강을 걱정해서 자기 전에 우유 한잔을 꼭 마시게 합니다.

손형국 : 부패를 이겨내는 힘은 부처의 가르침에 충실한 시장님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잠롱 : 맞습니다. 그 가르침은 첫째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선을 베푸는 것이고 세번째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조판철 : 어떠한 계기로 물질에 대해서 마음 비우셨습니까?

잠롱 : 11년 전에는 저도 보통 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재산을 모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큰  집을 마련하고 그 집을 채우기 위해서 좋은 것들을 많이 들여다놓고 있었는데 그후부터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도둑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집사람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한 날의 왕자이셨지만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남들에게 가진 것을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황유진 : 만약 부인께서 따로 뇌물을 받는다거나 부자가 되기를 희망했더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잠롱 : (웃으면서) 그렇다면 제가 참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선우 : 남들이 정치인으로 불러주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종교인으로 불러주기를 원하십니까?

잠롱 :저를 특정인으로서 그냥 정치인이라 부른다거나 아니면 한 개인으로서 종교인이라 부르는 것을 원치 않고 합해서 불러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정치인이 종교를 분리해서 생각할 때 부정부패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박경화 : 부정부패가 개입된 압력이 중앙정부에서 내려왔을 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십니까?

잠롱 : 저는 시민이 직접 뽑은 시장이기 때문에 위에서 저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한다거나 압력으로 누를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내무부장관이 자기의 권력으로 나를 누르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협조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대로 밀고나갔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고 시민들이 저를 신임했기 때문에 재선 때는 초선 때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장관을 해직시키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손형국 : 시장님의 정직의 정치가 과소비, 빈부의 격차 등 방콕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무리 없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시는지요?

잠롱 : 제가 펼쳐나가는 경제정책이 그런 것들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가지 면에서 할 수 있는데 우선 스스로 모범을 보여서 선을 행하는 것과 그다음에 구조적인 면에서 개선해나가는 것입니다.

조판철 : 시장께서 생각하시는 공직자의 국민에 대한 복무자세는 어떠한 것입니까?

잠롱 : 공직자에게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정직과 근면입니다. 그럴 때 시민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공직자의 월급은 시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공직자가 시민의 우두머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선우 : 독실한 신자가 된 데는 어떤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습니까?

잠롱 : 그전에는 저와 제 아내도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에는 자비를 베풀라고 했는데 저희는 불교신자면서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사람이 의논을 해서 정말 부처님 말씀 따라 한번 살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우리 두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그것이 조금씩 펴져갈 때 이웃이 좋아지고 사회가 조금씩 밝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경화 : 시장께서는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고 했는데 그것이 시청의 공무원들이나 다른 공무원들한테 어떤 권위주의적인 강요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잠롱 : 부하직원들에게 강요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하루 한끼 먹고 채식을 하니까 ‘여러분도 하루 한끼만 먹고 채식하고 옷도 이런 옷을 입으시오’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모범을 보여 나타나는 결과가 좋을 때 사람들이 느끼고 따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황유진 : 초선 때의 상황과 그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잠롱 : 방콕시민은 돈만 있으면 선거에 당선된다는 것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있었어요. 바로 그 타락풍토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할 때 돈을 많이 쓰면 그 사람들이 당선되었을 경우 그 돈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부정과 비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민에게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기본적인 선거비용조차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니까 시민들이 자진해서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로 선거운동이 조금씩 변화됐습니다. 가장 초라하고 작은 포스터를 붙인 제가 당선된 후부터는 다른 입후보자들이 ‘포스터를 크게 붙이면 떨어지나보다’ 생각하고 조그맣게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선우 : 가난한 이들만 좋아하고 관심을 쏟는 나머지 혹시 중간계층이 소외되는 것은 아닙니까?

잠롱 : 제가 빈곤한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골고루 다 돌아보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있는 사람들이 희생해서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할 수는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 일에 나서서 중매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경화 : 부인께서는 시장의 아내로서 어떤 내조를 하고 있습니까?

시리락 : 우선 저는 신문·잡지를 매일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적들이 언론을 통해서 남편을 비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남편이지만 혹시 그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런 것을 체크하면서 사실이 아니라면 그사람들로부터 다시는 그런 모략을 당하지 않도록 남편에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건 시장님의 건강입니다.

손형국 :시청 출입기자들과 시장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잠롱 : 대부분 우호적입니다. 출입기자들을 환대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기자들에게는 누구한테나 마찬가지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보통 정치인들은 어떤 문제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고 그래서 그렇게 해야 할 경우가 있다면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황유진 : 매일 아침 청소원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준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극빈자나 무능력자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의타심을 키운다거나 일의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 보는데요.

잠롱 : 생필품을 나눠준다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나태심을 길러준다거나 자립심을 꺾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통역을 맡은 오명례씨는 이 질문은 자주 받은 것이라며 이렇게 부연 설명했다. “저는 시장님이 생필품을 빈민들에게도 나눠주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장님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바라기만 하기 때문에 자립심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또 낮에 청소하는 사람들에게도 안주더라구요 새벽4시에 나와서 청소하는 사람들에게만 주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방콕시장인 내가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위로하는 것이지요”)

황유진 : 그런 것 외에 정책적으로 펼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잠롱 :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지금 월급이 적은 하급공무원을 위해서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각 부서에서 하급공무원을 위해서 물건을 사다가 싸게 파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콕시청에는 은행과 연계하는 보통 대부받는 것보다 싼 이자로 하급공무원들이 대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각 은행에서 방콕시 예산을 유치하기 위해 자기 은행에만 예금해주면 막대한 돈을 테이블 밑으로 시장에게 전해줬던 전례들이 허다합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방콕시장이 되고나서 한가지 묘책을 생각했습니다. 어떤 은행이든지 거리 청소부들이 입는 옷을 많이 해오는 은행에다 돈을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거리 청소부의 옷을 준다거나 쓰레기통을 마련해준다거나 시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대주었습니다.

이선우 : 시장재직중에 특별히 감명받았던 일은 무엇입니까?

잠롱 : 제가 방콕시장이 되고나서 어딜 가든지 여기서 겪는 곳과 똑같았습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사를 하는 것이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아저씨”하며 어린이들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깁니다. 그런 것이 감명 깊습니다.

박경화 : 방콕시장을 마치고 난 이후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잠롱 : 시장 제2기를 마치고나서의 포부는 나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에 대한 기사를 실어준 신문·잡지·방송 그리고 저를 열광적으로 환영해 주신 한국국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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