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롱] 가는 곳마다 환성 “우리도 청백리를 원한다”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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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일은 많이 하며 남는 것은 나누어 갖는다”청백리 잠롱 스리무앙 시장이 6박7일간의 방한일정을 통해 한국민의 가슴에 강렬하게 남긴 생활신조이다.

 지난 8일《시사저널》과 경실련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아 14일 이한할 때까지 그는 시종 웃는 얼굴과 검소한 옷차림, 유머러스한 화술과 꾸밈없는 태도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차창을 통해 잠롱 시장과 눈이 마주친 시민들은 그에게 손을 흔들거나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기도 했고, 세차례에 걸친 강연회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과 자극을 주고간 그의 방한일정을 소개한다.

 잠롱 스리무앙 시장이 KE 638편으로 김포공항 신청사에 도착, 귀빈실에 들어선 것은 지난 8일 오후 3시경, 검정색 양복, 짧게 깍은 머리의 잠롱 시장과 화장기 하나 없었지만 빼어난 인인 시리락 여사가 활짝 웃으며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자 잠롱 시장은 “어느 나라에나 부정은 있게 마련이지만 이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하여만 한다. 군경력은 현재의 생활과 별 관련이 없으며 불교의 가르침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잠롱 시장은 숙소인 서울대 호암관에 여장을 풀고 서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서울대로 숙소가 결정된 것은 절제된 생활이 몸에 밴 잠롱 시장이 고급스런 호텔보다는 대학이나 사찰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9일은 주로 경실련과 관계된 행사들로 채워진 하루였다. 태국에 비해 쌀쌀한 서울날씨덕에 감기기운이 있던 잠롱 시장은 일행만을 내보낸 채 오전 시내관광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오후부터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특히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이루어진 경실련 회원들과의 대화시간에는 이문옥 감사관 부부도 참석, 잠롱 시장의 얘기를 경청했다.

 

이문옥 감사관 부부도 참석. 경청

 건강을 회복한 잠롱 시장은 10일, 방한 사흘째를 맞아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오전 7시30분 불교계 인사들과 조찬을 가진 데 이어 서울 조계사를 방문하고 강영훈 국무총리를 예방했으며 태국대사관을 방문, 직원들을 격려하며 환담했다. 12시30분부터는 호암관 식당에서 시민운동지도자들과 오찬을 함께 했는데 이 자리에는 이부영 (통합추진회위 상임행위원), 권영길(언노련 위원장), 고은수씨(전교조 부위원장) 등 2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이날의 빅 이벤트는 서울대 문화관에서 2시부터 시작된 특별강연이었다. 그는 이미 경실련 회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일차적으로 체험했지만 강연장에 발디딜 틈없이 들어찬 시민들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는 눈치였다.

 얼추 보아도 4백50여개의 좌석과 통로는 물론 연단 옆까지 청중들로 메워져 족히 6백여명은 되는 듯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로 잠롱 시장을 맞은 청중은 학교측이 태국유사 출신이라며 그를 소개하자 잠시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잠롱 시장이 “안~녕-하-스-요” 하고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를 한 뒤 원고없이 능숙하게 강연을 끌어나가자 분위기는 금세 진지해졌다.

 ‘이 시대의 바람직한 공직자상’이라는 주제하에 잠롱 시장은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시절,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과정, 불교의 가르침으로 물욕을 버리게 된 계기, 두차례에 걸친 방콕시장선거에서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될 수 었었던 이유, 시장직선제의 이점 등에 대해 설명했다. 또 잠롱 시장은 공직자나 정치가가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선 부인의 내조가 필수적이며 ‘남에게 주면 줄수록 자신에게는 더 많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어찌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주제였음에도 30여분에 걸친 강연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강연 내용 자체가 살아 있는 경험담이고 간간이 유머와 재미있는 일화를 삽입할 줄 아는 그의 화술 또한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돈관리를 아내에게 맡기지 않을 뿐 아니라 가계부도 직접 쓴 적이 있다”며 과거 한때 자신이 얼마나 노랑이였던가를 고백했을 때 장내는 공감의 박수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강연이 끝난 뒤 잠롱 시장이 질문기회를 주자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잠롱 시장은 웃으며 “서있는 학생들이 힘들 테니 먼저 물어보라”고 ‘불편한’ 청중에게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어 잠롱 시장은 “도서출판 ‘창’에서 번역, 출판한 자서전 판매이익 배당금을 서울 자선단체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아내가 숙소에서 여기까지 오는 차안에서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고 즉흥적으로 발표해 다시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시간을 더 달라는 청중의 요구를 다음 일정 때문에 물리치고 잠롱 시장이 캠퍼스로 걸어나가자 일부 학생들은 그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으며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은 한 부인은 즉석에서 기부금을 전달했다.

 잠롱 시장은 오후에 《시사저널》정기독자들과 대화를 위해 본사를 방문했으며 6시30분부터 경실련과 본사가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공동 주최한 환영리셉션에 참석, 각계 인사들과 만났다. 리셉션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자 잠롱 시장을 제외한 시리락 여사와 수행원들은 을지로 지하상가에 들렀는데, 한 인삼제품 판매상은 시리락 여사가 잠롱 시장의 부인이라는 말을 듣고 인삼제품 3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11일 민자당 초청 조찬에 참석,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등과의 만남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 잠롱 시장은 점심 때 민주당사를 방문, 오찬을 함께 했다. 저녁 때는 고 건 서울시장 초청만찬(한국의 집) 후 문화공연을 관람했다. 그러나 이날도 역시 정치인들과의 형식적인 자리보다는 오전 9시30분부터 (주)이랜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와 오후 4시 명동 YWCA대강당에서의 강연 등 일반인들과의 만남의 자리가 훨씬 정겹고 생동감 있었다.

 특히 잠롱 시장은 돈독한 노사관계, 젊음과 신앙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이랜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랜드가 추구하고 있는 건전한 기업정신과 자신의 신념이 일치하기 때문인 듯싶었다(본지 51호 57면 참조).

 8백명의 직원들이 빽빽이 강당을 채운 가운데 강연을 시작한 잠롱 시장은 “이랜드가 전혀 세금을 포탈하지 않는다는데 태국에도 그런 기업들이 많이 생겨 세금을 많이 걷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낸 뒤 “박성수 사장으로부터 태국 지사설립 계획을 들었는데 그 지사 이름은 티랜드라고 하자”고 제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또 “회사가 발전하려면 사장과 직원들이 서로 사랑하고 건강해야 하는데 박사장이 너무 가냘퍼 건강이 걱정되니 여러분이 꼭 좀 박사장을 뚱뚱하게 만들어달라”고 농반진반의 충고를 했다. 열띤 분위기 속에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후 박사장은 시리락 여사에게만 시계와 액세서리 등을 선물했는데 “이처럼 훌륭한 부인없이 정직한 정치인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오후 4시 YMCA 대강당에서 개최된 강연회에도 어김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80대 할아버지로부터 10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청중의 연령별 분포도 다양했다. 그런데 잠롱 시장의 강연이 끝난 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너도나도 연단에 올라가 잠롱 시장을 둘러싸고 사인공세를 펴며 악수를 청한 것이었다. 몰려든 청중틈에 끼어 있던 한 노인은 “우리 정치인뿐 아니라 종교인들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혼잣말을 했다.

 

“우리 정치인·종교인 반성해야한다”

 명동거리에서도 잠롱 시장에 대한 행인들의 환대는 대단했다. 마치 선거유세에 나선 지지인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대학 2년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그의 인품에 정말 감명받았다”며 잠롱 시장에게 책 한권을 건네주기도 했으며 지나가던 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정치인”이라고 소리쳤다.

 잠롱 시장은 이같은 뜻밖의 환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수행원의 한명인 사이통캄양도 “굉장하다”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길을 걷던 잠롱 시장은 가판대에서《시사저널》이 눈에 띄자 주인인 청년에게 “《시사저널》이 잘 나가느냐”고 물었고 그 청년이 껌 한통을 선물로 주자 “고맙다”며 거푸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가설구두방에 들러서는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격려한 뒤 “합법적인 영업이냐”고 서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2일에도 김진홍 목사와의 대담, 고 건 서울시장·평민당사방문순으로 바쁜 일정이 계속됐다. 방콕교통은 서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인지 잠롱 시장은 특히 서울시경교통관제실에서 실무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13일엔 대구시청에 들러 박성달 시장과 환담했다. 이어 오후 1시50분부터는 계명대학교 대강당에서 마지막 강연회를 가졌는데 역시 1천6백여명의 청중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곧이어 서울로 돌아온 잠롱 시장은 오후 7시 최원영《시사저널》발행인 초청 환송만찬에 참석, 黨 강령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날이었던 14일에도 잠롱 시장은 오후 6시20분 KE 635편으로 출국할 때까지 예불, 도서출판 ‘창’ 독자들과의 대화에 참석하는 등 흐트러짐없는 태도였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지 않고는 아랫사람을 올바르게 통솔할 수 없다”고 역설하면서도 “가끔씩 나에게 물욕이 남아 있음을 느끼고 늘 반성한다”며 겸허한 자세를 보여준 잠롱 시장. 그는 방콕시민이 사주었다는 모흠(태국평민의 전통복장) 한 벌로 한국에서의 공식·비공식행사를 모두 마쳤지만 한국민으로부터는 그 어떤 국내외 거물급 인사보다도 더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그는 강연장에서, 거리에서 시민들로부터 한결같은 얘기를 들었다. “청렴결백한 사람을 시장으로 뽑을 줄 아는 방콕시민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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