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속으로 운동권이 달라졌다”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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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세포분열’로 침체된 가운데 현실 참여운동 펼쳐

 운동권이건 비운동이건, 대학생에게 “요즘 학생운동이 어떤가?”라고 물으면 “잘 안모인다” 또는 “잘 안된다”하는 이구동성의 답을 듣게 된다. 집회나 시위를 하려 해도 모이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보니 이제는 주최측이 행사계획조차 세우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파문으로 소란스럽던 지난 10월10일 서울대 학생회관 앞마당에 모인 학생의 숫자는 이를 실감케 하는 것이었다. 명동성당에서 열릴 규탄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이날 출정식에 나온 학생은 모두 50명. 오른손을 부르르 떨며 치켜올리는 ‘올해의 동작’으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지만 어쩐지 맥빠진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20여분만에 집회를 서둘러 마치고 식당 안으로 몰려갔다. 점심을 먹고 있던 학우들에게 동참을 호소했지만 밥그릇에서 시선을 옮기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같은 시각 아크로폴리스광장 앞 계단에서는 기독교 서클 학생들이 율동과 함께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었으며 주변 잔디밭에서는 학생들이 친구들끼리 모여 않거나 드러누워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노동자 · 농민의식 성장도 침체의 요인

 보안사 사찰과 같은 ‘큰 건’에도 학생들이 잠잠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87년 6월항재 이후 나타나고 있는 학생운동의 소강상태가 올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광주항쟁 10주년 행사와·범민족대회에는 비교적 대규모의 학생들이 참가했으나 그밖의 교내집회나 연합시위는 소수의 ‘고정멤버’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올해 학생운동의 양상이었다.

 학생운동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는 운동권 안팎의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87년 전환기 이후 나타난 다음의 세가지 변화를 들고 있다. 첫째는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 추세에 대한 학생들의 믿음이다. 이들을 결정적으로 움직일 만한 이슈가 없어진 것이다. 한 대학의 학생처장은 “사회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데에 학생들은 공감하고 있으나 결국 민주화쪽으로 가지 않겠느냐 하는 어떤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운동권의 투쟁 방식에 등을 돌리게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둘째는 학생운동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민중이 이제 학생들의 지도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크게 성장해버렸다. 학생들의 일ㄴ과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이론싸움은 일반학생들을 운동권과 철저히 유리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학생운동의 침체를 가져온 세 번째 배경이다. “과학적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운동권  학생이론가들은 주장하지만 일반 학생들은 더 이상 그들의 대자보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이론그룹의 세포분열이 가장 심한 서울대의 경우 “둘셋만 모여도 하나의 분파가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여서 작년까지만 해도 ‘분열’이라는 언론의 표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던 운동권 학생들마저 “정말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시인하고 있다.

 올해 학생운동권의 이론그룹을 크게 나누면 네가지. 소위‘주사’라고 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NL(민족해방)이 겉으로는 가장 광범위한 세력분포를 보이고 있다. 전체 학생운동을 이끌고 있는 전대협을 비롯하여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중앙대 그리고 대부분의 지방대 총학생회가 이 NL파다.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라며 신식민지사회론을 펴는 이들의 지속적인 구호는 반미와 통일이다. 이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맹목적인 신앙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PD(민중민주)쪽 학생들의 주장이다.

 전대협의 한 간부는 동유럽권의 변화에 대해 “동독의 흡수통일 등은 소련 경제체제에 예속된 뿌리없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북한은 그러나 완벽한 자급구조의 경제체제, 독자적인 외교노선 등 사회주의건설 초기에서부터 동유럽권 국가들과는 다른 길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독일 같은 흡수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통일론은 남쪽체제가 북한과 같아져야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눈치 안보며 도서관에 간다’

 NL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PD는 다시 반제반파쇼변혁이론그룹과 반제반독점변혁이론그룹으로 나뉜다. 서울대와 이화여대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의 구호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민중. 이 사회를 지배·피지배계급구조로 보고 있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노동자·농민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정권과 싸우고 있다.

 이밖에 NL과 PD의 중간이고 할 수 있는 ND그룹이 있다. 과거 CA(제헌의회)그룹 가운데 대다수가 NL주사파로 넘어간 뒤 남은 소수의 ‘CA잔류파’인데, 노동해방문학(노해문)그룹과 최근 안기부에 의해 집중적으로 내사받고 있는 사노맹, 그리고 대학으로는 동국대 총학생회가 이쪽이다. 이들은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앞의 세 그룹과 같지만 중간단계로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을 거쳐야 한다는 이른바 ‘2단계혁명론’을 주장하고 있다.

 갈수록 보수화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다수의 일반 학생들이 이들의 혁명론에 회의를 품게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만난 공대 1학년의 한 학생은 “선배들이 술을 사주겠다며 끌어대도 집회에 따라가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면서 “대신 개인적인 활동과 공부에 더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의 도서관이 공부하는 학생들로 꽉꽉 차 있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참여·비참여로 학생들이 나뉘는 것은 똑같지만, 비참여쪽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전에 비해 ‘당당하게’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는 변화이다. 지난해 서울대를 졸업한 한 여성사회운동가는 “운동 아니면 반동으로 학생을 구분했던 87년 이전과 달리 지금은 도서관 가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만큼 ‘갈등’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오히려 “수업 착실히 들어가고, 미팅하고, 집안의 대소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운동은 짬을 내서 하는”경향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의 문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애국적 사회 진출 운동’이다. 종래 위장취업을 통한 노동현자 일변도의 사회진출에서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맞는 곳으로, 떳떳한 절차를 거쳐 들어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사회민주화운동을 벌인다”고 하는 것이 이 운동의 줄거리이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비장한 각오로 뛰어 드는 ‘블루’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화이트칼라 체질은 갖게 마련인 학생들이 실패하기가 쉽고 시대변화에 따라 그 의미를 잃고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은 학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운동을 하다 학점이 모자라 졸업이 안돼 ‘5학년’에 다니고 있는 연세대 경영학과의 한 학생은 “이 운동은 자기가 소속한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현장’이라는 인식전환에 바탕하고 있다”면서 “사무전문직·연구기술직·언론 등이 그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분야”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노조를 만들어 한번 일내고 구속되는 식이 아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현실에 적응하면서 점진적으로 조직의 민주적인 개혁을 꾀하는 ‘바르게 살기 운동’”이라는 것이다.

 

사범대에서 ‘애국적 사회진출’ 큰 성과

 ‘애국적 사회진출운동’은 87년 이후 NL주도하에 추진되어오고 있는데 현재 서울의 20여개 대학에서 서클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88년 서울대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과 고려대의 ‘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을 시작으로 연세대 ‘사회진출연구회’, 이화여대 ‘세상 일구는 사람들’, 중앙대 ‘열린 일터’등이 작년과 올해 사이에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준비하는 분야는 대기업을 비롯한 사무전문직이 가장 많고 과학기술 전공학생들의 대학원도 있다.

 그러나 실제 ‘성과’에 있어 가장 활발한 곳은 각 대학 사범대의 ‘예비교사협회’로 평가되고 있다. 이 협의회 출신 학생들만이 교직에 진출한 뒤 전교조 등을 통해 운동을 계속할 뿐 나머지 분야로 나간 사람들은 ‘순치’되거나 아예 취직의 관문조차 뚫지 못하고 있다. 방송민주화를 위해 일해볼 각오로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는 고려대의 한 언론반 학생은 “우선 붙는 게 문제이고 운동은 다음”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들어간 뒤 변함없는 의지와 신념이 이 운동의 성패를 결정하게 되겠지만 “들어가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 학생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적 사회진출운동’은 학생운동의 외면적인 침체 속에서 새롭게 꿈틀거리고 있는 하나의 시도로서,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몰론 운동권내에서는 이같은 ‘사회진출’이 과연 운동의 ‘대중화’인지 학생운동의 전반적 ‘개량화’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다양한 사회조직과 제도에 파고들어가 만성화된 타성과 비리에 동화되지 않고 개혁을 요구하는 건강한 시민이 될 수 있다면, 9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만큼 질적으로 크게 비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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