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트는 ‘녹색예술’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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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중심으로 환경문제, 반전·반핵 소재 작품활동 활기

 반딧불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 뉴스는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산업문명의 그늘에서 ‘꺼져가고 있는 반딧불’은 우리가 맞닥뜨린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인류의 생명도 쌓아올린, 발전시켜온 이 文明에 의해서 말이다.

 ‘인류는 자살하려는 것인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려내자‘ ’반전·반핵‘ 등 핵과 환경파괴, 그리고 환경오염에서 인류를 구원하자는 환경운동의 목소리가 국내에서도 차츰 높아가고 시민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도 예민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잠수함 속의 토끼‘로 일컬어지는 예술가들은 환경문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 문학을 중심으로 미술 공연 등의 분야에서 이른바 ’녹색예술‘로 불리울 수 있는 작품들은 아직 질과 양 모두 미흡한 수준에 그쳐 있다. 녹색예술의 오늘은 ’좋다·나쁘다‘가 아닌 ’많다·적다‘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

시분야. 아직 일관된 경향성은 없어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게 분명해!/자궁 속에 고무인형을 키워온 듯/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정수리 털들을 하루종일 뽑아낸다.”

 ‘녹색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시는, 산업문명이 절정을 향해 치달으면서 그 역기능으로 낳은 ‘세속도시’의 내부에다 꾸준히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최승호씨 지난해 발표한 <공장지대>이다. 이 시가 발표된 이후 실제로 원자력발전소 인근 마을에서 무뇌아 사건이 발생, 환경 오염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사회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머리카락을 뽑아대고 있는 산모의 모습은, 전방위에서 다가오는 생명의 위협 앞에선 인류의 초상으로 확대된다.

 <공장지대> 이후 가장 최근에 발표된 환경시는 高炯烈의 3천행짜리 장시 <리틀보이>이다. 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이름이며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별명이기도 한 ‘리틀보이’와 한국 원폭피해자의 유년시절이 겹쳐진 이 서사시는, 우리 사회 각 부문운동과 연결돼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노동·교육·농촌·통일문학의 대열에 환경(반핵)문학을 새롭게 편입시키면서 핵문제의 가공스러움을 일깨웠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형렬씨는 “원폭 사용은 어떤 명분으로도 변명될 수 없다”면서 지구상에서 핵은 영원히 그리고 하루속히 제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장과 에필로그 그리고 그 사이에 모두 4장으로 엮어진 이 시는 핵 투하 전야의 풍경, 핵 제조과정, 핵폭탄 투하 순간의 아수라장 그리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참변을 상상”하며 서울 한복판에 핵이 떨어지는 가상상황을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그리고 있다.

 鄭玄宗 시인이 올들어 선보인 ‘생태시’ 연작은 金芝河 시인이 선도적으로 주창해온 생명사상(한살림운동)과 함께 ‘녹색문학’의 앞날을 내다보게 한다. 정현종의 생태시 연작 첫 번째 작품인 <나무여>는 나무와 인간은 생태계 안에서 결코 우열의 관계가 아닌 동일한 존재임을 밝혀준다. 그의 이같은 시적 작업은 ‘가이아論’과 연관되어 있다.

 가이아론(가이아는 고대 희랍신화에 나오는 지구의 여신)은 J.E. 러브록이란 과학자가 자신의 저서 《가이아》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전면 부정하는 이론이며 서구 녹색운동의 이론적 기둥이다. 즉 생태계는 다윈의 이론처럼 적자생존의 세계가 아니라,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있는 자기조정적 실체”인 가이아의 세계라는 견해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현종씨의 생태시는 이 가이아론을 肉化시킨 ‘가이아 명상’의 결과이다.

 시 분야에서 비교적 일찍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윤택씨이다. 70년대 말, 등단 직후부터 도시환경 속에서 마모되고 파괴되는 현대인의 위기 상황을 그려온 그는 첫 시집 《시민》이후부터 최근에 나온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에 이르기까지, 후기산업사회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질주’에 속수무책으로 짓눌리고 있는 소시민을 해체적 기법으로 형상화하는 한편 <미래완료의 형제여>라는 핵문제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소설의 경우도. ‘드러냄’의 차원

 위에 소개한 시인들 말고도 많은 시인·소설가들이 간헐적으로 환경문제에 손을 대고 있기는 하다. 80년대 시의 한 흐름이었던 해체시와 도서시 계열의 시인들이 ‘반문명’의 시각으로 환경문제를 건드려왔으며 리얼리즘 계열의 시인·소설가들도 농촌의 피폐화와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천착하면서 부분적으로 환경문제를 언급해왔다.

 신예작가 이정창씨가 지난 여름에 내놓은 전작장편 《불꽃바다》는 환경오염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작품성과 대중성도 확보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여천 온산 광양 등의 죽어가는 바다와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삶들을 소설 속의 ‘황포만’으로 끌어들인다. 소설의 프롤로그에 인용되어 있듯 ‘가진 자’에 의해 파괴되는 삶과 ‘양심의 질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궁극적으로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제약”을 공해라고 말한다. 제3세계의 공해문제를 작가는, 공해산업을 ‘수출’하는 선진국과, 이를 ‘수입’하는 제3세계 정권의 종속관계라는, 보다 큰 틀에서 파악하고 있다.

 정도상씨의 <겨울꽃>은 原電 인근 마을을 배경으로 핵 누출 문제를 다룬 중편이다. 남정현씨는 <핵반응>과 이용범씨의 <검은 비가>그리고 고형렬씨의 장시 <리틀보이>와 함께 ‘반핵문학’에 속하는 작품이다. 무뇌아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원전 근로자인 남편과 아내의 절망(기형아·사산)을 중심으로 핵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핵과 사회(권력)와 싸우는 민중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도 《불꽃바다》에서처럼 공해(핵)의 정치·경제적 배경과 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구조를 인식하는 과정이 중시되고 있다.

 위의 소설들이 거시적인 틀 속에서 환경문제를 다루었다면 최성각의 소설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는 수질오염 문제를 일상적인 부분으로 압축시켜 환경문제를 환기시키되 새로운 소설 문법을 구사해 ‘녹색문학’의 한 가능성을 열어보이고 있다.

 《작가세계》가을호에서 핵·환경오염·생태계 문제 등 반문명을 주제로 한 소설들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한 평론가 이광호씨는 “본격적인 반문명(환경문제) 소설은 아직 없다”고 아쉬워 한다. 이같은 소설들 거개가 소재주의의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부족하고 따라서 ‘사회과학시대(80년대)가 아닌 산업화 시대’에 대응하는 문학적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모색단계인 미술. 연극. 음악 분야

 매스컴 등을 통해 수시로 환경 문제의 위험성이 노출되는 현실에 비해 작품들이 이를 적절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평론가 김태현씨는 “서구에서도 녹색당이 출현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였다”고 말하면서 “환경문제는 정치·경제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올라야 표면에 떠오른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경우 성장 위주의 급속한 공업화 정책의 그늘에 가려 환경문제는 줄곧 이차적으로 치부되었다. 또한 정치적인 억압구조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70~80년대 변혁기 리얼리즘의 논리도 환경(평화)문제에 관한 논의를 상대적으로 위축시켜왔다.

 환경문제는 인간해방의 문제이며, 환경운동은 정치권력과의 투쟁이라는 미술계의 인식은 문학 분야의 인식이나 연극·노래운동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녹색미술’의 현단계도 문학처럼 일관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다. 민중미술 화가들 가운데 몇몇이 소수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8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폭평화대회’와 지난 봄 ‘지구의 날’ 행사 등에서 반핵·환경오염 등을 주제로 한 대형 걸개그림을 선보인 崔秉洙씨를 비롯, 사진콜라주 기법으로 수질오염을 고발한 박불똥의 <하늘 川묘지>등이 대표적이다. 판화에서는 김방죽씨가 공해병을 고발한 <이따이이따이병>(86), 반핵을 테마로 다룬 이인철씨 등의 작품이 눈에 띈다. 미술평론가 郭大浣씨는 이 분야의 미술이 “생명운동과 접목되면서 질적으로 한단계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진분야도 80년대 들어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기성 사진작가들이 ‘자연·환경보호사진협회’(회장 이동식)를 지난해 11월 창립했으며 올 7월에는 ‘생태사진가협회’(회장 석동일)가 결성되었다. 한편 만화분야에서도 ‘바른만화연구회’를 중심으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연극계에서는 극단 연우무대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84년 7월 임진택씨 연출로 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렸던 <나의 살던 고향은>은 농약·중금속·대기오염 등 환경문제에 폭넓게 접근한 작품이었으나 당국의 제재로 6개월간 공연정지 처분을 받고 말았다. 86년 홍가이 원작을 시인 이윤택씨가 재구성하고 연출, 부산지역에서 공연한 <히바쿠샤>(피복자)는 원폭피해자의 처절한 삶을 그린 반핵연극이었다. 이외에도 민중극단의 <아, 체르노빌> 등의 ‘녹색연극’이 있었지만 연극계에서도 아직 뚜렷한 경향성은 없다.

 노래운동 분야도 마찬가지다. 민족예술인 총연합 음악분과 문호근씨는 “변혁운동에 역량을 집중해온 탓에 환경문제를 다룬 노래는 많지 않다”고 말한다. 정태춘 박치흠 안치환 한돌씨 그리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등이 반전 반핵 환경오염 등에 관한 몇 편의 노래를 발표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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