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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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 눈앞에 있다”

 프랑스 정계의 거물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은 격변하는 유럽의 장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창간 1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의 방한 초청에 응한 그를 파리시장실에서 만났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호남형이다. 자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과 더불어 프랑스 보수세력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시라크.

 1988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하여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의 재선을 허락했지만, 다음 선 때 (1995년 예정)또 출마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인물이다. 파리 태생, 57세. 졸업생들이 관계를 주름잡는다고 소문난 명문 국립행정대학원(ENA) 출신으로, 역시 관료로 출발했으나 34세 때 하원의원에 당선, 곧 사회부장관으로 입각했다. 그후 경제·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다음 74년 이후 두차례 총리직을 맡았다. 처음엔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밑에서 2년3개월간 총리를 지냈다. 76년에 드골 지지세력을 규합하여 공화국연합(RPR)이라는 신당을 만들어 총재로 취임한 시라크씨는 86년 3월 선거에서 사회당 세력이 약해지자 미테랑 대통령과 거북스러운 ‘동거’를 하는 총리에 취임, 2년2개월간 재임했다.

 일본과 중국은 몇차례씩 가보았다는 그는 한국도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협조관계 확대를 역설할 때는 영어로 “코리아 더즈 잇 뷰티풀리”(Korea does it beautifully)라며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프랑스의 국내정치에 관해서 묻고 싶었으나 외국언론을 대할 때나 외국에 나가서는 프랑스 정치에 관한 논평을 삼가는 것이 프랑스 정객들간에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미리 보좌관들이 선을 그어 물어보지 못했다.

 

●동·서 화해의 새 시대를 맞이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강국들은 앞으로 어떤 지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될 것인가?

 최근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가 지난 45년간 냉전시대를 살아오면서 경험한 ‘화해’라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변화였다.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소련이 지배하는 帝國과 소비에트체제 자체까지도 몰락함으로써 전연 새로운 유럽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만약 이대로 잘 나간다면, 우리가 모두 바라는 것처럼 1989년의 ‘대혁명’(Grande Revolution)이 평화적으로 계속 진행된다면, 특히 소련의 상황이 폭력으로 미끌어 떨어지는 일없이 나간다면 이제는 ‘동’도 없고 ‘서’도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유럽사람들은 30년 전에 드골 장군이 말한 것처럼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하나가 되는 유럽통합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5억의 인구가 함께 자유 평화 번영을 누리며 사는 유럽, 12개국 유럽공동체(EC)의 틀을 넓혀서 유럽의 모든 나라를 묶는 유럽, 소련과 화목하게 살며 대서양동맹관계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 사는 유럽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유럽 전체의 질서를 새로 정의함에 있어서, 또 새로운 유럽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프랑스 독일 영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독일통일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통일독일이 장차 유럽의 안정에 해로운 요소가 되지 않도록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일통일은 EC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테두리 안에서 성사되었다. 이것은 안정저해와는 정반대의 뜻을 갖는다. 독일이 분단되어 있는 동안에는 사실 유럽은 통합을 할 수가 없었다. 또 독일의 분단되어 있는 한, 2천만명의 동독인구가 소련제국에게 일종의 인질로 잡혀 있으며 군사대결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으므로 해서 독일의 이러한 취약점을 소련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통독이 이루어짐으로써 유럽대륙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우울한 그림자는 깨끗이 걷히었다. 콜 총리가 이끄는 독일은 유럽우방국들과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통일을 ‘우리쪽’조건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서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이 되었으며, 서독의 국제적인 관계가 재조정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새 독일은 EC와 나토의 당당한 회원국이 된 것이며,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은 유럽의 안정유지를 기약해주고 있다. 독일이 경제적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느니, 또는 독일이 동쪽으로 기울면서 ‘중립’자세를 취할 것이라느니 하는 일부 사람들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독일을 믿어도 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나는 라팔로(RAPALLO)협정(1922년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 독일이 러시아와 경제관계 밀착을 위해 맺은 협정) 같은 것이 다시 생길 수는 없다고 본다. 독일이 중립을 택할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중립을 택하기에는 독일은 너무 강력하다. 독일은 또한 그 가치관에 있어서나 그 경제로 보아 완전히 서양사회와 통합되어 있다. 앞으로 독일은 통합된 유럽건설에 전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독일의 경제력은 새 유럽의 힘들 키우는 데 전적으로 기여할 것이며, 독일은 이 방향으로 확고히 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독일은 현 지도자들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편 유럽이 스스로의 대통합에 몰두하게 되면 제3세계에 대한 협조가 소홀해지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3세계의 발전문제는 이미 이민문제를 통해 몇몇 유럽나라에 직접 압력이 되고 있다.

 제3세계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이것을 도덕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올 것이다. 제3세계 발전을 돕는 방법도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선진 각국이 국민총생산(GNP)의 0.7%를 원에 투입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 잘 안지 켜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0.5% 수준이므로 나쁘지 않은 편이나, 일본과 미국은 0.3%밖에 투입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냉전이 종결되었는데 장차 미국은 유럽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될 것인가?

 중요하고 힘든 문제이다. 1945년부터, 더 정확하게는 대서양헌장이 조인된 1949년부터 미국은 특히 군사적인 간여를 통하여 유럽에 닻을 내려왔다. 소련의 군사적·정치적 팽창주의에서 유럽을 보호하려는 뜻에서였다. 따라서 자유 유럽의 보호자라는 역할에서 비롯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이 그간 유럽에 크게 미쳐왔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소련의 위협은 멀어졌으며, 바르샤바조약은 쇠약해졌고, 4년 후면 소련군이 독일땅에서 떠난다. 미국의 유럽 간여를 대폭 축소시키자는 미국 자체 내에서의 압력도 여기 가세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방심하면, 가까운 시일내에 미국이 유럽에서의 대거 철수를 급격히 단행하는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상황은 평화와 유럽안정에 해로울 것으로 본다. 미국으로서는 경제적 파트너로서, 또 동맹자로서 유럽을 계속 필요로 할 것이다. 유럽없이는 미국이 완전한 초강대국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으로서도 정치적 파트너로서, 또 유럽 또는 주변지역의 불안요소에 대비하는 군사적인 동맹국가로서 미국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경제적 유대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역사와 문화적 유대 때문에도 냉전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미국과 유럽의 결속을 끊을 길은 없다. 다만 장차 유럽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유럽과 미국이 함께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1966~1997년에 대서양동맹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구성되었던 하멜위원회(Harmel   Commission)와 비슷한 賢人위원회를 소집할 적당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간 경제발전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또 앞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겠다는 기대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과의 협조관계를 잘 다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은 썩 잘해왔으며, 선진국 대열에 끼는 목적도 문제없이 달성할 것이다. 그러자면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된다. 그것이 한국이 이롭고, 다른 나라에도 이로울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는 차치하고 말한다면, 프랑스는 확실히 한국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데 적극적인 줄 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피차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종류의 투자, 여러 가지 천연개발 등에 관해서 털어놓고 함께 의논하고 검토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 

●프랑스 문화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의 미술품 전시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프랑스 음악과 문학을 즐겨 감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문화교류는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고들 느낀다. 좋은 방안이 있으면 듣고 싶다.

 한국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인류문화에 기여한 오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크게 보면 아시아 전체도 그런 의미에서 유럽과 비슷하다. 근년에는 상당수의 한국 예술가들이 파리에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그런 것을 통해서 한국사람들이 프랑스의 문화와 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젊은 천재적 음악인 화가 조각가들이 파리에 살고 있으며, 바스티유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 정명훈씨도 한국사람이다. 열거하자면 아마 한이 없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 프랑스사람들도 동양의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더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럼으로써 피차의 생활이 더 풍부해질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2차대전이 남긴 마지막 잔해들이 씻겨 없어져가고 있다. 나는 한국국민을 위해 아시아에서도 戰後의 잔해들이 씻겨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미 새로운 국제적 여건은 우리들이 직접적인 긴밀한 관계를 맺는 데 훌륭한 계기들을 마련해주고 있다. 1988년의 서울올림픽이 잘 조직되어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한국의 전통과, 동시에 한국국민의 저력에 대해서 프랑스사람들이 새로 눈을 뜨고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프랑스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일은 어차피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국립동양어문화학교의 한국과 학생들의 수효가 계속 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에 대한 관심의 열도를 말해준다. 그러나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어 번역판이 적기 때문에 한국문학을 접하기가 힘든 상태이다. 이런 것은 서둘러서 개선해야 될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방한을 계기로 맺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고 싶으며, 그것은 장차 양 수도간의 우호협약의 서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국민간의 이해증진 방안이 지방기구 차원에서도 역시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는 매우 아픔다운 도시이다. 파리의 ‘美’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비상한 상상력이 동원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최근 조치 중 특히 효과적인 것을 든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특기할 만한 역사를 가진 수도인 파리는 새로 건설되는 大유럽의 관문으로서의 면목을 발휘할 것이다. 편리한 지리적 위치, 철도·항공 양쪽의 교통편의, 뛰어난 생활의 질, 문화의 매력 등을 구비함으로써 파리는 국제적으로 독특한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파리는 경제적인 활기와 시민들의 일상생활간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그러기 위한 도시개선정책이 수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무실 건물도 생기지만, 한편 살기좋은 주택과 다양하고 능률적인 교통수단도 동시에 마련된다. 21세기의 파리의 얼굴을 짐작하게 하는, 양질의 개발계획들이 이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장으로서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녹지대이다. 뱅센숲과 불로뉴숲 말고도 파리에는 1백여곳의 공원 소공원 산책길이 있다. 파리의 녹지대의 명성에 힘입어 서울에도 ‘파리공원’이라고 명명된 공원이 생긴 것으로 안다. 한편 파리에도 ‘서울광장’이 몽파르나스라는 유서깊은 지역의 중심부에 생겼다. 그것은 내가 87년에 한국 외무부장관을 모신 자리에서 직접 명명했다. 녹지대 중대정책은 앞으로도 완성하게 추진될 것이며, 파리를 ‘푸른 도시’로 만들 것이다. 환경오염 문제는 대도시들이 대개 골치를 앓는 문제이다. 파리도 이 문제와 열심히 씨름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조치 중에서도 세느강의 정화는 특기할 만한 것이다. 세느강에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또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자동차의 주차와 정차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파리도 차량의 폭주에 시달리고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두 개의 간선도로에서는 특히 주차단속을 강화하면서, 주차시설의 전면적인 확충과 시민계몽운동을 종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에 있어서 지방자치는 어떤 의의가 있는가? 특히 파리 같은 중요한 도시의 자치가 갖는 의의는 어떤 것인가?

 지방 단위로 생활이 특색있는 내용을 갖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다. 파리시장일 뿐 아니라, 프랑스 중부 농촌지역의 코레즈라는 縣에서 하원의원으로 뽑힌 사람으로서, 나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라는 개념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중앙집권주의와 국가주의적인 유혹이 항상 강하게 나타나온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렇다. ‘코뮨’(지역사회)은 우리 민주주의에 있어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기초단위 역할을 맡아준다. 한편, 선거로 뽑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시민의 희망과 일상생활의 관심사들에 가장 밀착되어 있는 것은 시장이다. 19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모든 ‘코뮨’은 자유선거로 뽑은 시장과 지방의회가 다스려왔으나 파리시만은 최근까지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프레페’(Prefet)가 다스렸다. 75년에 새로 법이 통과되고, 이것이 77년에 발효하여 파리에도 보통선거에 의한 민선시장이 생겼다. 나는 77년에 이어, 83년과 89년에 시장에 당선됐다. 파리시의회도 선거로 구성된다. 파리시장으로서 시민의 일상생활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경찰은 정부가 임명한 경찰책임자의 지휘를 받고 있다. 파리시는 넉넉한 인적 자원과 재정규모를 가지고 있다. 시청직원은 4만명 이상이며, 연간 예산은 50억달러가 넘는다. 83년과 89년 선거에서 내가 추천한 후보들이 20개구에서 모조리 승리하는 바람에 시의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나는 소신껏 대유럽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파리가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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