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김재일 부장대우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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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 코리아 리서치 여론조사/1위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이사장 2위 … 신양김 시대 도래할 듯

<시사저널>은 창간 5주년을 맞아 전문가 여론조사를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알아보았다. 이번 여론조사는 창간이래 여섯 번째가 된다. 그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 6년간 누가 우리나라를 움직여 왔는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단체의 영향력 변화 추이를 추적할 수 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영향력 있는 인물과 집단이 부침한 것이다. 이번 조사는 10개 분야 전문가 백명씩 모두 천명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 각 설문에서 세 사람(집단)씩 지목하게 했다.

 영향력에 대한 인지도는 실제 행사하는 힘의 크기와는 다르다. 그러나 특정인의 영향력을 인정할 때 응답자의 호의적 평가와 선호 감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적인 힘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정치인의 경우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그만큼 입지가 단단해진다.

 조사 결과 현재 영향력을 인정 받은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아.태 평화재단 이사장, 김수환 추기경 순이었다. 지난 6년간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권에 계속 들어간 사람은 3명뿐인데, 바로 이 세 사람의 이름과 일치했다. 이들은 적어도 지난 6년간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집단이나 세력의 경우 안기부와 군부 세력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언론기관이 힘있는 집단으로 떠올랐다.<편집자>

 양김 시대가 다시 온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이사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인정 받는다. 김대통령은 92년과 93년에 이어 올해에도 영향력 인지도에서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적률은 76.8%로 지난해(96.2%)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 3년째인 90년도 지적률(76.9%)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는 곧 지난해의 권력 단극화 현상이 누그러져서 평상수준으로 돌아왔음을 뜻한다.

 김대통령의 영향력에 대한 인지도가 하락했다는 것은, 실제적인 영향력과 국정 장악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의 경우 영향력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인기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기택 대표 상승세
 반면 2위인 김대중 이사장은 지적률이 지난해 27.4%에서 35.9%로 올랐다. 정계 은퇴 선언 후에도 그의 움직임이 정치 행위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이는 가운데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는 김이사장의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대통령에 쏠렸던 힘이 어느 정도 김이사장에게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는 김이사장이 김대통령과 대칭이 되는 존재로서 다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뜻한다. 지난 30여 년간 두 사람의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 받는 것은,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치를 재개할 기반이 형성돼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대통령에 대한 지적률은 상대적으로 서울.경기(78.2%) 부산.경남(74.6%)지역, 그리고 언론인(90%)과 정치인(87%)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전라 지역(67.7%)과 중소기업인(70%) 중고교 교사(72%) 집단에서 낮게 나타났다. 김이사장의 경우 광주.전라지역(59.4%)과 정치인(49%) 사회단체(48%) 언론인(47%)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경상지역(30.6%)과 대기업 임원, 교수, 학자 집단(각가 25%)에서 낮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3위에 올랐다. 김추기경에 대한 지목 빈도(13.9%)는 지난 해(14.4%)와 비슷하다. 그의 비정치적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이 도덕적 권위에서 나온다. 3공과 5공 등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곧은 목소리를 냈던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과 더불어 국민들에게 개혁에 동참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정신적 지주로 인정받고 있다.

 이기택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6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처음 10위권에 진입한 이래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집단지도체제인 제1 야당 대표로서 취약한 당내 기반이 지적되기도 하나, 지난 경주 보궐선거를 통해 민주당 불모지대인 경북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이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삼성그룹의 개혁을 주도해 영향력 인지도 4위에 올랐던 이건희 회장은 올해 5위로 물러났다. 한 계단 내려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세를 바탕으로 한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종필 민자당 대표와 최형우 내무부장관은 공동 6위에 올랐다(최초 응답률에서 김대표가 다소 높음). 김대표는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직책과 의도적으로 보수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점이 감안된 듯하다.

최형우 장관 6위로 껑충
 최장관은 지난해 20위에서 6위로 껑충 뛰어올라 실세 장관임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여론조사 당시 최장관은 민자당 사무총장 직에서 물러나 아무런 직책도 맡지 않고 있었다. 8위에 오른 박찬종 신민당 대표는 그의 높은 인기가 영향력 평가에 반영된 듯하다. 공동 9위에 오른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가장 지근 거리에 있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나 현대그룹을 장악하고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도 공동 9위에 올랐다. 10위권 밖으로는 한승주 외무부장관, 전경련 회장, 김덕룡 민자당 서울시지부장, 김 덕 안기부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황낙주 국회의장, <조선일보>사장 등이 거론됐다.

 김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1,2,3위는 박관용 실장, 최형우 장관, 김덕룡 서울시지부장으로 모두 대통령의 측근이다. 박실장과 최장관에 대한 지적률은 정치인 집단과 사회단체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거의 매주 김대통령을 독대하고 있는 김종필 대표는 4위에 올랐다.

 특이한 것은 김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가 5위에 오른 점이다. 특히 언론인들이 대통령에 대한 현철씨의 영향력을 크게 평가했다. 민자당 당무위원 외에 별다른 직책을 맡지 않고 있는 서석재씨는 6위로 꼽혔다.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김대중 이사장이 7위에 오른 점도 특이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아직 만난 일조차 없다. 이같은 결과는 청와대측이 김이사장의 행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영덕 국무총리가 8위에 그친 것은 그의 영향력에 대한 낮은 평가를 보여준다.

 행정부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최형우 내무부장관이 이영덕 국무총리를 제치고 단연 1위로 꼽혔다(지적률 50.4%). 이총리는 2위에 올랐으나 지적률(11.3%)에서 최장관과 큰 차이를 보였다. 김대통령은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측근인 최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의 강한 개성과 특유의 뚝심은 주어진 권한을 거리낌없이 행사하게끔 한다. 이로 인해 자리 이상의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비친다.

 이총리 다음으로는 한승주 외무부장관, 이홍구 통일 부총리, 김 덕 안기부장, 경제기획원장관, 재무부장관, 이병태 국방부장관의 순으로 꼽혔다. 특히 언론인(68%)과 정치인(66%) 집단이 최장관을 많이 지목했다. 이총리에 대한 지적률은 공무원 집단에서, 김안기부장에 대한 지적률은 언론인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북 정책 1인자는 이홍구 부총리
 대북 정책에는 누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까. 1위로 인정 받은 사람은 이홍구 통일 부총리였고, 2위와 3위는 각각 김안기부장과 한외무부장관이었다. 김대통령은 4위에 올랐다. 그밖에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 정종욱 외교안보수석, 김대중 이사장, 이영덕 총리, 이병태 장관 순이었다.

 대북 정책의 사령탑인 이부총리(지적률 46%)가 첫번째로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온건파의 기수’로 불리는 그는 각 부처의 입장을 조율하면서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외교안보팀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편 대북 강경파로 불리는 김안기부장과 온건파인 한외무부장관의 경우도 지적률(각각 32.8%와 24.1%)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외교안보팀 중 또 한 사람의 강경파인 정종욱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대한 지적률은 8.8%로 뚝 떨어진다. 정책 결정 과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통일문제 전문가임을 자임하면서 국내외 강연을 통해 자기 소신을 펼치고 있는 김대중 이사장이 7위에 오른 사실도 흥미롭다. 이부총리에 대한 지적률은 교수.학자(58%)와 정치인(56%), 김안기부장은 언론인(53%)과 법조인(44%), 한외무부장관은 정치인(36%)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으로는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꼽혔다. 그 다음은 김덕룡 의원과 김종필 민자당 대표였고, 김윤환 의원과 박찬종 신민당 대표가 각각 지난해 6위와 7위에서 공동 4위로 뛰어올랐다. 민주당 이대표가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4위에 오른 데 이어 가장 힘있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제1야당의 당수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대표에 대한 지적률은 공무원과 언론인들 사이에서 높았다. 김덕룡 의원의 경우 정치인과 언론인 집단에서, 김종필 대표는 정치인 집단에서 지적률이 높았다.

 특별한 감투나 활동이 없이도 4위에 오른 김윤환 의원은 여전히 민정계 대부로서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에 대한 지적률은 특히 정치인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공동 4위인 박찬종 대표는 문화예술인과 중고교 교사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고 정치인과 대기업 임원 집단에서는 낮았다.

 그밖에 최형우 장관,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한동 민자당 원내총무, 황낙주 국회의장, 이 철 의원이 10위권 내에 들었다.

 상위 10위권에 들어간 인물을 소속 정당 별로 보면, 민자당 의원이 6명(지적률 합계 52%), 민주당 의원이 3명(지적률 합계 24.9%), 신민당 의원이 1명(지적률 합계 8.9%)이다. 10위권 밖으로는 문정수 민자당 사무총장, 정대철 의원, 이세기 민자당 정책위의장, 김상현 민주당 고문, 홍사덕 의원이 거론됐다.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이 으뜸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1위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지적률은 72.4%로 압도적이다. 그 다음으로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순이었다.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과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은 공동 8위에 올랐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올해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10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는 정주영 명예회장을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이는 그가 기업인의 전형에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사회단체.법조인.정치인.언론인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지적률이 높았고, 문화예술인 집단에서 낮았다. 김우중 회장은 정치인.중소기업인.사회단체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았고, 대기업 임원 사이에서는 낮았다. 10위권 밖으로는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과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이 거론됐다.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박찬종 대표(지적률 18.7%), 김대중 이사장(13.7%), 김영삼 대통령(12.2%)이 꼽혔다. 이는 곧 인기도를 나타낸다. 상위 순위를 차지한 이들 세 사람은 지적률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박대표의 경우 1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인기 조사 결과와는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일반 국민과는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신민당의 단독 대표로 추대받기 위한 전당대회를 강행했는데, 이를 저지하려는 주류측과 충돌해 유혈 사태를 빚었다. 이 여론조사는 전당대회 전에 실시한 것이므로 다시 실시한다면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박대표에 대한 지적률은 중소기업인과 중고교 교사들 사이에서 높은 반면 정치인과 언론인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치불신 현상 여전해
 김이사장인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지적률(8%)을 보인 데 반해 김대통령은 이 집단에서 가장 높은 지적률(17%)을 기록했다. 그밖에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 철 의원, 김덕룡 의원, 홍사덕 의원, 이회창 전총리, 김종필 민자당 대표, 김윤환 의원이 10위권 내에 들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32.7%나 돼 정치인 불신 현상이 아직도 팽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지껏 거론한 인물 중에서 현재 응답자 본인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응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이사장, 김수환 추기경이 순서대로 꼽혔다. 이는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순위와 같다.

 이 지적률은 도덕적 가치와 존경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을 물었을 때와는 달리 지적률이 매우 낮다. 박찬종 대표는 4위, 관계에서 대쪽 성품을 보인 이회창 전 총리는 5위, 이건희 회장은 6위에 올랐다. 10위까지를 분야 별로 분류해 보면 정치인이 7명이고 종교인.법조인.경제인이 1명씩이다. 김대통령에 대한 지적률은 공무원 집단(24%)에서 높았으나 법조인 집단(2%)에서는 매우 낮았다.
金在日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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