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떼러 갔다가 폐렴 옮는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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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중병 감염’ 많아 … 실태 파악 안돼 ‘무대책’

 ‘환자 박○○. 남자. 54세. CAH로 치료중 헤파타민 주사 후 열 발생. 배양 의뢰함. 감염 가능성‘. 서울대병원 감염관리실이 이 병원의 감염관리위원회에 매월 제출하는 보고 내용의 일부이다. 이 보고를 제출한 것은 92년 6월. 보고 사항 가운데 CHA란 만성활동성간염을 뜻한다. ’감염 가능성‘의 앞머리에는 ’병원‘이라는 낱말이 생략됐다. 보고 내용을 풀어 설명하면, 박 아무개라는 사람이 만성간염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헤파타민 주사를 맞고서 이른바 ’병원 감염‘의 첫째 징후인 발열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병원 감염이란 이처럼 병원에서 발생하는 감염, 또는 환자가 입원중에 들어온 미생물로 말미암아 퇴원 후에 병에 감염됨을 뜻한다. 93년 서울대병원이 마련한 <병원 감염 관리지침>은 병원감염을 좀더 자세하게 정의해 놓았다. 즉 병원감염이란 ‘입원 당시에는 증상이 없었고 감염증의 잠복 상태도 아니었던 감염증이 입원 후 혹은 퇴원 후에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서울대병원이 병원 감염 문제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때는 79년. 이 병원에 감염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부터이다. 입원 환자 일부가 입원할 때와 전혀 관련 없는 질병을 병원에서 얻는 사례가 잇달아 발견되자, 이에 대한 대책을 서두른 결과다. 83년 서울대병원은 병원감염을 관리하기 위한 감염실무대책반을 구성했다. 감염 관리가 본격화한 것은 91년 4월부터이다. 이 해 서울대병원은 국내에서 처음 감염 관리 전담 부서인 감염관리실을 설치했고, 93년에는 관리지침서를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같은 선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울대병원은 남의 매를 대신 맞는 꼴을 당했다. 10월6일 서울대병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원웅 의원으로부터 병원 감염 관리의 허술함에 대해 집중 추궁을 당한 것이다. 김의원은 “감염 발생률 조사를 소아병원에서만 전체적으로 시행했을 뿐, 다른 진료부의 경우 일부만 조사하거나 전혀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라고 서울대병원을 몰아세웠다. 또 “미국에서는 병상 2백50개당 1명의 감염 관리 전문 요원을 두는데, 병상 수가 1천5백80개에 이르는 서울대병원에 감염관리사가 1명밖에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병원 감염 절반 이상이 ‘악성’
 서울대병원측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대병원을 위로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는 데에 있다. 김원웅 의원이 조사한 결과, 서울대병원은 소아병원에서만 94년 상반기에 병원 감염이 2백44건(퇴원 환자의 6.3%) 발생했다. 병원 감염 관리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서울대병원이 이런 정도이니, 나머지 다른 종합 병원의 감염 관리 수준은 묻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병원 감염을 중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 때문이다. 김의원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병원 감염의 절반 이상이 폐렴.패혈증.수술후 창상감염 등 악성 감염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질병들은 단순히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다가 끝나는 병이 아니라, 치료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칫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김의원은 “서울 시내 한 종합 병원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포도상구균에 감염됐던 환자 1백2명 가운데 31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병원 감염의 심각성은 또 다른 자료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다. 서울대병원 감염관리사인 이성은씨가 지난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우리나라 병원 감염 현황과 효율적 관리모형 개발에 관한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씨가 국내 18개 종합 병원의 병원 감염 사례를 대사으로 감염 부위별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 요도감염을 제외한 폐렴.수술후 창상감염.패혈증이 전체의 37.8%에 이르렀다(41쪽 표 참조).

 물론 병원 감염 유형 가운데에는 이보다 훨씬 위험한 것도 있다. 복막염이나 중추신경계 감염 따위가 대표적이다. 이성은씨의 조사에서, 복막염과 중추신경계 감염 건수는 각각 7건이었다. 국내 18개 종합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만명당 24.1명이 병원에서 복막염이나 중추신경 감염을 일으킨 셈이다.

 문제의 병원 감염 원인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미생물학에서 장내 세균으로 분류되는 대장균이다. 또 다른 감염 원인균으로는 스타필로코코스.클렙시엘라 따위가 꼽힌다. 그람음성구균으로 분류되는 스타필로코코스는 대장균과 함께 패혈증이나 수술후 창상감염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세균이다. 막대 모양 세균인 클렙시엘라 역시 패혈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감염균은 호흡기.수술 도구.수혈, 그리고 각종 병원 도구나 생활 용품을 통해 인체에 침투한다.

 의료계는 병원 감염 원인을 의료 수준이 발달했기 때문으로 돌린다. 골수이식수술.신장이식수술 등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각종 수술이 보편화함에 따라, 수술 과정을 통해 각종 세균이 침투할 기회가 그만큼 잦아졌다는 것이다. 김준명 교수(연대의대.내과학)는 “감염 경로로는 공기 중 감염을 빼놓을 수 없지만, 잦은 수술이 더욱 큰 문제다. 수술을 하다 보면 인공호흡기.기관삽관 등 여러 가지 기계.기구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원인균이 인체에 침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병원 감염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원인은 항생제이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그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내성이 강해지는데, 내성이 길러진 세균이 환자의 몸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병원 감염균의 일종으로 알려진 MRSA는 그 중 대표적이다. 정윤섭 교수(연대의대.세균학)의 설명에 따르면, MRSA는 메치실린이라는 항생제에 특히 내성이 강한 세균으로서,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지 않으면 도저히 퇴치할 수 없는 병균이다.

감염관리사 있는 병원은 두 곳뿐
 하지만 병원 감염을 수술의 불가피성이나 항생제라는 필요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성은씨가 논문에서 밝힌 또 다른 조사 결과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국내 종합 병원의 대부분이 병원 감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마다 병원 감염 실태를 조사하고 사전 예방이나 사후 관리를 전담할 감염관리위원회라는 기구를 구성해 놓고 있기는 하다. 이씨의 설문조사에 응한 1백40개 종합 병원 가운데 감염관리위원회가 있다고 대답한 병원은 1백6개. 전체의 75.7%에 이르렀다.

 문제는 감염위원회의 대부분이 간판만 걸어놓았을 뿐 실제로는 활동이 극히 부진하다는 것이다. 감염관리위원회가 있는 병원을 조사한 결과, 회의를 아예 열지 않은 병원이 전체 1백7개 가운데 20.8%(22개 병원)였다. 또 회의를 열기는 했어도 그 횟수가 연 2회 이하인 병원이 전체의 48.2%(38개 병원)를 차지했다.

 사정이 이러니 감염 관리를 담당할 전문 인력이 제대로 배치됐을 리 없다. 조사 결과 전담 요원을 배치한 병원은 54개뿐이었다. 그중 전문 인력이라 할 수 있는 감염관리사가 있는 곳은 서울대병원과 서울중앙병원 두 곳뿐이다. 이성은씨는 논문 결론으로 ‘유명무실한 병원 감염 관리가 활성화하려면 먼저 감염관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3백~5백 병상당 최소한 1명의 전문요원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씨가 결론으로 삼은 내용 가운데에는 병원 운영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보사부에 대한 충고도 있다. 즉 ‘병원 감염으로 말미암은 의료비 낭비를 막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의료비 지불 형태를 바꾸거나, 현재의 지불제도 안에서 병원 감염으로 발생되는 비용을 병원에 부담시켜야 한다. 또 단기 차원에서 병원 감염 관리에 모범을 보이는 병원에 비용을 보조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등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병원 감염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았던 보사부는 최근 전국 80개 병상 규모 이상 2백60개 병원에 대해 부랴부랴 실태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감염 관리가 부진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병원의 현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론의 호된 비판이 오히려 병원측 사기를 꺾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준명 교수는 “병원 감염에 병원 스스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선진국 예만 들어 비판한다면 자라는 싹마저 움츠러들게 하는 결과를 부를지 모른다”라고 걱정한다.

 병원 감염 문제는 병원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설명으로 병원측이 위안을 삼고 있는 동안 병원 감염 희생자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朴晟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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