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변호사 만나면 재산 거덜난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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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부정부패 … 警·檢·法과 결탁, 비리 자행

일부 변호사들이 업무와 관련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 가운데 하나이다. 변호사가 비리 사실로 인해 구속된 적은 거의 없지만 변호사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소문은 그 동안 꼬리를 물어왔다. 변호사가 전문 사건브로커나 경찰 검찰 법원의 직원 등과 손잡고 의뢰인을 골탕 먹인다는 것은 이제 법조계 주변에서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돼버렸다.

사정이 이쯤 되자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근 수차례에 걸쳐 회원들에게 자숙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대한변호사협회도 회원들의 자정을 위한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들이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임료 체제가 불합리하고 수임료의 액수 또한 서민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83년 제정한 ‘변호사 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민사사건의 경 우 변호사는 소송에 의해 의뢰인이 얻는 경제적 이익액의 크기에 따라 1~10%률 각각 착수금 성공보수로 받도록 되어 있다. 또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각각 5백만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오른쪽 표 참조).

그런데 이 규정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변호사의 보수를 착수금과 성공보 수로 이원화해 의뢰인에게 이중의 부담을 지운다는 점이다. 착수금과 성공보수의 정의는 변호사법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착수금은 기본적인 노력의 대가이고 성공보수금은 소송이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결말이 났을 경우에 받는 일종의 보너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심하게 말하면 의사가 수술하기에 앞서 환자에게 수술에 성공할 경우 별도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식 체제를 답습한 성공보수금 수수제도는 전체적인 법질서를 흐트러놓는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성공보수금을 받기 위해 변호사는 무리하기 쉽고 그렇게 되면 재판에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판사를 매수할 가능성이 높아져 사법부 전체가 부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독일은 민형사 사건 모두, 미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주에서 형사사건에 있어서 성공보수 수수를 법으로 금한다.

민사사건의 경우 의뢰인이 소송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의 크기에 따라 변호사의 수임료가 결정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소송에 걸린 액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변호사가 더욱 수고를 하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소송액수에 따라 변론비용의 차이가 많이 나면 변호사들은 상대적으로 소송액수가 적은 사건은 외면해버리기 십상이다.

이렇듯 모순투성이의 보수기준이나마 제대로 지켜지면 다행이겠으나 이 기준은 법조계에서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이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수임액수는 천차만별이며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실정이다.

소비자운동본부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민사사건의 경우 대부분 소송액수와 상관없이 성공보수만 10~20%를 받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는 실정이다. 또 형사사건의 경우 유명인사가 관련돼 있을 때는 수임료가 수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소비자운동본부가 밝힌 사례를 보면 ㅇ씨의 경우 시가 4억원의 토지 소유권 문제가 걸린 소송에서 변호사에게 20%를 성공보수로 지급하기로 약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규정한 변호사 보수기준의 10배에 달하는 액수이다.

소비자운동본부는 또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불리한 계약을 하도록 강요한다고 비난했다. 대한변협이나 지방변호사회에서 만든 표준 계약서가 있는데도 변호사가 임의로 만든 계약서를 사용하며 심지어는 아예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소비자운동본부는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위임사무의 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액 의뢰인의 부담인데 비일상적 비용이나 액수가 큰 비용도 의뢰인의 동의 없이 변호사가 일방적으로 지출하기 일쑤이며 사후에도 충분한 이유 설명이나 영수증 제출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ㅂ씨의 경우 1심에서 패소한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소송서류 일체를 받았는데 그때 사무실 직원이 실수로 함께 넘겨준 비용지불 영수증을 검토해보니 자신에게 청구한 비용이 실제 사용한 비용보다 2배나 많았다고 한다.

변호사에 대한 원성은 구치소에 가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교통사고를 내 구속 수감된 형을 면회하러 지난 18일 서울구치소에 온 ㄱ씨(48 · 사업)는 주위 사람들에게 형이 구속된 뒤 두달 동안 벌어졌던 일에 대해 얘기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ㄱ씨가 털어놓은 그 동안의 사정은 대강 이렇다.

개인사업을 하는 ㄱ씨의 형은 두달 전 업무용 트럭을 몰고가다 인사사고를 내 경찰에 연행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피해자는 전치 4주 정도의 상처만 입었다. 담당 형사는 조서를 유리하게 꾸며줄테니 자기가 소개하는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라고 종용했다.

형의 부탁을 받은 ㄱ씨는 형사가 추천한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그 변호사는 착수금 5백만원과 검찰에서 구속영장이 떨어지지 않을 경우의 성공보수 1천3백만원 등 모두 1천8백만원의 수임료를 요구했다. 사정하다시피해 결국 착수금 5백만원과 성공보수 8백만원으로 수임료 약정을 체결했으며 변호사의 종용에 따라 미리 성공보수금까지 모두 1천3백만원을 지불했다. ㄱ씨는 비교적 가벼운 형사사건인데도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보수기준 최고치보다 3백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장담과는 달리 ㄱ씨의 형은 결국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그러자 변호사가 성공보수금 8백만원은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면 돈이 더 들 것 같아 할 수 없이 그 변호사에게 사건을 계속 맡길 수밖에 없었다. ㄱ씨는 변호사의 요구에 따라 재판에서 형이 풀려날 경우 앞서 지불했던 성공보수금 8백만원 외에 별도로 4백만원의 성공보수금을 더 주기로 약정을 맺었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그 동안 피해자와 얘기가 잘돼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합의액수는 고작 1천4백만원에 불과했다.

“우리 같은 서민이 법조계에 아는 사람이 있을리 있습니까. 일이 터지자 당황해 어쩔줄 모르겠더군요. 담당 형사가 소개하는 변호사라 믿고 찾아갔는데 이렇게까지 우롱당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피해자에게 준 보상금은 1천4백만원인데 변호사 수임료와 경찰에 준 사례비 등은 2천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그 변호사 사무실에는 관할 경찰서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대부분 저와 비슷한 일을 당했을 것입니다. 물론 경찰과 변호사사이에 사례비도 오갔을 것이고요. 변호사와 경찰이 합세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렇게 핍박해도 되는 겁니까.”

ㄱ씨의 얘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일부 변호사들이 전문 브로커나 검찰 경찰 법원 직원 등을 중개인으로 활용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거래가 워낙 당사자간에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직 표면화된 일은 없으나 변호사들 사이에는 이미 누구는 어느 경찰서의 ‘고문변호사’라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도는 실정이다.

서울시 강남구 서초동의 한 인권변호사는 “특히 형사사건은 일반 변호사들이 잘 맡으려 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의 경우 일이 험한탓도 있지만 특정 변호사들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사사건에서 변호과오나 인권침해 시비가 더욱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형사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 가운데는 시국 사건에 있어서의 경찰 번호 같은, 누구나 꺼리는 악역을 자청해 맡는 사람도 있다”고 꼬집었다.

구치소 직원들도 변호사에게 피의자를 소개해주고 구전을 챙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특히 지방의 경우에는 수임료의 30%로 액수까지 고정돼 있을 만큼 관례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지역에서는 한때 변호사들이 담합해 소개료를 20%로 깎기로 했는데 일부 변호사들이 몰래 담합을 깨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지방의 한 구치소에서 출소한 피의자는 “사동 담당자가 변호사 선임을 권하면 웬만해서는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면 사동생활이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 집 주소를 가르쳐주면 그가 알아서 가족에게 찾아가 변호사 선임을 알선해준다”고 얘기했다.

전문적으로 변호사에게 의뢰인을 소개하는 브로커는 서울시에만 수백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에는 광산사고 등 산재사건을 주로 다뤘으나 요즈음은 교통사고나 부동산 소유권 소송에 많이 개입한다고 한다. 이들은 대개 수뢰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검찰이나 경찰에서 옷을 벗은 전직 직원이거나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 출신이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뛰기도 하고 여러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 명함을 갖고 일하기도 하며 5~6명씩 모여 조직적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전문 브로커들은 능력없는 변호사의 명의를 사서 스스로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의뢰인들이 잘못해서 이런 사무실을 찾아가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이들은 과거에는 주로 고령변호사의 명의를 샀으나 요즘에는 갓 사법연수원을 졸업해 기반이 없는 변호사들의 명의를 많이 사들인다고 한다.

법원 주변에서 이같은 브로커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이들과 ‘공범’관계인 변호사들을 처벌할 마땅한 법규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변호사법에는 브로커를 활용한 변호사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고 다만 징계규정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변호사가 관련된 사건은 대개 관대하게 처리하는 것이 검찰의 관례이기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관계자 사이에서는 “변호사 주는 돈은 아무리 먹어도 뒤탈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또 변호사가 관련된 사건을 맡으려고 하는 변호사가 없다는 것도 비리를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미국의 경우 변호사의 과오나 태만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많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주겠다는 변호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법조인끼리 서로 인정으로 얽혀 있는 것도 사법 풍토를 흐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법관이나 검사가 현직을 물러나면 일정기간 동안 이른바 ‘전과 예우’를 받으며 그들에게 변론을 맡기면 대부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법률상식처럼 돼버렸다.

개업한 지 15년째 되는 한 중견변호사는 “검사나 판사가 전과 판 · 검사가 맡는 사건에 대해서는 무리하게 법적용을 해서라도 봐주기 때문에 법 질서가 엉망이 돼가고 있다. 그래서 돈없는 사람은 아무리 아파도 보석을 받을 수 없고 인신구속을 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 가둬두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검사나 판사가 전관들의 지분을 떼어놓고 보석 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개탄할 만한 풍조가 아닐 수 없다”고 얘기했다.

현재 갓 현직에서 물러나 개업한 변호사의 경우 수임료로 착수금만 보통 1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과거에는 전관 예우 기간이 1년이었지만 요즈음은 옷을 벗는 사람이 늘어나 예우기간이 6개월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수임료가 그만큼 비싸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동료들의 비리에 공분을 느끼고 정화를 주장하는 변호사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변호사들의 횡포가 결코 내부의 자각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변협 공보이사 임광규 변호사는 “법조계에서는 어떤 변호사와 판사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지 느낌으로는 모두 알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의뢰인들의 적극적인 제보가 요청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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