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 · 암기교육 사라지고 네트워크 통해 정보 교환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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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한 국민학교 학생이 자기 집 근처개울에서 채취한 물의 성분을 분석했다. 오염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이 학생은 자기 방에 설치된 컴퓨터 앞에 앉아 분석 자료를 입력한 후 일본 도쿄의 한 국민학생 앞으로 그 자료를 전송한다. 독일이나 미국의 학생도 소련 학생의 분석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거꾸로 일본이나 독일 학생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이 만든 자료를 소련 학생에게 보낼 수 있다. 이것은 현재 가동중인 ‘키즈(Kids) 네트워크 프로젝트’의 한가지 사례다.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자금지원으로 가동되는 이 네트워크는 미국 각 지역과 독일 소련 일본 등 세계 10개국을 연결한 텔레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어린이들을 마치 ‘같은 반’ 학생처럼 묶어놓고 있다.     국민학교 4 · 5 · 6학년 학생을 상대로 한 이 프로젝트에 우리나라 학생이 참가할 날도 멀지 않았다. 한양대학교 컴퓨터교육연구소(소장 허운나 교수)는 과학기술처의 도움을 얻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12월 14일 소련 과학원의 알렉세이세메노프 박사(소련 뉴테크놀로지 연구원장)를 초청해 한국 · 소련 학생들 간의 교육 교류 방안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진 것도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다.

컴퓨터 통해 세계 어린이가 ‘같은 반’
교육전문가들은 컴퓨터 교육의 대중화를 교육분야에서 예상되는 변화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한다. 전자대학(Electronic University)은 이미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시스템으로, 집에 컴퓨터와 전화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고, 선생에게 질문하고 싶으면 특정인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자통신(Electronic mail)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컴퓨터 교육이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교육개념에 대해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해야 한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컴퓨터 교육이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지적되는 것도 컴퓨터를 교육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교육 그 자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교육에 불어닥칠 변화의 회오리는 이미 예고되었다. 기존의 교육 개념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교육 개념이 서서히 자리잡아간다. 전문가들은 “교사가 지식을 독점한 채 입과 분필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입을 모은다. 출판과 인쇄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자료와 정보를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사 못지않은 정보를 가질 수 있다. 컴퓨터 등 교육 보조수단 활용 기술도 교사보다 학생이 더 낫다. 교육자가 지식을 주무기 삼아 일방적으로 피교육자를 지배하던 시대는 사라지는 것이다. 교사 요원의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의 양적 발전을 위한 인력공급처쯤으로 간주되던 학교도 진정한 인간교육의 場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입시 위주로 짜여져 있던 교과목은 비효율적인 교육자료로 판정되어 대부분 수정되거나 3분의 1 이상의 과목이 폐기처분될 수밖에 없다. 이에 해당되는 것이 이른바 암기과목이다. 컴퓨터나 화일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 덕분에 백과사전 암기식 교육은 통용될 수 없다. 그 대신 창의적인 생각과 응용, 협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 1학년생의 학습량은 영국의 고교 1학년인 11학년생 학습량의 2.3배에 가깝다.

교사에 의존 않고 자료로 ‘자기 학습’
교사의 학습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21세기 학교 모습을 그려보려면 현재 일부 선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국민학교의 ‘카펫 교실’을 연상하면 된다. 널찍한 교실에는 딱딱한 책상 대신 한켠 구석에 카펫이 깔려 있고, 그 위에 학생 10여명과 교사가 원을 그리고 앉아 함께 토론한다. 교사는 교과서 대신 두툼한 자료철을 들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활동과 발전단계를 1년 단위로 기록한 포트폴리오다.

예를 들면 학생에게 추리소설을 읽힌 후 범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지목하게 만들고,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사고 과정을 기록하게 한다. 해마다 교사는 한단계 높은 추리물을 학생에게 읽히고 같은 방법으로 판단 과정을 기록하도록 만들어 매년 변화된 자료를 모아놓았다가, 진급할 때 담당 교사에게 자료를 넘긴다. 무용이나 음악 과목은 비디오테이프에 학생의 활동상을 담아놓는다. 한 학생의 모든 활동을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교육지도 자료로 삼는 것이다. 교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바뀌는 셈이며, 학습자는 교사에 의존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기 학습’을 하는 셈이다.

학부모의 적극적인 교육 참여야말로 21세기 교육의 주춧돌이다. 교육비의 대부분을 부담하면서도 교육주체로서 대접받지 못했을 뿐더러 발언권도 전혀 없었던 학부모들이 비로소 교육의 주소비자로서 제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지역 사정에 맞는 교과목을 채택하게끔 압력을 넣기도 하고, 교사를 채용할 때도 학부모 모임의 승인을 얻도록 한다. 유치원 교육은 현재 학부모의 선택사안에 속하지만, 조기교육제도 정착으로 초등교육이 유치원에서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폐쇄적인 기존 교육제도와 개방을 대전제로 한 새로운 교육제도 간의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91년말 상공부에서 독자적으로 산업기술대학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교육부가 기존 교육제도로도 기술교육이 가능하다며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이미 20세기와 21세기적 교육제도의 갈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현재 공교육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 · 공립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가 특정 개인의 소유이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사유화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고등학교의 50% 이상이 사립인 반면 전문대의 91%와 대학교의 76%가 사립학교다. 외국의 경우 사립은 국 · 공립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 사립이라 하더라도 공공단체가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따라서 교육기회도 사적으로 ‘쟁취’해야 할 실정이다. 교육기회의 공유야말로 21세기 학교가 갖추어야 할 기본 골격의 하나이며, 이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콩나물 교실이나 입시지옥 등 온갖 비교육적인 교육과제가 해결될 수 있고, 대학교도 입학정원 중심의 양적 교육에서 졸업정원 기준의 질적 교육으로 전환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인간교육’ 평준화 염려도
산업구조 변화도 교육의 모습을 바꾸어놓게 된다. 기술 진보 속도가 빨라질수록 학생 시절에 익힌 기능이나 지식은 유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실무 재교육’ 필요성이 높아지고 시민대학 같은 평생교육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무려 3천 강좌가 마련된 시민대학이 운영되고 있으며, 젊은층의 실업문제가 심각한 프랑스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직업교육에 필요한 재정을 부담하도록 법으로 명시한 동시에 노동자에게는 ‘교육 휴가’ 권리를 부여해놓았다. 평생교육의 증대는 대학진학의 필요성을 격감시킬 것이다. 대학교는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선택일 뿐이지, 사회진출을 위한 발판이라든가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수단의 개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전자학교나 전자통신, 컴퓨터 네트워크 등의 등장이 반드시 긍정적인 평가만 받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교육수단(컴퓨터)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역작용이 생길 수도 있고, 학교의 ‘인간화’와 인간교육이라는 교육 목표가 자칫 또 한번 ‘평준화’라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불평등은 장기적인 정책보완과 혼합매체(multi media)의 제도적 확보로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 교육의 장래는 암담할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교육은 빈사 상태”라는 것이다. 학교버스는 노란색을 칠하도록 법제화 되어 있고 노란색 버스에 통행 우선권을 주는 외국 사례는 ‘이상한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한 학자는“어린이를 태운 버스가 철길 건널목을 지나다 참변을 당한 것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살인행위”라고 말한다.

한국 교육의 향후 10년은 결코 분홍빛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의 국민학교 교실에는 한반에 평균 45~50여명이 몰려 있다. 일본은 평균 24명이다. 21세기 학교의 자화상은 ‘보다 인간화된 학교’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10년 앞 교육을 설계하기보다는 우선 교육에 집중적이고 획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부터 돈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효과는 20여 년 후인 2010년대에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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