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장들 ‘4불 2난’에 짓눌려 신음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11.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정.부패.불합리.부조리.자금난.인력난’에 허덕…성공한 기업주도 “문 닫고 싶다”…정책 혼선.부재로 앞길 ‘캄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건물 앞에는 커다란 바위에 ‘중소기업은 나라의 주춧돌’이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5공화국 대통령 이름이 낙관과 함께 새겨져 있는데,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이 기념비는 날이 갈수록 퇴색해 가는 것 같다.

 정계.학계.업계 일각에서는 현 시점이 중소기업을 살려 놓아야 할 마지막 기회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을 앞두고 보호.육성해에서 자율 경쟁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물론 이같은 선회를 만시지탄이라며 반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중소기업인은 ‘중소기업 전체가 고사하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 위기 의식은 기업에 평생을 걸고 투신해온 삶을 아무 곳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피해 의식과 연결되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마지못해 문을 열고 있는 것이지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다” "이민 가고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중소기업 사장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왜 이지경이 됐느냐고 묻지말라”
 거의 모든 중소기업 사장들은 언론을 기피한다. 영업, 제품 개발, 납품, 자금 조달, 사람 관리 등 혼자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틈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추어져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한번 언론에 나간 다음에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 너무 많다. 비디오 테이프 장사, 월부 책 장사, 관련 기관들, ‘이상한’ 신문들이 저마다 ‘축하한다’며 손을 벌리는 것이다. 이들로부터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더라도 며칠 동안 전화통에 불이나 업무가 마비된다.

 그러나 더 큰 압력은 해당 관청에서 날아온다. 언론을 통해 기업인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은 ‘관련 기관’은 즉각 반응을 보인다.

 ‘정말 이렇게 나오기냐. 당신들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당신들 언론에 나가는 것은 잠깐이지만, 칼은 우리가 쥐고있다. 우리는 이 때만 넘기면 된다. 우리한테 와서 얘기하면 될 걸 왜 언론에 터뜨리는 거냐. 두고보자.’ 한번 언론을 ‘탄’ 중소기업인은 그래서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언론에 소개되는 중소기업 관련기사는, 그리하여 거개가 성공 사례 아니면 매번 그 소리가 그 소리인 문제점 지적으로 대별된다. 일반 사회에서 중소기업과 그 사장들의 안타까움.설움.피해의식.분노.허탈감과 같은 실상과 내면 세계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 해제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비준안(UR협상안 비준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한편, 남북 경협에서 중소기업이 선두에 나서야 한다는 못소리가 높아가는 이 때 <시사저널>이 만나본 중소기업 사장들은, 제조업.완구.축산유통.의류 등 해당 업계에서 저마다 뚜렷한 업적이 있는 인물들이다. 성공 사례에 적합한 사장들이 털어놓는 하소연이 이럴진대, 업계 일반의 울분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반도체 다음 가는 전기 부품인 와이어 하네스를 생산하는 (주)정보텔의 梁昌植 대표이사(59)는 업계에서 곧은 소리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중소기업 사장을 방송 시간을 때우고 지면이나 메워주는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취재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취재해야 합니다.” 양사장은 언론부터 공격했다. 그는 자기가 개발해 적용하고 있는 ‘오페라식 기업 경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장 1명에 나머지는 모두 종업원 체제. 지휘자 1명이 악단 전체를 지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악보라는 정보를 공유해 공연을 하듯이 사장과 종업원도 정보를 통해 운영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종업원 18명에 외형 20억원인 중소기업 사장인 그는 대기업인 미주그룹에 강의를 나간다. 건국대 경영대학원, 연세대 산업대학원, 고려대 언론대학원,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을 수료하고 현재 연세대 특허법무대학원에 다닌다. 현장 경험과 이론으로 무장한 양사장의 중소기업 옹호론은 직선적이고 또 총론적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관해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반박한다. “중소기업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묻는 것은, 위암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더러 왜, 어떻게 위암에 걸렸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환자를 윽박지를 격입니다.”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신랄하다. 규제는 그대로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중소기업에게 물은 주지 않고 종자만 쥐어주고는 왜 키우지 못하느냐고 질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 지휘자’는 중소기업 활성화 방안으로 돈의 공정한 흐름과 배분을 내세운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돈의 물꼬를 대기업에만 대주는 사이에 이미 세계 시장은 중소기업을 파먹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무대첵’일 뿐이다. 대기업이 정부의 눈에 잡히지 않으리만큼 거대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창식 사장은 “이전에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 먹었지만 앞으로는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는 시대가 된다”라면서 중소기업의 순발력에 기대를 걸었다.

제조업 외길 25년…남은 것은 허탈감
 한국금형협동조합 이사장이며 (주)상진 정공 대표이사인 權五鉉씨(58)는 25년째 제조업 외길을 달려왔다. 지난 70년에 종업원 30명을 채용해 금형 제작과 기계 부품을 가공하는 제조업을 시작했다.

 회사를 설립한 첫해에 그 때 돈으로 3천여만원 적자를 보았다. 납품 업체가 자체 시설을 갖추는 바람에 70년대 말에는 회사를 정리하기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았다. 80년대 들어 삼성전자와 거래를 트고 법인으로 전환해 현재 인천.평택.광주에 공장이 하나씩 있고 종업원이 2백 90여 명, 연 매출액 1백30억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권사장은 중소기업인들의 위기 의식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염려한다. 그는 당국에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먼저 중소기업인들에게 보람을 느낄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세계경제 질서가 급변해도 당국이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우루과이 라운드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금융 지원을 해주고 인력 양성 시스템을 갖추어 달라는 것이다.

 다른 중소기업 분야도 그러하지만 특히 금형공업 분야는 숙련공이 절대 필요하다. 상공부 창업심의위원이기도 한 권사장은 “지난 6~7년 사이 고참 숙련공들이 독립해 나가면서 기존 업체나 창업 업체 모두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존 업체는 우수한 설비는 있지만 숙련 기술이 없고, 창업 업체는 기술은 있어도 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고 출신들이 현장을 기피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다. 공고나 직업훈련소를 나와서 군대에 다녀오는 동안 손끝은 무뎌지고,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생각도 바뀌어 결국 서비스업 쪽으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데려온 인력이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권사장에 따르면, 현재 2만 명이 들어와 있는데 절반은 배치된 업체를 떠나 버렸다.

 “당국은 불법 체류자를 단속.관리할 능력이 없어요. 업체가 여권을 보관하고 있어도 달아납니다. 이 땅에서 번 돈은 본국으로 다 송금하고 비행기표 한 장만 들고 공항으로 갑니다. 출입국 관리소는 그들을 수용할 대책이나 예산이 없으니까 그냥 내보냅니다.”

 정책 혼선, 자금난, 인력난은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사장은 중소기업과 한몸이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중소기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기업체 내부 혹은 우리 사회 전반의 불합리와 부패 때문이다. 권사장은 "사회적인 대우는 그만두고 회사 안에서만이라도 대접을 받았으면 한다“고 토로한다. 종업원들이 기업주를 ‘착취자’라고 매도할 때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천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 때도 울화가 치밀었다. “30년 가까이 기업체를 운영한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1억원이 못되는데 8~9급 공무원이 세금을 훔쳐 수 백억 재산을 굴렸다니 말이 됩니까. 전에는 이민 가는 사람들을 비판했는데, 우리 사회의 이같은 부패를 접하면 그만 이민을 떠나고 싶습니다.” 권사장의 허탈감은 생애를 기업에 쏟아 부어 온 중소기업 사장들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권사장은 만일 대통령을 만나면 범죄 행위를 단죄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건의하고 싶다고 한다. 공무원 사회와 교육계를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사회 변화는 백년하청 이라는것이다.


골프.정치 멀리했다가 자금줄 막혀
 완구 수출업체인 (주)베스트 에버 대표이사 金光中씨(53)도 같은 견해를 펼친다. 사회 전반의 불합리가 개선되지 않는 한 중소기업의 도약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70년대 중반 여직원 한 사람을 데리고 완구업에 뛰어든 김사장은 2년 3개월 만에 종업원 2천명을 이끄는 기업으로 키웠다. 그가 세운 (주)소나는 한창때 ‘제2의 대우’ 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팽창하는 조직을 경영과 자금이 따라가지 못했다. 

 "영세 기업에서 중소.중견 기업까지는 노력여하에 따라 올라갈 수 있지만, 중견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건너뛰기는 만만치가 않다“고 김사장은 말한다. 그 이유를 김사장은 자기의 판단실수에서 먼저 찾는다.

 그는 정치(로비)를 멀리했다. 70년대 후반 기업이 급신장세를 보이자 은행 지점장들이 골프를 치러 가자고 했는데 단호히 거절했다. 로비보다는 일에 주력했다. 결국 그는 은행 돈을 빌려 쓸 수가 없었다. 여기에 3D직종을 멀리하는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신혼 여행도 못가고 컨테이너에서 밤을 새울 정도로 일만 해온 그는, 사업을 그만둔 뒤 외국 업체의 국내 지사를 맡으면서 인생관을 바꾸었다.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전략도 업종 다양화, 고급화, 다품종 소량화로 바꾸었다. 출판에 손을 댔고 팬시용품도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실패였다.

 “품질 고급화는 관련 산업 부문이 전반적으로 고급화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다품종 소량화 역시 자재 주문 발주가 안돼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다른 품종을 원하는 업체에서 원단 공장에 주문을 하면, 주문량을 생산하는 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기계의 바늘과 실을 교체하는 데 한나절이 걸리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외부를 탓하기 전에 먼저 업계의 허물을 개선해야 한다는 김사장은, 급하게 몰려다니는 국민성이 달라져야 한다고 진단한다. 성수대교 붕괴도 이러한 국민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사 정권에서 문민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국민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1백50번이나 해외를 다니면서 재기의 발판을 다진 김사장은 올해 수출액을 약 5밴만달러로 잡고 있다. 그는 중국.동남아에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최근 중국 청도에 가봤더니 한국에서 진출한 완구 업체만 20여 개나 되었다. 김사장에 따르면, 한국 업체들은 저마다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한국 업체끼리 정보 교류가 안되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비판이다.

 김사장은 남북 경협이 국내 중소기업을 살릴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한다. “임금.인력난으로 고사 직전인 국내 3D 중소기업(그는 ‘판자촌’이라고 표현한다)이 먼저 들어가야 남.북한 양쪽에 도움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국내의 설비는 북한의 경공업 수준에 견주면 현대적 장비여서 환영받을 수 있고, 우리로서는 언어가 통하는 고급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것이다.

정부는 소비자를 속이라고 부추긴다?
 올해 42세인 (주)도드람유통 대표이사 李範浩씨는 농촌 운동과 기업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 양돈 농가와 가공육(브랜드육) 유통 시장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다.

 사료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다 90년에 양돈 농가 열세 사람을 회원으로 규합해 법인을 설립한 이사장은 창업 때 조합을 모색했으나 당국의 관행에 부딪혔다.

 “농수산부가 1도 1조합 원칙이 있으니 기존 조합에 가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조합에 들어가면 관료화라는 병폐에 부닥칠 것 같아 법인 쪽으로 돌아섰다. 순발력이 절실하다는 판단이었다.

 92년 7월 ‘도드람 포크’라는 브랜드육을 처음 생산했으나 판로를 뚫지 못해 고생했다. 지금은 백화점과 슈퍼마켓 50여 군데에 납품한다.

 “물가단속반이 전화를 걸어오면 저는 제발 단속 좀 나오라고 합니다.” 엄격한 회원 관리, 위생적인 처리 등으로 원가가 비싸 포크는 일반 돼지고기에 견주어 10%가 비싸다. 공무원들은 가격만 보고 내리라고 압력을 가해온다. “제발 단속을 나와서 왜 가격이 비싼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나오더군요”라고 이사장은 말한다.

 무조건 가격을 내리라는 지시는 기업 문을 닫든지 아니면 소비자를 속이라는 말밖에 안된다고 이사장은 반박한다. 소비자를 속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돼지를 빨리 자라게 하고, 도축 과정을 단축하면 원가가 절약된다. 그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국내 돼지고기가 부족하면 무조건 수출을 중지하라는 지시도 불합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사장은, 당국이 돼지고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우리와 일본은 돼지고기를 먹는 부위가 다르다. 우리는 삼겹살과 목살만 먹는데, 일본은 돼지안심과 등심만 먹는다. 수출을 금해도 안심과 등심은 남아도는데, 무조건 수출을 금하는 바람에 일본은 한국 돼지고기 수출업자들을 믿지 않는다.

 도에서는 식품제조업(단순 절단 가공업)으로 허가를 내주는데, 이 업종이 경제기획원 표준 산업 분류표에는 도소매업으로 분류돼 금융 지원을 받을 때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식품 제조업으로 관리 감독을 받고도 제조업이 누릴 수 있는 특혜에선 제외당하는 꼴”이라고 이사장은 말한다.

 새 모델을 정착시키고 이같은 농촌운동이 확산되기를 희망하는 이사장의 가장 큰 어려움은 당국과 사회의 농업 홀대이다. 산업화 제일 정책, 수입 개방 물결에 밀려 농업을 ‘하루빨리 포기해야 할 유물’쯤으로 치부해버리는 당국이나 사회 일반의 시각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는 선진국은 농업도 선진국이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덴마크.일본.미국의 농업현장을 견학하면서 확인했다.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좋은 돼지고기를 생산한다.”고 자부하는 그는 농업도 경쟁력이 있는 첨단산업이라고 확신한다.

 20년 넘게 의류만 생산해온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익명을 전제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80년대에 두 차례 부도를 내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해에는 외형을 1백30억원으로 끌어올렸지만 지금은 집도 은행에 잡힌 채 무일푼이나 마찬가지 신세이다. 종업원 30명에 순수 부채만 10억원 정도이다.

 이 업체는 서울 근교에 거금 23억원을 들여 패수 처리 시설을 갖춘 염색공장을 인수했다. 잔금 6천만원을 남겼다가 올해에 마저 치렀는데, 공장 내부의 기계 설비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염색업 허가가 취소되었다. 기계 위치는 가동에 전혀 문제가 안되는 것이었다.

 “폐수 처리 시설이 안된 다른 염색공장은 밤이나 비오는 날 몰래 폐수를 방류해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데 우리같이 정식으로 처리 시설을 갖춘 공장은 사소한 기계 위치를 문제 삼아 취소해 버렸습니다.”


은행.세무서 등에 해마다 6백만원 상납
 한 업체 사장은 파출소에 20만~30만원(명절때마다). 세무서에 연 2백만~3백만원, 은행에 연 2백만~3백만원을 건네 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관청이나 은행보다는, 영세 제조업체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수출했으니 회비를 내라는 무역협회와 상공회의소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면초가, 중소기업의 현실은 어둡기만하다.한 중소기업 사장은 “국가가 팔 벗고 나서서 도와줘도 될까말까 한데, 우리 정부는 발목을 잡습니다”라고 말한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쪽을 보라’면서 한국을 추격하던 말레이시아는 한국을 제외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화는 말레이시아보다 처진다.

 ‘중소기업은 나라의 주춧돌’이라는 空言을 명실상부한 公言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