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6공 선봉부대 ‘新黨 고지’ 오르는가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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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발전연구회 회원들, 광역단체장 출마 선언…선거 뒤 구 여권과 ‘결합’ 가능성


 요즘 정가에 나도는 여권 신당설에는, 현 정치권에서 조합이 가능한 온갖 가상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3당 합당을 경험한 터라, 주요 등장 인물 또한 가지각색이다. 신당설 시나리오에는 김영삼 · 김대중 · 전두환 · 노태우 · 박태준 · 박준규 · 장세동 · 박철언 씨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이제는 국민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인물까지 등장한다.

 이처럼 꼬리를 무는 소문 속에 늘 거론되는 정치 집단이 하나 있다. 바로 전직 국회의원, 전직 장관, 전직 장성, 전직 대사 모임인 한국정치발전연구회(한정연)이다. 이 단체의 모체는 91년 5월12일 13대 국회의원 출신들이 결성한 ‘1 · 3 정치 개혁 연구회’, 이 단체는 당시 정가에서 주로 ‘1 · 3정우회’로 통했는데, 지난해 10월29일 한국 정치발전연구회로 명칭을 바꾸고 국회에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했다.

민자당 탈당 위협·세 과시 전략 펼쳐
 그런데 요즘 한정연과 관련해서 진원지를 확인할 수 없는 신당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의 내용은, 이 단체 핵심 인사들이 장세동씨 등 5 · 6공 중심 세력과 접촉을 시도하면서 내년 지방자치 선거에 어떤 식으로 참여할지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내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이 단체 주요 인물들이 자치단체장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인데, 이는 5 · 6공 세력이 추진하는 구 여권 신당의 기초 공사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 단체 핵심인사들은 “외부에서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장세동씨를 비롯해서 5 · 6공 세력과 만난 적이 없다”라고 해명하지만, 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하기는 이 모임에 소속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런 소문이 나올 법도 하다. 약 1백30명에 달하는 한정연 회원 대다수가, 지난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거나 민주계에 밀려난 민정계 충신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단체 이사장은 정종택 전의원, 회장은 이치호 전의원, 사무총장은 김종기 전의원이 각각 맡고 있다. 고문에는 강영훈 전 총리를 비롯해서 김재순 · 윤길중 · 채문식 씨 등 한때 여권에서 실력자로 행세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그런데 눈여겨 볼 대목은, 이 단체 핵심 인사들이 신당 가능성에 대해 적극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당 가능성이 전혀 없느냐는 질문에, 김종기 사무총장은 “정당 태동은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여론이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면, 그럴 때마다 새 정당이 탄생한 것이 바로 한국 정치사이다”라고 묘한 답변을 했다. 이치호 회장도 “아직까지는 통일된 의견이 없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5 · 6공 세력과의 조직적인 연대 움직임은 없었지만, 신당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가에서는 이들이 자기네와 관련지어 떠도는 신당설을 오히려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냐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즉 여차하면 당을 뛰쳐나갈 수도 있다는 점을 내비침으로써 지방자치 구면에서 민자당내 발언권을 강화하고, 신당을 염두에 두고 물밑에서 움직이는 각 정치 세력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중 효과를 노린다는 분석이다. 사실 그러한 징후는 최근 들어 속속 목격되고 있다.

 이 단체 소속원 가운데 광역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김종기 사무총장은 이미 대구시장에 출마할 뜻을 굳혔고, 정동성 전 의원도 경기지사를 노리고 있다. 이 단체 이사장인 정종택 전 의원은 충북지사를 겨냥해 활발한 지역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김용래 전 서울시장 역시 자천타천으로 서울시장 후보 물망에 올라 있다. 심완구 전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에 나설 예정이다. 이치호 회장은 “현재까지 이 정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광역단체장 출마 희망자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5 · 6공과 ‘한정연’은 서로가 필요한 존재
 현재 자치단체장 출마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한정연 회원 대부분은, 만약 민자당 공천을 받지 못하면 탈당 후 무소속 출마까지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종기 사무총장은 “공천은 나중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라며 은근히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동성 전 의원은 “탈당 얘기는 닥쳐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광역 단체장 선거에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듯한 태도이다.

 이 대목이 한정연 주변에서 신당 가능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일단 기소유예로 12 · 12군사 반란 사건을 무사히 넘긴 5 · 6공 세력에게는 아직 5 · 18 관련 법적 공방이라는 고비가 남아 있다. 즉 이들은 공소시효 만료 시점인 95년 5월17일까지는 김영삼 정권에 발목이 잡혀 있는 꼴이다. 따라서 내년 6월27일 지방자치 선거 이전에 5 · 6공 세력이 신당을 만들기에는 법적으로 부담이 크다. 만약 이들이 진짜로 신당 창당에 집착하고 있다면 갈 길은 뻔하다. 즉 자기 세력을 내년 지방자치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시켜서 정치 입지를 확보하려 들 것이다. 광역단체장 한두 개만 차지해도 96년 총선 이전에 판짜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가 5 · 6공 세력과 한정연 소속 광역 단체장 출마 희망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현실적으로도 현 정치권에서 5 · 6공 세력의 입맛에 맞는 인적 자원을 한정연만큼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는 집단은 없다. 특히 야권은 한정연 소속 회원들이 지방자치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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