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자본주의 사회 건설해야”
  • 정리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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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漢彬 박사 · 金光雄 교수 대담 / “20~30代를 신바람나게 해야 한다”

한국의 향후 10년을 각 분야에서 예측해본 결과 얻게 된 결론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서울에서 세계를 조망해야 한다는 한반도의 특수성이 그 하나이고, 가만히 앉아 미래의 조류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선택해서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당위로서의 미래가 두번째 특성이다. 또 하나는 과거의 부정적 잔재를 청소하는 동시에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병존 또는 병행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미래학회의 산파역을 맡았던 李漢彬 박사와 金光雄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대담을 통해 ‘한국, 2002년의 대변혁’의 결론을 이끌어내본다.

김광웅 : 선생님이 3 · 1운동의 1백주년이 되는 해인 2019년을 염두에 두고 89년에 쓰신 ‘2000년을 바라보면서’라는 글이 있습니다. 2000년을 대비해 우리에게 준비의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한빈 :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특수상황에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미국이 곧 세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세계주의에 매몰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분히 낭만적인 것이지요. 뉴욕이나 보스턴에 앉아 바라보는 세계와 파리나 런던에서 바라보는 세계, 또 서울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차라리 우리는 바르샤바나 프라하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도쿄에 설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긴장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여연구씨가 남한을 방문하는가 하면, 화염병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긴장은 몇달 안에 사라질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몇십년 동안 계속 될 것도 아닙니다. 저는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같은 책을 보지 않습니다. 그 책에 나온 내용은 우리가 더 절실히 느끼고 있고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얘기들입니다.

김 : 서울에서 세계를 보라는 말씀이군요. 그리스에서는 91년이 그리스 민주주의가 실시된 지 2천5백년 되는 기념의 해라고 해서 1년 내내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 : 스위스에서는 지자제 실시 7백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지요.

김 : 어떤 분야에서건 세기말에는 진통을 겪는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학문에서는 1890년에 행태심리학 이론이 나온 이후 컴퓨터 기초 이론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예가 되겠군요.

이 : 19세기말에서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의미있는 변화였는지를 먼저 지적해봅시다. 19세기말에 우리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열강’이라는 말만 나오면 정확한 의미를 따질 겨를도 없이 두려움을 먼저 느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는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말과 비교해 볼 때 대단한 변화이지요.

김 : 19세기말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 와중에도 ‘홍범14조’나 추밀원이 만들어진 것은 공화국의 기반을 닦으려는 노력의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 : 한 사회가 아무리 경색되고 폐쇄되어 있더라도 그 사회에는 바깥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극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바깥 세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개혁파와 수구파가 나뉘어지지요. 바깥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개혁파가 되고, 우리가 가장 나은데 무슨 소리냐 하게 되면 수구파가 되는 것입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수구적인 경향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지요. 김옥균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에게 일본은 큰 의미가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거목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선진문화를 직접 접하지 못하고 몇몇 역관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과 접촉했기 때문에 불행했다고 할 수 있지요.

김 : 19세기를 20세기로 연결해보기로 하지요. 선생님께서는 늘 ‘동심원’이론을 주장하십니다. 환태평양권에서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아세안이 내심원이라면 인도나 호주, 미국이나 유럽이 외심원이라는 말씀인데 내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동심원을 주축으로 한 90년대의 변화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이 : 열강론이 다시 나온 셈인데 19세기말의 우리 선인들이 들으면 몸서리를 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세계는 더이상 우리에게 두려운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월남에 파병했고 중동 건설에 참여했으며 유럽과 아프리카에도 진출했고 미주에도 이민이 나가 있습니다. 외원이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외원의 상당 부분이 내원에 가까워졌다는 말입니다. 내심원에 속하는 러시아에 대해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저는 ‘소련’이라는 말을 안 쓴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등 서쪽은 다 떨어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즉 소련은 오래 못간다고 봤던 것입니다. 결국 연방이 해체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말했던 러시아는 노 · 일전쟁 당시의 러시아를 일컬었던 것이지요.

김 :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내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남북한간에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도 큰 변화의 하나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남북한간의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 : 20세기말의 국제관계는 안보로부터 시장, 즉 경제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굳이 간판을 내걸지 않더라도 남북한의 직교역이 사실상 시작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분위기에서 남북한간의 공동시장이 형성되어가는 시기인 셈이지요. 남한 내부에서는 변동 자체보다는 변화라는 개념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북한도 우리와 똑같이 자본에 의한 변화의 충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겪은 변화를 북한도 새로운 국제정세와 관련해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변화를 겪는 과정을 용인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역사적인 기회거든요. 우리는 인내로서 기다려야 하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게 충분한 변화의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압축해서 단기간에 내부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김 : 선생님께서는 64년에 유럽공동체(EC) 초대 대사를 지내셨는데, 남북 공동시장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이 : 통치영역이 서로 다르지만 가장 먼저 물자와 상품을 교역하기 시작해서 내국경제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공동시장 개념의 핵심입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나 우루과이라운드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그 다음엔 자본과 경영이 움직이게 됩니다. 이미 남한의 기업체가 홍콩 등지의 지사를 통해 북한 상사와 거래를 텄습니다. 자본과 경영이 움직이면 다음에는 노동력이 움직이게 됩니다.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이산가족끼리 먼저 만나자고 하는데 감정적으로는 백번 옳은 말입니다만, 냉철한 경제이론으로 봐서는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원산이나 남포 청진 등 해안도시에 남북한 합영공장이 세워지게 된다면 자본과 경영은 남한이 대고 북한은 기술과 노동력으로 참여하는 식이지요. 이런 추세가 일반화되면 공장이 해안 등 변경에서 점차 중심부 내륙으로 들어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김 : 구체적인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십니까.

이 : 멀지 않았습니다. 북한도 태평양 경제권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이미 들어와 있거든요. 우리는 간판 내걸고 요란떨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의 체면을 상하지 않게 해서 순조롭게 끌어들여야 합니다.

김 : 팩시밀리를 통해 남북한간에 이미 교통이 되고 있습니다. 지식 정보의 교류도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 같은데요.

이 : 현재는 물품명세서 등 극히 상업적인 팩시밀리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일부 정치권에서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방송 교류를 먼저 하자고 주장하는데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김 : 남북간 격차가 대단히 큽니다만 남한이 안고 있는 사회 내 차등과 간극 불평등 차별 등 내적 문제도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북한은 차치하고 지금 같아서는 남한이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이 : 우선 지역간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일이 통일의 지름길입니다. 지금까지는 부산을 중심으로 영남의 해안공업지역과 경인 · 경수지역을 연결하는 축으로 경제가 움직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충청남북도와 호남, 강원도 및 경북 등 영동지역은 오지처럼 되어왔습니다. 시급한 문제입니다. 둘째는 지방자치를 정상화시키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기초와 광역의회를 구성했을 뿐입니다. 입법부만 있고 행정부는 없는 상태이니 민선 자치단체장을 빨리 뽑아야지요. 그렇게 되면 선진국형 정치형태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김 : 지방자치제에 거는 기대가 상당히 크신 것 같군요.

이 : 동독과 서독이 1대1로 통합된 것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먼저 서독과 동독의 몇개주끼리 통합하는 형식을 취했거든요. 주끼리의 통합이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전체 통합과정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남북한 지방자치단체끼리의 교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김 : 독일의 경우 국경 가까이 있는 자치주끼리 교류를 시작했고 그 숫자가 확대돼나갔지요.

이 : 15년 전 서베를린에 갔을 때 서독 최남단 바이에른주의 슈트라우스 대통령과 한 호텔에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극우보수주의자였는데 동독의 호네커 정부에 대한 재정지원을 추진하기 위해 그 호텔에 머무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 : 세대간의 의식격차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 통계조사를 보니까 10명에 7명이 세대차를 느낀다고 대답했더군요.

이 : 20대나 30대를 신바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민족통일은 우리의 일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동안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이제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점점 투명해지고 있어요. 예를 들지요. 경제가 몇 사람 손아귀 안에 들어 있다는 인식을 없애주고 어수룩한 구석이 적어졌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남북을 합치려면 역시 돈이 필요합니다. 현재로서는 통일할 만한 재정적 바탕이 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김 : 아직도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많은데요. 권력이동이라는 말을 꼭 쓸 필요는 없겠고, 축의 이동이랄까요 권력분산의 필요성도 지적되어야 할 듯싶습니다.

이 : 축의 문제는 정책의 방향입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90년대의 가운데 토막인 중반을 이끌어갈 정치인을 선출하는 중요한 선거입니다. 다음 정권을 획득하겠다고 나서는 정당이나 사람은 그런 점에서 재정적 방안과 더불어 분명한 정강정책을 제시해야 하고, 국민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김 : 다음 세대의 유능한 엘리트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글세대에 희망을 걸 수 있겠습니까.

이 : 통일세대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새로운 변경’(뉴프런티어)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통일이 그대들의 어깨에 있다는 식의 정신적 변경과, 캐나다 알래스카 호주 러시아의 극동부 등 면적 비례로 봐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지리적 변경도 함께 제시해주어야지요.

김 : 같은 맥락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는 유엔에서 학교로 공문을 보내기도 합니다. 유엔에서 일하고 싶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오라는 것이지요.

이 : 중요한 현상입니다. 조선조의 양반체제 아래에서는 지금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 관리가 되는 것이 곧 사회진출의 전부였어요. 이제는 정치 말고도 할 일이 많습니다. 운동권에서 발산하던 힘도 통일로 돌려야 합니다. 무역적자를 흑자로 돌리고 재정에서도 흑자를 내게 되면 통일기금도 만들 수 있습니다.

김 : 그러려면 교육 소비형태 환경문제 등 모든 분야가 제대로 자리잡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 ‘자리잡음’이 참 중요합니다. 소비문제에도 적용됩니다. 가정주부더러 소비를 억제하라는 정부의 말에는 도덕적 근거가 없어요. 우선 정부 재정부터 절약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에게 재무구조를 개선하라는 소리도 할 수 있고, 국민에게 소비를 억제하라는 소리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으로 하여금 유형의 재산을 무형의 재산으로 여기게끔 해서 제자리를 잡게 만드는 일입니다.

김 : 땅문제도 포함한 말씀이신지요.

이 : 그렇습니다. 경제개발 결과 소득이 생겼습니다. 이 소득은 써버리든지 모으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됩니다. 소비냐 축적이냐 양자택일이지요.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소득이 생기니까 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땅은 명백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금싸라기거든요. 결국 땅이라는 유형의 재산이 아닌 무형의 재산, 즉 산업시설의 일부라든가 주식 등에 투자하면 되지요. 문제는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지요.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정치가 안정되어서 공명해야 하고, 경제는 투명해서 공평해야 합니다.

김 : 결국은 정치 얘기를 안할 수가 없게 되었군요. 문제의 핵심이 또 지도층의 도덕성 문제로 귀착됐습니다. 앞으로는 텔레비전을 통해 입후보자의 연설을 듣고 컴퓨터를 통해 투표하게 된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직접참여의 민주주의가 다시 생긴다는 주장도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과연 국민의 의식이 그런 수준에까지 도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3년 전의 자료에서는 정치인을 선택할 때 능력이나 전문성을 보고 선택한다는 사람이 40.1%인 반면, 충성이나 복종심을 보고 선택한다는 유권자가 53.9%에 이르렀습니다.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요소가 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는 말입니다. 탈바꿈해야 할 텐데요.

이 : 그 비중은 바뀌어질 것입니다. 40%와 50%의 차이인데 그 전에는 40%도 안되었어요. 텔레비전 유세가 일반화될 수도 있지만 정치에서 유권자와 입후보자가 직접 만나는 개인적 접촉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의 ‘맛’을 보고싶어하는 측면도 있거든요.

김 : 지금까지의 정치는 4 · 19적 요소와 5 · 16적 요소가 주류를 형성했다고 봅니다. 젊은층이 기성세대의 정치행태에 만족하지 못해 거부하고 항거하는 요소와, 경제의 미개발 상태에서 권위주의적으로라도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소가 병존한 것이지요.

이 : 새로 탄생한 시민층은 정치인이나 관료보다 의식면에서 훨씬 앞서갑니다. 재벌에만 의존하려 하지도 않고 도덕성 문제도 거론하거든요. 90년대 정치의 마지막 과제는 투표에 의해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느냐 없으냐 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재벌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것은 의식의 큰 변화라고 봅니다. 이제는 서서히 그런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지요. 지도층의 도덕성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김 : 정책결정자의 탈바꿈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이 :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면적으로 부상하지는 않았지만 제 눈에는 보입니다. 과거 30년 동안 지배해온, 대통령 아니면 안된다는 미신은 타파될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위상도 높아질 것입니다. 30만 시민이 뽑은 민선시장 정도가 되면 대단한 무게를 가질 수 있거든요. 그런 인물이 92년에 십여명이 생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중에서 모범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도시의 시장이나 도지사는 ‘소통령’이 되는 셈인데, 그들 사이에는 경쟁이 생깁니다. 정부관료는 서로 종목이 다르지만 민선시장은 같은 종목에서 경쟁합니다. 국민이 쳐다볼거리가 생기게 되고 대통령도 본받게 될 겁니다. 지방자치제야말로 지도층의 도덕성 확보를 부추기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김 : 권력의 수평이나 수직이동 또는 분산이 이루어지더라도 내용면에서 충족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의 이중구조가 더욱 심화되리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원을 포착하지 못하는 지하경제구조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 재벌세습 같은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지적됐어야 할 사안입니다. 주식 이동을 하더라도 알게 해달라는 것이고 세금은 내면서 옮기라는 거지요. 그렇게 하고도 남는 것은 용인할 수 있습니다. 지하경제나 이중구조가 필요할 때도 있거든요. 민속의 날과 신정이 동시에 있는 것이 대표적인 이중구조 아닙니까. 권력의 이동은 급속히 진전되고 있습니다. 지자제가 그 역작용을 잘 조정해줄 것으로 봅니다.

김 : 기업의 비대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지요?

이 : 공업화를 통해 기업이 급속히 성장한 결과 거대기업이 되었습니다. 70년대에 생성되어 80년대에 성장했고 90년대에 그 거대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지요. 거대기업은 신문의 큰제목이나 텔레비전의 황금시간과 모든 힘을 독점하던 거대정부에 대항하기 마련입니다. 최근 그런 추세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거대기업에 이어 거대도시가 생깁니다. 지성인들의 국제적 명저 또는 노벨상수상작 등 거대思考나 거대매체도 나타날 것입니다. 이른바 ‘중앙청 사람들’은 다른 거대세력이 등장하면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는데 이제는 그런 발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개념은 이제 바뀌고 있습니다. 부분이 곧 전체라는 말이지요.

김 : 최근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 발상의 전환 여하에 따라서는 우리의 인원과 자원, 능력으로 얼마든지 메울 수 있습니다. 이미 증명되고 있어요. 국방과 교육분야는 일종의 터부였습니다. 그런 터부를 없애면 되지요. 구원은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자료를 입력해놓고 젊은이들에게 그 문제를 풀어나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김 : 대학 교수들 중에 첫시간 강의를 오전 8시에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학교 규정대로 꼭 9시에 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출근 시간의 교통혼잡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요. 편한 시간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수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니까 이제는 점차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이 : 자유화의 한 단면으로 보면 되겠군요.

김 : 차등을 자유로 극복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적 차등을 정치적 자유로 극복하는 경우이겠지요.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 : 부귀나 명성을 독점하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한 분야에서만 만족해야지요. 재벌이 돌아가면서 명예박사학위 받으려 하는 것도 욕심입니다.

김 : 루카치의 말을 한마디 인용하지요.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존중하긴 하지만 부분의 합리성과 전체의 비합리성이라는 모순의 조화가 곧 자본주의의 합리성이라는 말인데,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로 바꾸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데요.

이 : 그 말을 좀 다르게 표현해볼까요.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본거지인 소련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을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나 역사의 종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집중된 정치 권력과 중앙통제적인 경제와 민중억압의 정치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인류 전체가 가진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절대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사상의 영역이든 종교의 영역이든 어떤 형태로든 또 살아납니다.

김 : 선생님께서는 연말에 한권씩 책을 내시곤 하는데 지난 연말에는 선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이 : 91년 3월에 《한나라의 앞날》이라는 책에서 통일한국의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올 봄에 또 한권을 엮을 예정입니다.

김 : 10년 후에 《시사저널》이 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다면 그때 선생님을 또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 그때는 대담제목을 ‘통일저널’이라고 붙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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