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제기구 ‘지정석’도 못챙긴다
  • 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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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국원 최소 할당량에도 미달…정부 홍보·지원 부족이 주 원인

‘자기 밥그릇도 못 챙겨 먹는 나라’. 유엔 사무국 직원 최소 할당량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한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본부 사무국 외에 유엔 산하 기구나 전문 기구, 그밖의 국제 기구에 개인 자격으로 취직해 근무하는 이른바 국제 공무원 자리는 우리에게 아직도 특수직으로 여겨진다.

 한국이 유엔에 내는 분담금은 언제 회원국 1백 84개국 중 스물한번째 수준이다. 분담률에 따라 사무국 직원 할당 인원, 이른바 쿼터가 정해진다. 한국의 유엔 사무국 직원 쿼터는 14~22명이다. 하지만 94년 11월 현재 유엔 사무국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9명뿐이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소에는 유엔 및 각종 국제 기구에서 날아온 국제 공무원 ‘공석 통지서’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빈 자리가 생겼으니 국제 기구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응시해 보라는 일종의 공람이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통보된다.

 유엔개발계획 한국사무소는 접수된 통지서를 외무부·재무부·노동부 등 해당 부처에 보내고, 통지서를 접수한 부처는 통지 내용을 일반에게 공고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외교문서 행낭으로 우송된 통지서는 날짜가 지났거나, 유효 기간이 길어야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 운좋게 날짜를 맞춰 응시하려 해도 이미 그 공석이 채워진 후이다. 결국 공석 통지서는 해당 부처 서류함에 그냥 묵혀졌다가 쓰레기로 처리되기 일쑤다.

 <시사저널>은 국제 기구에 대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인식도를 점검해 보기 위해 중앙대학과 외국어대학에서 ‘국제기구’와 ‘국제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박재영 박사와 공동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 지난 10월 초 박박사의 강좌를 듣는 학생 백명(89~93년에 입학한 학생들이며, 이 중 여학생은 19명)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 조사 결과 괄목할 만한 사실을 두 가지 알아냈다. 하나는 국제 기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예상 외로 크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학생들의 패배의식이 꽤 깊다는 사실이다.

학생들 관심높지만, “내가 될까” 지레 낙담
 우선 31%의 학생만이 한국의 유엔 가입 연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한국인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 기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84%에 달했지만, 유엔 사무국이 한국인을 뽑는 공채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학생은 20%뿐이었다.

 또 전체 학생의 82%가 국제 기구 근무를 ‘상당히 매력적’(52%)·‘매략적’(30%)으로 보고 있으며, 공채 응시자를 위한 강연회에 참설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83%나 되는 학생이 그러겠다고 답해 국제 공무원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나타냈다. 국제 기구 충원에 대한 안내 책자를 읽고 싶다는 학생만 해도 무려 88%에 달했다.

 박재영 박사는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도 국제 기구에서는 특수한 사람들만이 근무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또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꿈은 있지만 ‘내가 되겠느냐’는 생각을 먼저 한다. 어학 실력이나 경험 미숙 등 불리한 조건을 직시하는 현실적인 사고 방식은 좋지만 패배 의식이 깔려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라고 지적한다.

 유엔 사무국은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91년 이후 92년에 1회, 93년에 2회 등 모두 3회에 걸쳐 사무국에서 일할 한국인 직원을 공채했다. 이 세차례 시험을 통해 9명이 사무국 직권으로 채용되었고, 발령을 기다리는 임용 대기자는 11명이다. 다음 4회째 시험은 행정 · 통계 분야에 한정해 내년 1월에 실시될 예정인데, 이 정규직 채용 시험은 올해 8월 <서울신문>광고면을 통해 단 한차례 공고되었을 뿐이다. 주무 부서인 외무부로서는 이 한 차례 1백20만원이라는 ‘거금’의 예산을 집행했다. 국제 기구 충원 안내 책자를 원하는 학생이 88%라는 사실과 일간지를 통한 단 1회의 공고, 어쩌면 학생들이 보여준 패배의식은 개인의 능력을 떠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런 사회 구조와 풍토에서 싹트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5만2천여 유엔 패밀리의 일원으로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9명 중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공채 시험을 거쳐 채용된 순수 국내파는 2명뿐이며, 7명은 모두 해외 유학파이거나 교포들이다. 국내파 진출이 적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국제 기구나 국제 기구 직원에 대한 관심이 덜하고, 채용 공고 실력과 국제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이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가만히 앉아서 공석 통지서나 기다리고 있다가는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다. 공석 통지서가 아니라 ‘부고장’을 받는 셈이다”라고 말한다. 각 국제 기구 인사 담당 실무자와 정기적으로 꾸준히 접촉해 공석 충원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며, 제외 공관과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가동해 항상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제 기구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설치해 일본처럼 4~5명의 직원이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는 제도가 하루빨리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유엔 사무국의 경우는 정규 채용 시험을 치르지만, 대부분의 다른 기관에서는 빈 자리가 났을 때 수시로 충원하기 때문에 상시 준비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체계적 노력 절실
 현재 유엔아동구호기금(UNICEF)등 10개 유엔 산하 기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수는 모두 19명(파견 공무원 10명)이며, 국제노동기구(ILO)등 13개 유엔 전문 기구에서는 30명(파견 공원 25명)이 일하고 있다.

 국제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필수 조건은 전문 지식과 외국어 구사능력이다. 영어의 경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어야 제대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 · 필리핀 · 파키스탄 등 영어권 개발도상국 출신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국제 기구 근무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공통으로 충고한다.△국제 기구에서 한국식은 통하지 않는다 △공무원 출신이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차피 귀국한다는 생각 때문에 경쟁에 뛰어들지 않아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국제 기구는 꼭 박사만이 아니라 실무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환영한다 △정식 직원이 못 되더라도 경험이 중요하다 등이다.

 유엔을 비롯한 경제 기구는 아예 일정비율의 여성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국제 기구는 여성판’이라는 말이 나오리 만큼 여성의 국제 기구 진출이 활발한 것이다.

 우리에게 국제 공무원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로 비친다. 개인은 고사하고 정부 자체가 국제 기구에 대해 무지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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