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후보는 지명이 마땅”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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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德龍 민자당 의원

총선 전 대통령후보 결정을 요구하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노태우 대통령간의 담판이 예고되는 가운데 민자당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김대표는 한판 승부를 준비하며 입을 열지 않는다. 대신 ‘김영삼 대표의 분신’으로 통하는 김덕룡 의원을 《시사저널》 인터뷰석으로 끌어내 김대표의 의중을 타진해본다. 김의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총선 전에 후보가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민 민주정부의 수립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에는 당을 깰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했다.

김영삼 대표는 총선 전 후보 결정을 낙관하고 있습니까?
낙관이나 비관의 측면이 아니라 민자당이 마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명제지요. 총선 전 후보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장수없는 병졸들만의 싸움, 이슈없는 이전투구로서 결국 돈싸움밖에 더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여당이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보를 정해놓지 않고 선거에 임한다면 국민의 빈축을 안 사겠습니까. 또 야당에서는 분명히 내각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공격해올 것입니다.

노대통령은 최근 <연합통신>과의 회견에서 총선 전 후보 결정에 반대한 것으로 보도됐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기를 1년3개월 남긴 시점에서 그 말을 하는 것은 아직 빠르다는 이야기였지 총선 전 후보 결정이 안된다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한 말을 국민은 기억할 것입니다. 임기 1년 전 쯤에 후보가 결정되리라는 것 말입니다.

후보 결정 방법은 무엇입니까?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명료하고 떳떳한 방법, 즉 전당대회에서의 지명이어야 합니다. 편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김대표가 자유경선을 수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잖습니까?
민주계 내부에서 결정된 바 없습니다. 경선이 차차선의 방법으로써 검토될 수는 있겠지요.

경선보다 지명이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경선은 기득권을 영구히 향유하겠다는 수구 세력의 입장으로서 反김영삼 분위기에 편승하겠다는 정치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선이 나쁠 것은 없지요. 그러나 그들의 자유경선 주장은 이미 자기들 나름대로 결론을 다 내놓은, 즉 힘의 우위로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자유경선인 것입니다. 계파적 갈등을 이용해 힘으로 몰아붙이려는 경선에는 응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대통령후보라면 먼저 국민의 지지와 신임을 받아야 하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여야지요. 국민의 지지나 의사와 동떨어진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는 자유경선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민주적 결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억지 주장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경선이 가장 민주적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지요. 경선할 수 있는 여건이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민자당 대의원의 65% 정도가 민정계입니다. 총재가 김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하라고 하고 있는 데도 기득권 수구세력은 총재의 뜻을 거슬러 계파적 활동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민정계 의원들이 국민의 의사나 양심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면 마치 기회주의자나 배신자로 몰아붙이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구당 위원장 자신들은 지명받았으면서 자기 윗사람은 경선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계파적 이익으로 똘똘 뭉쳐 경선하자는 것이 어떻게 민주적일 수 있습니까.

불가피하게 자유경선을 해야 한다면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지구당 개편대회라든가 대의원 선출부터가 민주적인 절차를 밟았어야 하고 또 계파간의 지분율에 의해 모든 당직자가 결정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지금 3당이 통합된 이 마당에는 통합정신에 따라야 합니다. 국가적 전환기에 나라의 장래와 정권 재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대의원을 다시 배분한다든지 하는 구구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제 어떻게 후보문제를 제기할 것입니까?
공개적 토론 방식보다는 우선 3당통합의 대의를 이룬 지도자들간에 국가가 처한 상황과 당이 가야 할 방향 등을 감안하여 충분히 협의해서 합의할 것으로 봅니다.

김윤환 총장의 4자협의 후보결정론과 일맥상통한 주장 같습니다만.
글쎄요, 김총장의 4자협의론은 총선 후 후보를 결정하자는 일부의 주장보다는 진일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총장이 당의 여러 가지 사정이라든가 현실을 감안, 나름대로 고심 끝에 고육지책으로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은 좀 더 명료해야 합니다. 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하는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면 정정당당한 절차와 형식을 밟아야 하는 것이죠.

총선 전 후보 결정 외에 다른 해결방법이 없을까요?
길을 두고서 왜 산으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한반도 전체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또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해 예측 가능한 정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후보의 조기 결정이 선거에 불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선거에 불리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후유증으로 인한 계파간 갈등의 노정이 선거에 불리하리라는 것이 그 주장의 논거인 줄 압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에서 주장하는 중부권역할론은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총선을 치르겠다는 부도덕한 발상입니다. 중부권의 어디에서도 모모 인사가 민자당의 후보가 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거니와, 그 사람이 후보가 되지 않았다고 실망하여 민자당 지지를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단언하거니와 후보의 조기 결정은 총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합니다.

후보의 조기 결정이 권력누수를 가져온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후보가시화가 권력누수를 방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노대통령의 다음을 이어갈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라고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정권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국민 앞에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권력누수는 불확실성 속에서 생깁니다. 노대통령의 영향력 하에 차기 후보가 결정되고 현임대통령의 정책이 후임자에 의해 일관성있게 집행될 것이라는 국민적 확신이 있어야 공무원을 비롯한 각계가 불확실성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될 경우 타계파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지명 전이라면 몰라도 지명한 다음이라면 여권의 생리상 쉽게 순응해오리라는 것이 저의 정치적 경험에서 비롯한 판단이요, 확신입니다.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결정되면 민주계의 공천지분을 양보할 수 있을까요?
14대 국회는 통일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국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분문제는 상식선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계파별 이해를 떠나 대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런 문제는 총재와 당 대표가 최종적으로 협의하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분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총선에서의 승리와 정치발전의 관점에서 시대적 흐름에 맞는 인물을 선정해야겠지요.

김의원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상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정치는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네루의 말을 좋아합니다. 정치지도자는 국민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낙천적이어야 하고, 강력하되 깨끗한 정치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김대표의 자질에 회의를 표시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약간 격양된 어조로) 어떤 사람이 감히 자질론 운운하는지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 싶습니다. 과연 얼마만한 능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무엇을 한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지도자는 대국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행정관료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질구레한 문제까지 지시하고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관리자여야 합니다.

왜 김대표가 꼭 후보가 돼야 합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군사정치 문화에서 문민정치 문화로의 이행 과정에 있습니다. 김대표는 오랜 야당 생활을 거쳐 지금 국정관리 능력을 배양하고 있습니다. 그가 후보가 돼 집권하는 것이 평화적으로 문민 민주정부를 이 땅에 세우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6 · 29 선언의 완결이요, 실질적인 군정종식인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에서 후보가 나와 집권한다면 그것은 단지 기득권 세력의 승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6 · 29 선언은 한 때의 기만책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총선 전 후보 결정이 안되면 분당하나요?
글쎄요. 분당하느냐 안하느냐는 너무 성급한 이야기입니다. 분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3당통합은 안정 속에서 6 · 29 정신을 완결시키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와 남북관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는 것이었지요. 6 · 29 정신의 귀결은 바로 문민 민주정부의 수립입니다. 그러나 문민 민주정부의 수립이 좌절될 것이 확실하다면 논리적으로 분당 사태를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민주계)는 그 길을 막자는 것이고 민자당과 나라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민주계쪽에서 나온 이야기와는 수위가 다른데요.
그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잖아요. 만약 제 아내가 암수술하러 수술실에 들어 갔다고 할 때 누가 제게 아내가 수술하다 죽을 경우 재혼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야당의 대통령후보를 김대중 대표로 가상한다면 그가 가장 싸우기 힘든 여권의 상대는 누구일까요?
누가 뭐래도 김영삼 대표입니다. 여권의 누가 나와도 김대중 민주당 대표한테 이긴다는 견해는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지요. 우선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이뤄보겠다는 무책임한 생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김영삼 대표가 아니라면 야당측은 대통령선거를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몰아갈 것이고, 국민은 자칫 민자당에 실망하여 그 구도에 휩싸여 들어갈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김대표 배제 시나리오가 진행중이라는 소문도 들립니다만.
민주 문민정부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일부 기득권자들이 그런 음모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고 당이나 국민으로 부터 공감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결단코 실패할 것입니다.

김의원이 김대표로부터 신임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외람된 이야기지만 우리는 어려울 때 함께 있었습니다. 가시밭 길도 걸었고 실의의 나날도 함께 견디었습니다. 숱한 사람이 김대표가 좋은 시절에는 찾아 왔다가 김대표의 처지가 어려워지면 훌훌 떠났지요. 그러나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러질 못했지요. 그렇게 어려움을 함께하는 동안 저는 김대표의 의중을 눈빛으로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고, 김대표는 그런 저를 신임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3대 국회에 처음 등원하였는데 마무리 소감은 어떻습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국정이란 복잡하고 총체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따라서 국회의원으로서의 발언은 항상 신중하고 책임을 져야함을 절감했습니다. 13대 국회는 그 성격상 모든 정치력을 극대화해서 정치 민주화와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 개혁정치를 펼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소야대 시절에는 원칙없는 정쟁으로, 또 3당통합 이후에는 통합을 단순한 숫적 우위로만 파악하려는 여권의 타성 때문에 그 모두가 지지부진 했음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아주 작고 단편적이라 할 지라도 분배정의 실현을 촉구한 것이 정책에 반영되었을 때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예컨대 재벌의 잘못된 행태, 즉 부동산의 과다 보유 · 사치성 소비재의 무분별한 수입 · 골프장 등 향락사업 진출을 막으려는 노력 등이 5 · 8조치 등의 결실로 나타났다든지, 변칙적인 부의 세습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상속세법이 개정되고 문화재단 출연시에 주어온 면세혜택의 축소가 이루어졌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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