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최틀러’
  • 안병찬(편집인 . 주필) ()
  • 승인 199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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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장은 서울이 세계인의 서울이 되야 한다는 데 눈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선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최병렬씨를 서울특별시장에 임명한 것을 보고 대뜸 두어 가지 의문이 나왔었다.

 언론계 출신인 그를 기용한 것이 언론계의 입막음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쩍음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역시 지연을 찾아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경상남도 사람을 발탁했구나 하는 의구심이다.

 앞의 가정은 그럴듯하게 들릴 수 밖에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수시로 증폭되곤 하는 여론의 향방을 누구보다 의식하는 대통령이다. 임기의 절반 길 가까이 뛰어온 김대통령은 최근 누적된 공무원비리와 대형 사건 .  사고 등로 피곤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집권 중반에 이르러 통치 능력의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을 듣게 된 판국이다. 비록 김대통령이 새벽 조깅을 꾸준히 한다고 해도 전체 국정과 정국을 경영하는 일에는 숨이 차다는 말이다.
 
‘부산고’ 출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 보면, 최시장 발탁이 다른 동기에 따른 일임을 알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최시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한 말에 해답이 들어 있다. 김대통령은 자기가 야당 원내총무를 지내던 3공 시절, 3선 개헌안이 강제로 통과됐을 때 정치부 기자이던 최시장이 대성통곡하던 모습을 술회했다. 80년대 중반, 민정당 전국구로 정계에 나선 최병렬 의원은 87년 대선에서 김영삼 야당 후보의 진전을 가로막는 여당 대선팀 핵심으로 뛰었다. 그렇게 단절된 두 사람 사이는 3당 합당으로 고리가 이어지고, 92년 대선 때는 최병렬 의원이 김영삼 후보 선거기획위원장이 되어 그의 당선을 위해 뛰게 되었으니 인사의 유전이다.

최병렬 의원은 젊은 기자 때 40대 기수론을 치켜든 김영삼 의원마음에 심어놓은 깊은 인상 하나로 연줄을 얻게 되었고, 행정 능력까지 인정된 터에, 이번에 ‘인사는 만사’라는 김대통령 뜻에 따라 서울특별시장 감투를 받은 것이다.

 최시장이 왜 하필 부산고등학교 출신이냐 하는 두번째 의구심도 한번 짚어봄 직한 대목이다.

 신문들은 최시장이 임명되자 일제히 이력을 소개했지만 어느 신문이나 고등학교 이력은 빠져 있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들어갔다가 <조선일보>로 옮겨 정치 .  사회 부장과 편집국장이라는 노른자위 요직을 거쳤다. 정계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는 승승장구하여 6공 때 대통령 정무수석과 문공부 .  공보처 .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이렇게 신문들이 최시장을 소개하면서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항목을 빠뜨린 것은 청와대 보도자료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정부 개각이나 요직 개편 때 신임자의 고등학교 학력 소개는 생략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관례가 그래온 모양이다. 최시장이 부산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겠다고 고의적으로 의도한 흔적은 아무데도 없다. 문제는 관례대로 한 일이 상식적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지 못하게 ‘경남 우대, 부산 돌출’이라는 판에 박은 듯 바라보게 된 세상에 있다.

 지연과 학연과 인맥의 병폐를 지나치게 겪어온 우리들은, 정치 권력은 반드시 제 인맥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단순화한 집단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신껏 일하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결국, 말머리에 지적한 두 가지 의구심은 사람들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상투적 판단의 틀에 연유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사로써 만사형통하자면 이런 집단적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민주적 가치를 놓이지 않고는 안된다는 고언은 고소대처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병렬 시장은 8개월 시한부의 위기를 관리하는 시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정치 이력과는 별개로 그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리저리 둘러대는 데만 능하고 매끈한 일처리에만 골몰하는 나쁜 관료주의 관행에 비하면 속을 털어놓는 표리일치의 그 행동력은 차라리 후련한 데가 있다. 언행이 대체로 합치하고 소신껏 일하는 공직자의 ‘일관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이다.

 나는 남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최병렬 기자가 그늘 많은 3공 치하의 언론계 생활을 벗어나 이화여대에 나가 강의나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연파(軟派)같은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최의원이 행정 각료가 되어 드러낸 보인 것은 ‘최틀러’라는 별명을 얻은, 일관성을 발휘하는 강성 추진력이다. 그렇지만 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의 다양성이다.

 최시장은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책무를 지고 있다. 최시장은 물론 서울의 각종 기간시설을 수시로 점검하고 보수하는 행정 체계를 바로잡는 일이 급하다. 그렇지만 공공시설 유지와 보수만이 능사가 아니다. 서울이 서울에 사는 사람만의 도시가 아니고 세계인의 서울이 되어야 한다는 더 근원적인 데 눈이 가지 않으면 최시장의 직무는 수선공의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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