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해방구’ 압구정
  • 글 이문재. 오민수 / 사진 김봉규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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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방식’ 추구하는 신세대 ‘압구정파’…“돈 걱정은 안한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에 몰리는 70년 전후에 태어난 신세대, 이른바 ‘압구정파’는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기왕의 청년문화와 다르고 또한 동시대의 다른 청년(지역 혹은 계급)문화와도 구별되는 매우 새로운 보습을 띠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 신세대를 관찰하고 그 배경을 탐색하면서도 기성세대의 윤리관이나, 80년대식 사회과학의 시각으로부터 가능한 한 거리를 두려 한다. 이같은 경직된 렌즈를 들이대면 압구정동은 증발하거나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며 그같은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질타와 부정”만 나올 뿐 대안의 모색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서구학자의 표현을 차용한다면, ‘압구정동’은 존재하지 않고 압구정동을 보는 시각만 존재한다. 아니, 압구정동은 존재하지만 ‘압구정동’을 보는 시각이 부재할 수도 있다. 이 기사는 일찍이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그러나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후기산업사회의 새로운 징후들에 대한 ‘열린 논의’의 한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지난해 7월 하순과 12월 중순 두차례에 걸친 취재를 정리한 것이다.


 대입 학력고사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카페골목에서 만난 한 젊은이는 차양이 긴 까만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에는 세프티 존(SAFETY ZONE) 이란 영문글씨가 박혀 있었다. ‘안전지대’라는 뜻의 이 영어는 그러나 압구정동에선 ‘해방구’로 읽힌다. 그 청년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친구들과 만끽하기 위해 “집(청담동)에서 가까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압구정동은 70년대생 신세대의 해방구이면서 동시에 그 해방구의 쇼윈도이다. 그 쇼윈도는 투명해서 그 안에 있는 ‘현란한 젊음’들이 잘 들여다 보인다. 안에서도 밖이 잘 내다 보인다. 그러나 압구정동의 안과 밖은 서로 쉽게 소통하지는 않는다. 압구정동을 ‘눈으로’ 즐긴다면야 그만이겠지만 그 세계 속으로 편입되기란, 이른바 ‘압구정파’가 되기란 간단치가 않다. 종로나 대학로 혹은 신촌이나 이태원에 들어가던 방식으로는 압구정동에 입장할 수 없다.
 
압구정동은 ‘압구정동식’을 요구한다
 시집《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시인 유하씨(24~25쪽 인터뷰 참조)의 관찰에 따르면, 압구정동은 특유의 통과제의를 요구한다. ‘국화빵만드는 기계’에 들어갔다 와야 하는 것이다. 우선 겉모습부터 압구정동식 토틀 패션으로 개조해야 한다. 이 해방구는 입구에서 첨단 유행과 나만의 개성, 그리고 세련미 등의 필요조건을 요구한다.

 남자라면 뒷머리를 바짝 치켜올리고 긴 앞머리는 무스로 가꾸어야 한다. 모자를 써도 좋다. 아무리 자랑할 만한 정장이 있더라도 압구정동에 가려면 접어두어야 한다. 정장과 같은 격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요즘 압구정동을 휩쓰는 무스탕 한벌이면 무난하다. 헐렁한 코트도 괜찮다. 여자라면, 무엇보다 먼저 미니스커트를 자신있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옷들은 검은색이어야 한다. 올 겨울 압구정동의 유행색이 검정이기 때문이다. 얼굴 화장은 강렬해야 하고 헤어스타일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게 ‘국화빵기계’를 통과한다고 해서 이 젊음의 해방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압구정동은 젊음과 그 외모만으로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경제적 여유라는 충분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 70~80년대의 경제성장 제일정책의 순풍을 탄, 이른바 8학군 졸업장을 소유한 신중산층의 2세거나, 강북에서 건너온 넉넉한 집안의 자제가 아니라면 노력이 필요하다. 압구정파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소비패턴과 사고방식 그리고 ‘놀이문화’를 거부감없이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강북에 살면서 압구정파와 한때 어울렸던 김모군(연세대 3년·25)은 “압구정파는 대학 사회에서도 금방 눈에 띌 정도로 겉모양부터 다르다. 그들은 그들만의 결속력이 있는데, 밖에서 보기에 그 결속력은 종종 배타성으로 비친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이라 불리는 구역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남구 신사동이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에 이르는 1㎞ 남짓한 압구정로의 남쪽(북쪽은 아파트단지이다)에 자리잡은 상가는 구압구정과 신압구정으로 나뉜다. 현대백화점 건너편 일대가 구압구정이고, 갤러리아백화점 건너 맥도날드햄버거를 중심으로 부채처럼 펼쳐진 구역이 흔히 압구정동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구압구정쪽은 기성세대를 위한 패션가와 화랑, 도자기점(패·화·도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들이 들어서있는데 비해, 신압구정은 로데오 거리와 보세골목 미용실 모델양성소 카페 패스트푸드점 비디오케 로바다야키(철판구이) 등이 ‘해방구 진지’를 이룬다.

압구정동 만든 자본주의의 ‘꽃’
 압구정동을 오늘의 압구정동으로 만든 요인은 먼저 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최고의 부촌으로 꼽힌 현대아파트이지마, 80년대 중반부터 명동에서 이주한 패션가와 “분위기 좋은” 카페가 손꼽힌다. 한국 첨단 패션의 메카로 떠오른, 이른바 로데오거리는 갤러리아백화점 동관 앞 사거리에서 강남구청으로 내려가는 대로변 양켠에 쇼윈도를 내놓은 약 4백m에 이르는 패션가를 일컫는데, 미국 베벌리 힐스의 세계적 패션거리인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본땄다고 한다. 그만큼 이국적이다. 이 로데오거리는 패션디자이너 하용수씨가 86년 첫발을 디디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패션가는 미용실과 카페 등 상류사회의 소비공간을 “데리고 다닌다.” 압구정동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분의기 좋은 카페들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 ‘압구정동’은 아니었다. 패션가가 들어서면서 오늘의 압구정동의 틀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델라인과 같은 모델 양성소가 동참했고 40여곳이 넘는 미용실들이 간판을 달았다. 모델과 관련있는 광고제작사·쇼 이벤트회사·모델 에이전시·사진스튜디오 등이 강을 건너 압구정동으로 모여들었다. 패션에 민감한 연예인들이 압구정동을 자주 찾는 것은 당연했다. 어떤 설계도에 따른 것은 아니겠지만 패션가와 연예인·모델들, 즉 자본주의의 ‘꽃’들이 압구정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8학군 출신인 재수생 강모군(19)은 친구들이 이곳에서 자주 모인다면서 그 이유를 “물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의 ‘물’이란 “잘 생긴 여자들”을 뜻한다. 물론 그 대부분은 이곳에 드나드는 연예인과 모델들이지만 압구정파 가운데에도 “잘 생긴 여자들”은 많다. 남자들 또한 잘 생겼다. 이때의 잘 생김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헤어스타일 화장 옷차림 등 강렬한 자기표현과 개방적인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성향은 이 일대에 17게에 달하는 성형외과를 불러들였다.

 압구정파는 패션의 가장 예민한 촉수이지만 전문가들의 눈에 거슬릴 때도 많다. 패션디자이너 하용수씨는 “보는 사람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입는 사람도 불편한 것”이라면서 “자기화가 덜 된 모방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패션코디네이텨 강효임씨는 압구정동의 구조가 패션의 흐름을 빠르게 수용하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압구정파는 “소비 자체를 멋으로 알고 있으며, 패션감각이 지나치게 탈한국적”이라고 말했다.

 “연예인이나 모델은 매우 중요한 손님이다. 그들의 발길이 끊기면 카페를 찾는 손님이 바뀌거나 줄어든다.” 압구정동의 대표적 카페 가운데 하나인 ‘옵스’ 지배인 김영배씨의 말이다. 그러나 연예인·모델과 같은 스타에 대한 압구정파의 외면적 반응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차갑다. “너(스타)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것이다. 그만큼 압구정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부르주아 2세들의 ‘불간섭주의’
 “물이 좋은” 압구정동 카페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동시에 상대방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노출과 훔쳐보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이곳의 카페나 음식점, 커피전문점들이 하나같이 밝은 실내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적인 감각의 단순한 인테리어, 밝은 조명, 널찍한 공간 배치는 ‘안락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을 감추지 않는다.

 이곳의 카페나 음식점은 개인을 거부하는 듯하다. 카페나 커피전문점, 특히 지난해부터 성업중인 로바다야키집이나 비디오케 등 어딜 가나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리를 지어 다닌다.

 압구정동에 몰리는 젊은이들은 재수생파 대학생파 패션파 쇼핑파 등으로 대별되는데 각 그룹은 다시 수많은 소모임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문화 충격이 있었다.” 대학생 압구정파인 김모군(24)은 “부유층 자녀들의 생활태도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압구정파의 소비행태나 여가생활은, 강남에서 성장하지 않은 같은 세대의 청년층에게도 충격을 준다.

 10대 초반에 “10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햄버거를 사러가는” 강남의 신세대의 소비패턴을 거부감없이 수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압구정파의 대부분은 자기 차를 가지고 있으며, 홋 한벌 마련하는 데 50만원이 드는 것은 보통이다. 4명이 로바다야키집에서 술을 곁들여 저녁 한번 먹으며 10만원은 있어야 한다. 비디오케나 나이트클럽으로 2차를 간다면 기십만원은 쉽게 넘어간다. 압구정파는 “주머니 걱정은 안하는” 풍요의 세대이지만, 모두가 과소비의 선두주자는 아니다. 카페에서 자기 것은 자기가 계산하는 더치페이가 일상화되어 있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쓴다”는 나름대로의 춴칙을 가진 부류도 많다.

 압구정파인 고려대 2학년 여대생 한모양(20)은 “부의 편재가 심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빈곤감이란 상대적인 것이라고 본다. 나는 나의 수준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빈부격차와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그의 ‘수준’은 머리도 식히고 견문도 넓힐 겸 유럽일주 여행을 다녀오는 수준이며, 졸업하면 대만에 유학가서(중문학 전공이다)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수준이다.

 압구정파들은 대부분 이미 중고등학교 때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방학이 끝나고 친구들이 모이면 해외여행 이야기가 주된 화제이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한 반에 몇 명은 유학을 떠난다”고 8학군 출신의 한 재수생은 말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기간에는 유학생들이 압구정파의 또 한 주류를 이룬다. 이들과 합께 미국 등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그냥 노는” 부류들도 그룹을 이룬다. 또 모국에 연수를 온 이민 2세들에게도 압구정동은 신촌 대학가와 동숭동 대학로와 더불어 ‘순례지’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압구정파의 패션감각과 의식구조는 이같은 해외여행 혹은 유학체험과, 직수입되는 일본의 위성방송, 패션 잡지들을 통해 키워지고 전파되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5년만에 귀국한 김모군(미구 뉴욕주립대 컴퓨터사이언스과 3년)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압구정동이 뉴욕보다 더 화려한 것 같다”며 압구정동에 대해 비판적인 지적을 한다. “미국에서도 압구정동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그는 “카페는 미국 대학가에서도 느낄 수 없는 고급이고, 너무 상류사회 애들만 몰려다니는 것 같아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압구정동에 13년째 산다는 한 전문데 남학생(19)의 말은 압구정동파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고1때 술 담배를 배웠다”는 그는 정치 같은 데는 아예 관심이 없다. 친구들과 만나면 스포츠와 취미생활이 주요 관심사라는 그는 “주위엔 학생운동하는 친구나 형이 하나도 없다. 우리 정도 살면 학생운동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라고 말했다.

성에 대한 인식 “매우 개방적”
 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앞서가는’ 개인주의는 이성과 性에 대한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들에게 학력이나 신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하룻밤 즐기는 게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전문데 정산학과에 다니는 한 여대생은 “프리 섹스도 한다. 그게 뭐 어떠냐. 여기 애들은 다 그렇다. 결혼할 생각은 없고 즐기면서 한평생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재수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다”는 하모군(20)은 군복무를 마치고 유학을 계획중이다. 역시 압구정파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같이 잔다. 여러 애들과 자봤다. 특별히 한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냥 즐기는 차원이다. 책임지라는 여자도 없을뿐더러 책임의식을 갖고 이런(압구정동) 식의 생활을 하는 남자들도 거의 없다.”

 태극기가 게양돼 있는 맥도날드햄버거와 실내조명이 밝은 카페 그리고 자가용 스쿠프로 상징되는 압구정동의 하루는 짧다. 오후 4시가 돼야 압구정파들은 압구정동으로 몰려들고 다른 유흥가와는 달이 밤 10시면 썰렁해진다. “비교적 엄격한 가정교육은 받은 중산층이기 때문”에 일찍 귀가하는 경우도 많지만, 자가용을 몰고 호텔 나이트클럽이나 교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시인 유하씨의 詩句를 빌리면, 압구정파들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지만, 그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압구정동으로 몰린다. 그들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내야 하는 우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상류사회의 신세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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