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망명객’에 문호폐쇄 바람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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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초순 난데없이 외국 이민을 배척하는 정치 포스터가 파리의 주요거리에 나붙었다. 하늘색 바탕에 하얀 글씨가 적힌 포스터의 구호는 “프랑스가 싫거든 나가라”는 것이었다. 유력 일간지 〈르 몽드〉는 남의 상업광고 위에 염치없이 나붙은 이 ‘사나운’ 구호의 주인공이 자유주도운동(MIL)이라는 극우 단체라고 보도했다. 또 1986년 총선 직전에 생겼으나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단체 간부들의 면면을 소개하면서 이들이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유력한 극우단체인 국민전선(NF)의 동조자임을 비쳤다.

 프랑스는 원래 배타적인 나라가 아니다. 정치 망명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명예로운 전통을 오래 지켜온 나라이다. 소련혁명후인 1920년 경에는 백계 러시아인들을 받아 들였고, 그후 동유럽의 유대인들, 중남미 우일 독재정권의 희생자들, 월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의 망명객들도 받았다. 망명자 총수는 20만명이 넘으며, 베트남의 ‘보트 피플’ 5천명에게도 피난처를 제공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편이어서 외국인을 경쟁 상대로 의식하는 경향은 있지만 함부로 외국인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다. 따라서 외국 이민의 경우에도 프랑수 말 등 프랑스 문화에 융화해주기만 하면 깊이 정을 나누지는 않더라도 잘 받아들인다.

“마그레브 이민들이 범죄증가의 요인이다”
 르펜이 이민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주로 배척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의 북아프리카 3국 이민들이다. 르펜의 주장은 마그레브 이민들이 이슬람교 포교를 꾀하고 있으며, 자녀가 많다보니 산아 장려책으로 나가는 사회복지기금을 너무 많이 타쓰고 있으며, 범죄가 느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때문에 백인 실업자가 늘고 있다(92년 3월말 예상 실업자수 2백97만명)는 선동도 잊지 않는다.

 사실 외국 이민의 90% 이상이 백인들이 싫어하는 궂은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므로 실업자 운운 하는 것은 공연한 말이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이민은 1990년 현재 4백 10만명으로 1982년에 비해 약 10만명밖에 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출신국 별로는 포르투갈 알제리가 각각 80여만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이탈리아 모로코 스레인이 각각 40만명을 약간 넘으며 그다음 튀니지가 19만명 순으로 되어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인 르펜의 주장에 대해 1990년 봄만 해도 프랑스의 기성 정당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의연한 태도로 임했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남부 ‘카르팡트라’에서 유대인 묘지가 훼손되자 이것이 극우파 청년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파리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다. 이 집회에는 미테랑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당 간부들뿐 아니라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당수(전 대통령)가 참여했다.

 그러나 1991년에는 우파 정객들의 태도가 일변했다. 시라크는 어느 정치 집회에서 연설하면서 마그레브 이민과 같은 동네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이 소음과 냄새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 얼마 후에 지스카르 데스탱도 이민들이 몰려드는 상황을 ‘침략’에 비유하면서 이민제도를 바꾸어 시민권 부여대상자를 부모가 프랑스 사람인 경우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프랑스는 현재 속지주의를 채택해 프랑스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미테랑은 최근 이러한 우파 동향에 대한 논평에서 사회당 정부는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주의와 싸울 결의”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후 에디트 크레송 총리는 이민문제에 대해 정부가 강경책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불법 체류자를 강제 출국시키는 데 전세기를 동원할 용의가 있노라고 발표했다. 정기 항공편은 불편하므로 전에도 쓰던 방법이지만 너무나 비인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포기했던 전세기 사용을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요즘 프랑스 정부는 불법 입국을 방지하기 위한 국경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데 최근 경찰 발표에 의하면 파리의 한 숙박시설 근처에서 조사한 1천21명의 외국인 근로자 중 3백61명이 불법이민이었다고 한다.

 대개 소규모 운영을 하고 있는 파리의 한국식당들도 불법이민 조사 대상에 들었으며 지난 1년 동안에 네 군데 식당에서 약 10명의 종업원이 적발되어 송환 조치를 당했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우파뿐 아니라 좌파도 ‘르펜균’에 감염되어 대중의 불안심리에 영합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소리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무엇이 이민문제를 이토록 긴박한 현안으로 만들었는가. 첫째 르펜 세력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15%를 상회하고 있어 무시못할 세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론 조사에서 ‘92년의 중요한 과제’를 물었을 때 5년전에는 25%만이 이민을 문제삼았는데 요즘은 40%로 늘어났다. “이민이 너무 많다”는 의견도 58%에서 68%로 늘었다. 둘째 공식 집계에 나타난 외국 이민 말고도 불법이민이 많다는 추측이 강하게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피가로〉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동안에 정부는 불법 이민이 20만명쯤 들어왔다고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유럽 소련으로부터 이민압력 강해질 듯
 셋째 최근 이민 중에는 유럽 사람보다 마그레브 사람이 비교적 많아졌기 때문이다. 작년에 들어온 10만명 중(60%는 가족결합 이민)에서 마그레브 민족이 34%였으며, 유럽 사람은 24%, 동유럽과 소련은 5%였다. 넷째 앞으로 동유럽과 옛 소련에서 이민 압력이 더울 강해지리라는 전망동 영향을 주고 있다.

 다섯째 1993년 초부터 유럽공동체(EC)단일시장이 생겨 역내 주민은 어는 나라건 자유로이 다니며 취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지역에 따라 취업 경쟁이 심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EC 전체의 울타리를 강화해야 되겠다는 등 이민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 문제는 프랑스뿐 아니라 EC 여러나라들이 함께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지난 10월 초 독일 통일 1주년 행사가 있던 날에 극우 ‘네오나치’ 분자들의 폭행 사건이 20건이나 일어났다. 그중 가장 심한 것은 조선소가 있는 ‘뤼겐’이라는 섬에서 일어났다. 루마니아 근로자들이 많이 묵고 있던 숙박시설에 청년들 30여명이 몰려와 방화함으로써 건물은 전소하고 2명이 부상했다.

 EC 여러 국가가 어떻게 이민 정책을 조정하는가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지난 12월에 합의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라 EC 12개국은 1993년부터 EC 역내에 들어오는데 비자가 필요한 사람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부터 만장일치제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1996년부터는 EC 각국의 망명 희망자 처리 정책의 조정 작업에 들어갈 것이며, 정치 망명이 아닌 경제적 망명에 대해서는 문호가 좁혀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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