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인어의 홀로서기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2.01.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어공주

 
제작 : 월트 디즈니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예전의 인어공주는 배꼽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 사의 최신판 인어공주는 배꼽을 드러내고 있다. 세월 탓인지 몰라도 크게 흉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섹시하게 느껴진다. 〈인어공주〉는 만화영화지만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아〉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다.

 깊은 바다 밑 세계가 조심스럽게 열리면, 물속나라의 황홀한 경치와 함께 인어공주 에이리얼과 지상의 왕자 에릭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다를 다스리는 왕(인어공주의 아버지)은 물 위를 절대로 가서는 안되는 적대국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인어공주는 물 위 세상을 ‘갈수 없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난파선에 실린 인간들의 세간을 보고 인어공주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다. 더욱이 그녀는 열여섯 살 사춘기. 보석 같은 다리를 갖기 바랐고, 눈부신 햇빛을 마시며 마음껏 뛰놀고 싶었다.

 아버지를 피해 몰래몰래 물위를 훔쳐보는 인어공주는 그리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몸을 떤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마녀에게 예쁜 목소리를 주고 그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는다. 물 위로 올라간 에이리얼. 왕자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마녀의 음모에 희생되려는 찰나 물고기와 새 들의 도움으로 왕자와 결혼한다.

 사춘기 인어의 홀로서기, 성장기의 반항과 애정이 싹트는 순간을 보노라면 이 만화영화는 바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인간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인어공주〉는 꿈과 희생, 사랑과 미움, 계략과 음모, 용기와 승리를 가르쳐 준다.

 이 모든 것을 의인화의 천재인 디즈니 멤버들은 완벽하게 표현했다. 아름다운 빛과 색채, 유머러스한 물고기들, 뛰어난 음악과 노래, 여기에 춤이 합세한 이 필름은 분명히 걸작 만화 뮤지컬이라 할 만하다.

 도입부에서 상어에게 쫓기는 인어공주의 장면은〈조스〉의 서스펜스에 켤코 뒤지지 않는다. 그 환상적인 스피드와 독특한 아이디어에 나는 처음부터 박수칠 준비를 한다. 다른 만화영화들과는 달리〈인어공주〉는, 우리들의 주인공이 동작을 멈춘 상태에서도 머릿결이 물결따라 흔들린다. 이 자연스러움은 순간적으로 정지되는 만화와는 달리 매우 영화적인 기분을 갖게 한다.

 만화영화의 성패는 특히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형상화하는 표현기술에 달렸다. 〈인어공주〉는 뛰어난 상상력이 무엇이며 훌륭한 표현이 어떤 것인지 유감없이 보여준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어쩔 수 없이 미국영화답지만 어설픈 절망의 몸짓으로 끝나는 영화보다 훨씨 낫다.

 〈인어공주〉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덤으로 전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는 ‘현대의 이솝’이다.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 재미의 종합 비타민 같은 영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