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레슨=음대 합격' 구조깨자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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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교수 '수험생 지도'여전… 개인 교습 공식화. 자격증 제도 필요



첼로를 전공하는 金斗珉군(15. 예원학교3년)이 한국예술 종합학교 음악원(음악원)의 예술 영재로 선발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음악원에는 항의성 전화가 빗발쳤다. 대개 '누구 죽일 일 있느냐'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라는 내용이었다. 개인 레슨을 '본업 삼아' 살아가는 교수들로부터 온 반응이었다. "불법. 고액 개인 레슨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느끼게 할 씁쓸한 경험이었다."음악원의 한 교수사 탄식조로 털어놓은 말이다.

 그런 면에서 김군은 여러 모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특히 그러하다. 무엇보다도 음대 입시를 위해 치러야 하는 비밀 개인 레슨의 족쇄에서 풀여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91년 서울대 음대 입시에서 터져나온 실기고사 부정 사건 이후 교수의 개인 레슨은 범죄 행위와 동일시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서울대 음대 일부 교수들의 개인 레슨 파문은 그러한 인식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서울대는 10월31일, 95학년도 입시에서 예. 체능계 실기고사를 공정히 관리하기 위해 그동안 입시생을 상대로 개인 레슨을 해온 교수들에 대해서는 실기고사 출제. 심사 위원으로 위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입시 업무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91년에 나온 '개인 레슨 중지 결의'가 지켜지지 않았음을 서울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서우석 서울대 음대 학장은 "음대 교수 5~6명이 예술계 고등학교에 나가 레슨을 한 모양인데, 3학년을 지도한 사람도 한두명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음대 교수 전체가 그런 것 처럼 매도해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불신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한 음악 평론가의 말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아무리 교수라 해도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겠는가. 방법이 더 치밀하고 교묘해졌을 뿐 입시생에 대한 교수의 개인 레슨은 계속되고 있다." 친구와 후배 가운데 대학 교수의 고액 개인 레슨을 받은 사람이 몇 있다는 한 여학생(ㅎ 음대피아노과 1년)은 "대개는 한달에 한번쯤 교수 레슨을 받는데, 그때마다 20만~30만원쯤 낸다"라고 말한다. 음악원 교수들이 예술실기 연수 과정의 학생에게 받는 1회 레슨비 3만원과 견주면 천문학적인 액수다. 지도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몰래 다른 대학 교수의 개인 레슨을 받은 학생도 있다. 새끼 선생(대학원생.강사)에서 교수로 이어지는 전통적 먹이사슬은 여전히 가장 음성적이고 효율적인 개인 레슨 방식이다.

 늦어도 열살 이전에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여 계발해야 한다는 것이 음악 교육의 정설이고 보면, 사실 개인 레슨에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 이것은 대학 교수들이 조기 개인 레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따른다. 꼭 교수만이 조기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교수는 이에 대해 허황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해외에서 막 돌아온 연주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또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 교수는 자기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임무이고, 그것만도 벅차다. 고3입시생 가르치는게 조기 교육인가. 결국 그걸 이용해 치부하겠다는 얘기다."

"규제 풀면 제2의 장영주 나오겠지만…"
 많은 음악 관계자달은 레슨의 '유통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한다. 교육부가 적극 나서서 개인 레슨을 제도화하거나 외국처럼 개인 레슨 자격증을 주되 심사를 거쳐 등급과 적정 가격을 결정해 주는 식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외국처럼 레슨에 대한 규제를 모두 푼다면 제2의 장영주를 낳을 수 있겠지만 대신 대다수 평범한 아이들이 입시와 돈에 희생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묶어두기만 해서도 안되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이건용 교수(47.음악원 작곡가)는 말한다. 음악원이 부설한 예술실기 연수 과정은 개인 레슨의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의도로 개설한 일종의 예비 학교이지만, 그것은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부 산하라는 기묘한 형식을 빌려서야 설립이 가능했다. 현행 교육법상으로는 초. 중.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예비 학교 과정을 둘 근거가 매우 미약한 것이다. 근거를 들자면 교육법 제114조'대학에는 학생 이외의 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개강좌를 둘 수 있다'는 정도인데, 이것은 20세 이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 차원의 강좌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법이나 제도가 아닌지도 모른다. 이건용 교수는 "어떤 최상의 법이나 제도도 사람의 양식이 따르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라고 강조한다.
金相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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