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욕 전위예술 '핫라인'
  • 뉴욕. 양지연(자유 기고가) ()
  • 승인 199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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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 미국서 국제화 한마당 … 백남준 비디오 아트 등 '탈국적. 탈장르'무대 펼쳐



오늘날 공연 문화와 시각예술의 근원지이자 각축장이 되고 있는 뉴욕에서 한국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미술. 무용. 영화는 산발적이나마 꾸준하게 소개되어 왔는데, 얼마 전 우리의 예술이 하나의 문화 잔치로 세계와 만나는 행사가 펼쳐졌다. 지난 10월8일~11월6일 뉴욕의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열린 〈서울-나이맥스〉가 그것이다. 이는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예술 잔치로서, 국적과 장르를 초월한 예술을 지향하는 플럭서스 이념에 따라 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 멤버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구상 .기획한 행사이다.

 플럭서스는 60년대를 장점으로 하여 주로 미국과 독일에서 맹위를 떨친 전위 예술 운동이다. 다다이즘의 반 예술정신과 실험 음악가인 존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삶의 예술을 추구한 이 그룹은 국제적. 실험적이며, 시각과 음약. 퍼포먼스가 결합한 복합매체적 형식을 그 특성으로 하고 있다.

60년대 맹위 떨친 플럭서스 정신 반영
 그리니치 빌리지의 워싱턴 광장 공원에서 사물놀이패와 김영순무용단, 백남준씨의 해프닝이 어우러진 개막 행사를 필두로 진행된 이 잔치는 4개 분야(각종 공연 60회, 영화 상영 40회, 공개 토론회, 첨단 기술을 이용한 설치 미술 전시회)로 구성되었다. 한국 예술을 국제 무대에 연결하고 영화와 행위예술, 미술 전시를 병행해 관객이 자기 기호에 맞게 관람할 마당을 제공하고자 했다는 백남준씨의 기획 의도대로, 대부분의 행사는 국적과 예술의 장르 구분을 없애는 플럭서스 정신을 반영하였다. 한국측은 이선옥이 이끄는 선무용단, 홍신자. 김현자의 춤과 사물놀이 공연, KBS의 이산가족 재회 기록과 이두용 감독의 영화〈물레야 물레야〉〈장남〉〈청송 가는 길〉등을 소개하였다.

 필름 아카이브의 1,2층 로비에 설치된 테크놀로지 미술 전시에서 백남준씨는 대형 피아노 주변에 비디오 모니터와 카메라를 설치한 94년 작품 〈샤를로트 무어맨〉을 발표했으며, 앨리 벌리너는 〈오디오 파일〉이란 제목으로 캐비넷 서랍 1백8개를 열면 각기 다른소리가 새어나오도록 설계하였다. 성영기. 박천신. 정상곤은 컴퓨터 그래픽스 작품을, 유현정. 글로리아 박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작품을 전시하였다. 이밖에 드로잉과 비디오 화면을 결합해 지구의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의 협소한 공간에 설치되어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 전시회와 달리 무대 공연은 개개인이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 주었다. 백남준씨는 세계적 음악가인 얼 하웓, 리처드 티텔바움과 함께 독특한 형태의 비디오 오페라를 발표하였다. 작년에 독일 초청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이후 이번에 뉴욕에서 초연된 비디오 오페라는, 비디오 카메라라는 매체를 이용해 존 케이지. 조셉 보이스 등이 창작한 전위 음악과 백씨 등의 피아노 즉흥 연주가 기묘한 조화를 이뤄낸 작품이다.

 현대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홍신자씨는 이틀에 걸쳐 피아니스트 조슈아 피어스의 연주로 존 케이지의 44년 작품〈네개의 벽〉을 주제로 하는 전위 무용을 선보였다. 어두운 무대 위에서 홀로, 피아노의 흰 건반만을 사용하여, 심연을 두드리는 존 케이지의 피아노 곡과 호흡하며, 때로는 절제되고 무표정한 반복적인 동작으로, 때로는 고통이 응집된 얼굴 표정으로, 그는 인간을 사방으로 둘러싼 무언의 압력과 내부의 심리적 고통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외에도 한국 무용가인 이선옥씨가 이끄는 선무용단이 화가 손승덕씨의 페인팅 퍼포먼스와 함께 벌인 〈6바라밀〉과, 부산대 교수인 김현자씨의 독특한 춤 세계를 보여주는 〈생춤〉이 눈길을 끌었다.

 〈서울-나이맥스〉는 정부 지원금 10만달러와 백남준씨를 비롯한 외부 지원을 포함해 17만달러가 넘게 든 큰 행사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전위 예술을 접할 수 있었으며, 여러 장르의 한국 예술을 집중적으로 뉴욕에 소개하고 국제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행사였다.
뉴욕. 양지연(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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