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있는 절 풍경 불교 개혁 본격 '타종'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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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종헌 따라 총무원장 선출할 중안종회의원 첫 직선

혁회의 시한부 노력 결실… "진정한 개혁은 이제부터"
지난 7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 총무원 강당. 지난 4월 출범한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의가 9월29일 종단 원로회의의 인준을 받아 통과시킨 새 종헌안에 따라 제11대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오후 1시부터 치러져 이곳 분위기는 자못 긴장돼 있었다. 입후보한 스님 7명이 좌석에 일렬로 앉아 있었고 반대편에는 투표 참관인들이 개표 집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지 않아 기권으로 간주된 표가 한 표 나오자 일반 참관석의 스님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깝다. 표 한 장이 어딘데." "기권할 걸 뭐할라꼬 차비 들여가며 여기까지 왔노!" 중앙종회의원을 배출하는 전국 24개 교구 본사 중 조계사에 배정된 인원은 4명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총 유권자 1천3백69명 가운데 투표에 참가한 인원은 고작 2백5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토록 아까운 표가 1천1백19장이나 버려진 것이다. 귀중한 한 표라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투표율이었다.

종헌. 종법 대폭 개정 등 큰 성과
 이처럼 낮은 투표율은 선거라는 제도에 대한 불교계의 낯설음을 반영한다. 아울러 개혁회의가 추진해온 개혁 내용을 세속적 관점에서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제도주의 관음사처럼 유권자 30명 가운데 26명이 투표해 87%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곳도 있다. 대체적으로 40~70%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무투표로 중앙종회의원을 선출한 교구 본사도 여덟 곳이나 된다. 중앙종회의원 총 81명 중 이처럼 교구 본사 스님들이 직접 선출하는 의원은 51명, 나머지 30명 중 20명는 신설된 직능대표 의원이고 10명은 비구니 의원인데, 이들 30명은 선출위원회에 의해 이튿날인 8일 선출됐다.

 이렇게 선출된 중앙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 본사에서 10명씩 선발된 교규종회의원 2백40명을 합친 총 3백21명이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구성하게 된다. 개혁회의가 추진했던 총무원장 직선제가 8월23일 원로회의로부터 인준을 거부당해 간선제로 바뀐 것이다. 총무원장 직선안을 원로회의가 수용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상하 개념이 중시되는 불가에서 승랍 30년 이상 된 총무원장 후보 스님을 한창 배워야 할 승랍 5년 이상 스님들이 평가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玄應스님(개혁회의 기획조정실장)은 "개혁회의에 젊은 스님이 많다 보니 승랍 5년 이상이라는 선거 자격이 자칫 위계질서를 어지럽힐 수도 있다는 대중적 위구심도 문제가 된 것 같다. 불가에서 승랍 10년이면 아사리(大德)라고 해서 법계가 올라가는데 이쯤으로 제한했으면 혹시 직선이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개혁회의가 출범 초기에 외쳤던 직선제는 원래 총무원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총무원장을 선출할 중앙종회의원 직선이 목표였다. 또 직선제와 더불어 주요 개혁 목표였던 중앙종회의원의 겸직 금지 제도는 완전히 실현됐다. 그는 "예전 같으면 종헌 하나 고치기도 힘들었는데 개혁회의는 종헌을 거의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종법 40여 개을 뜯어고치는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었다"라며 개혁회의의 목표가 초과 달성되었다고 평가했다. 개혁회의를 출범시킨 4. 10 승려대회를 주도한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범종추) 시절만 해도 서의현 원장의 3선 저지나 추상적 의미의 개혁(겸직 금지나 총무원장 권한 분산 등) 정도가 목표였음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혁회의는 1백88개 사찰에 대해 신임주지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서의현 전 총무원장 추종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13개 사찰에 대해 징계와 함께 주지 경질을 단행했다. 반개혁 세력은 32건에 이르는 법정소송을 벌이며 이에 맞섰으나 이 중 대부분은 법원에서 각하되었다. 또 개혁회의가 통과시킨 새 종헌종법안은 예전에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많은 개혁 내용을 담고 있다. 총무원장으로부터 엄청난 이권을 가진 본사 주지 임명권을 박탈하고 본사 별로 산중총회를 통해 주지를 선출하도록 고쳤다. 총무원에 집중돼 있던 종무 행정을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산했다. 중앙종회와 새로 신설된 교구종회가 입법기관으로서 총무원에 대한 감시기관 역할을 수행토록 함과 동시에 중앙종회의 의회 기능을 활성화하고 독립성을 강화했다. 중앙종회의원의 겸직 금지로 이제 중앙종회의원은 총무원장이나 본사 특별분담사찰주지는 물론 교육원장. 포교원장. 호계위원. 법규위원 등 주요 직책을 동시에 맡을 수 없어 총무원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과거 전철을 밟지 않게 되었다. 사법기관인 호계원의 위상과 권한도 대폭 강화하는 한편, 헌법재판소 같은 기능을 수행할 법규위원회나 행정심판소 역할을 할 소청심사위원회도 설치했다. 이밖에 원로회의의 권한을 높여 중앙종회 해산 제청권을 갖게 했다.

"참된 불교 정신 회복 위한 과도적 단계"
 승가 교육을 별원으로 격상된 교육원이 전담케 해 승가 대학 과정이나 승가 고시를 맡게 한점, 교구 본사에 포교국장과 상임포교사를 두어 포교를 강화한 점 등은 불교의 밑바탕을 다지는 근본적인 개혁 내용으로 꼽힌다. 여기에 쓰일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까지 주먹구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종단의 재정 운영을 공개토록 함과 동시에 체계화했고, 수입이 많은 사찰이나 암자에는 특별분담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종무 행정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사설 사암도 등록을 의무화했다. 사설 사암은 1천7백여 개에 이르는 조계종 사찰 중 절반이 넘는 9백여 개에 달해 늘 문제가 되어온 곳인데, 새 종헌은 등록하지 않은 사설 사암 소유권자의 권한을 대폭 제한함으로써 표 달성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 수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투명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사와 감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완벽해야 하는데 새 종헌은 수입과 지출에 관한 보고, 공정한 예산 집행을 각 사찰 운영위원회에 일임했다. 총무원 직영 사찰이나 특별분담 사찰은 열한 곳인데, 이 중 특별분담 사찰도 보고만 의무 사항으로 해놓아서 감사국 직원을 파견하더라도 답함이나 묵인 등으로 개혁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개혁회의에 참여한 스님들이나 그 활동을 줄 곧 지켜보아온 사람들은 법과 제도 개선이란, 참다운 불교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불가피한 것일 뿐 필요불가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가 엄격하지 않아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산중 총회나 문중 가풍의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불법을 구현하는 데 충분한 것이다.

 그럼에도 개혁회의가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불가의 풍속만으로는 썩어들어가는 종단 문제를 치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서의현 전 총무원장은 느슨한 법과 제도를 악용해 전횡을 일삼았기에 선거제도를 비롯한 일련의 개혁 조처들은 참다운 불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과도기적 진통으로 받아들여진다.

 선거 제도가 불교 정신에 얼마나 어울리기 힘든 것인지는 선거가 필요악이라는 세간의 인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悟誠스님(총무원 교무국장)은 "선거는 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이다. 선거를 한다는 자체가 불교 정신과 그에 기반을 둔 권위를 상실했다는 의미도 된다. 세속적 민주주의와 불교적 민주주의를 똑같이 생각해선 곤란하다. 권위만 제대로 선다면 원로회의나 종회에서 합의하여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해 온 스님들이 이번 선거로 심판받을 수 있고, 평소 대중의 여론을 무시해온 총무원장이나 종회의원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11월14일 총무원장 선거인단이 구성되고 21일 새 총무원장이 선출되어 24일 원로회의의 인준이 끝나면 개혁회의는 8개월여에 걸친 소임을 다하게 된다. 개혁회의의 노력은 새로 출범하는 종단 집행부의 활동을 몇 년쯤 지켜봐야 그 결실을 평가 할 수 있다고 한다. 법과 제도 개선은 최소한의 필요 장치일 뿐이며, 전국에 산재한 단위 사찰들에서 불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진지한 열정을 다해야만 개혁이 완수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완수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개혁에 참가한 사부대중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蘇成玟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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