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지명전 제2라운드 김영삼의 ‘확신’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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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 공화계 대안 없다” 판다 민주계 “단계적으로 후보 가시화 된다”

 마주쳐 달려오던 열차는 일단 멈춰 섰다. 그러나 김영삼 민자당대표가 차기 대통령후보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계파 간 대결의 시기가 총선 후로 넘겨졌을 뿐 갈등의 본질은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으로 김영삼 대표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암시했을 뿐 총선 후 자유경선에 의해 후보가 선출될 것임을 천명했다. 이로써 지난 연초 당 중진의원의 청와대 만찬모임 이후 촉발된 계파 간 갈등은 스릴 넘치는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후 일단락됐다.

 이번 게임에서 최대의 승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노대통령이다. 그는 정면 승부를 걸고 나오는 김대표와 김대표에 대한 반발세력을 달래 내분을 진정시키고 민자당을 봉합하는데 성공했다.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 배석한 김대표는 다소 굳은 표정에 긴장된 모습이었다. 그의 굳게 다문 입은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결의를 담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기자회견 내용에는 분당의 배수진을 치고 ‘총선 전 후보 확정’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그의 입장이 표면적으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민자당의 대통령후보를 따내는 데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계 의원들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쯤 당이 깨졌거나 깨지기 직전의 험악한 분위기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통해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민주계 의원은 지자회견을 본 후 “김대표가 당한 것 아니야”는 당혹감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민주계 의원은 앞으로의 단계적인 가시화 조처를 관망하는 분위기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김대표를 수행했던 강삼재 의원은 “회견내용이 기대했던 것보다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견을 액면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 커다란 흐름에서 봐야 한다. 창당기념일 · 공천과정 · 공천자대회 등을 거치면서 김대표의 위상이 정립되는 조처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김대표가 예상 외로 줄곧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한다. “김대표의 기자회견 배석은 대통령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었다. 6 · 29선언 주체에 관한 논란, 정주영씨의 청와대 정치자금 헌납 폭로 등 대통령이 수세에 몰려 있고, 통치권 누수가 시작될 무렵 대통령의 입장을 한층 강화시켜주는 자리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김대표로서는 기분 나쁠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표는 노대통령과의 교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노대통령과의 교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입지강화에 협조한 것이다.” 그는 지난 11일 청와대 당무회의에서 노대통령이 “김대표는 당의 중심” “계파의 분파적 행동 엄중문책” 등의 발언을 한 점을 단계적 가시화 조처의 한 부분으로 해석했다.

 민주계의 황병태 의원도 “국민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원칙 이외에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뭐 있겠는가. 걱정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신뢰관계가 성립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민주계 의원들은 김대표가 후보 보장을 위한 안전장치 없이 대통령의 회견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

총선 통한 ‘대세몰이’ 전략 택해
 그러나 그 눈에 보이는 조처라는 것이 단지 상대적 우위유지 장치 정도일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다. 김대표의 ‘행복한’ 표정만으로 대통령후보 보장을 점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밀약의 내용에 관한 관심과 함께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묵계가 있었다고 해도 구속력을 갖느냐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적 밀약에는 ‘정세변화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묵계는 여건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번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총선 결과와 선거 후보의 정세에 따라 밀약 내용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한 관측통은 이번 게임에서 김대표는 판정패했다고 단정한다. “노대통령과 김대표 사이에서 밀약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의미가 없다. 서로가 서명까지 한 내각제 합의가 깨지지 않았는가.” 김대표는 끝까지 그의 장기인 대중을 상대로 한 여론정치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청와대 측과의 협상에서 다른 것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후보 명기라는 대국민 선언을 끌어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처 없이 그가 총선 후에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번의 계파 간 갈등과정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김대표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총선 전 후보 확정 아니면 분당이라는 아직까지의 방침과는 분명 다른 선택을 했다. 관측통들은 그가 분당 외통수가 먹혀들어가는 듯하다가 막판에 통하지 않자 한 발 물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여권의 메커니즘을 알고 난 후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기에는 너무 두터운 벽을 실감했고, 따라서 당을 깨기보다는 그대로 남아 다시 한번 승부를 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력을 바꿔 총선을 통한 대세몰이를 택한 것이다. 이는 곧 그 전의 입장과는 달리 총선 후 만의 하나 자신이 후보가 안 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을 인정한다는 말이 되다. 외통수 전략에 융통성을 가미한 것이다. 전략선회의 배경에는 후보 결정이 총선 후로 미뤄져도 자신이 후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음은 물론이다.

계피 갈등, 총선 치르며 더 증폭될 듯
 김대표가 총선 후에도 자신이 후보가 될 것으로 믿는 것은 민정 · 공화계에 따로 대안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의 판단을 뒷받침하듯 신민주계 의원으로 알려진 어느 의원은 “김대표가 좋아서가 아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를 밀 도리밖에 없지 않는 가”라고 반문한다.

 민주계의 한 의원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대통령을 궁지로 몰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김대표가 후보로 가는 10개의 계단이 있다면 연두 기자회견과 당무회의는 각각 첫째 둘째 계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저쪽의 조처를 봐가며 공세의 방법과 시간을 잡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번 대통령후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확인된 것은 제도화돼 있지 않은 우리 정치는 미성숙이다. 제도화돼 있지 않은 정치는 인물 중심의 붕당정치일 수밖에 없고 정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이번에 많은 사람들은 불과 며칠 동안의 정치세력간 막후협상에 의해 권력의 향배가 결정되는 듯해서 긴박감과 불안감을 가졌다. 또 명분으로 내세우는 가치와 실제적인 정치내용과의 간격으로 나타나는 정치무대의 이원구조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의 과거 형태를 보면서 겉으로 나타난 정치의 모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 묵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통령후보 논의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 김대표는 이 문제를 둘러싼 소용돌이의 중심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그가 후보가 될 것인가의 물음은 5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계속될 것이다. 계파 간 갈등의 목소리는 총선을 치르면서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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