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 폐기물 처리 방법이 없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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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 佛 · 獨 · 蘇 등 매립계획 모두 좌절

 지난 74년에 레스터 R 브라운 박사가 설립한 비영리연구 기관인 더 월드워치 인스티튜트(The Worldwatch Institute)는 환경과 에너지, 식량 등 지구 차원의 문제에 대해 과학적 분석을 수행하는 곳이다. 워싱턴 포스트 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뇌집단의 하나’라고 소개한 바 있는 이 연구소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새로운 형태의 환경연감《지구환경보고서》(State of the World)를 84년부터 발간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이 연구소에서는 해결책을 못 찾고 있는 세계 각국의 핵폐기물 처리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막다른 길에 이른 핵폐기물 처리’ 실태를 점검해본다.

핵 발전 26개국 가운데 안전한 방법 찾은 나라 없어
 전 세계의 원자력 산업이 지구상에 방사성 폐기물을 쌓아오기 시작한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것을 안정하고 영구적으로 처분할 방법을 찾은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지난 90년에 원자력발전소에 축적된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은 8만t을 넘어섰는데 이는 85년의 2배, 70년의 20배나 된다. 수 만년 동안 치명적인 독성을 띤 채로 남을 이 방사성물질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진 세계 20개국 어디서나 설치 운영중인 임시 저장시설에 쌓여있다. 이 추세대로 나간다면 앞으로 2천년 안에 지구상의 핵폐기물 총량은 19만t을 넘을 것이다.

 민간 상업용 원전은 핵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의 약 95%를 배출한다. 그렇지만 각국 정부는 핵폐기물 문제가 ‘개결될 수 있다’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계속 원자력 발전을 장려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수백m 깊이의 지구 지각 층에 호장하는 지층 매립이야말로 이른바 ‘고준위’ 폐기물 처분을 위한 가장 안전하고 장기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하수의 이동, 지질 활동, 또는 인간의 간섭(실수) 등으로 인한 핵폐기물의 동요 가능성을 두고 여전히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뉴멕시코에 있는 ‘핵폐기물 격리 실험 공장’(WIPP)의 암염갱 처분장은 폐기물을 안정시키는 건조상태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지금은 소금물이 담 벽으로 새어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부식성을 가진 지하수는 강철로 된 용기를 부식시켜 방사성 찌꺼기가 근처에 있는 수맥으로 스며들게 할 위험이 매우 크다.

 정부 관리들은 곧잘 핵폐기물 문제가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해결된 것이라고 넌지시 내비치곤 한다. 그러나 아직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히 가둬두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나라는 핵폐기물을 그들 자신만의 시간표에 따라 묻어오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방법은 마치 신기루 같아서 과학자들이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려고 접근하기 시작하면 멀어진다.

 이미 지난 75년에 미국 정부는 1985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 매립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런데 그 목표 시점은 처음89년에서 98년, 2003년 등으로 연기되더니 최근에는 2010년까지로 미뤄졌다. 그런데 이 목표마저도 기술적인 문제점과 매립장이 들어설 네바다주의 맹렬한 반대를 감안해볼 때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지난 90년에 몇몇 과학자는 네바다주 유카산에 매립할 예정이던 방사성 폐기물더미로부터 발산하는 방사성이 감쇠되기도 전에 유카산의 화산 활동이 재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프랑스에서는 89년과 90년에 일어난 대규모 반대 시위로 당시 국무총리였던 미셀 로카르씨가 방사성 폐기물을 매립하기 위한 지층 탐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해야 했다. 프랑스정부는 91년에 처분장을 탐사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러나 최종 매립지에 관한 결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앞으로 15년 안에는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그때가 되면 프랑스의 고준위 핵폐기물 재고품 명세는 지금보다 3배 이상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독일의 경우 끊임없이 제기되는 기술적인 문제점과 반대를 감안할 때 2008년까지 핵 쓰레기를 매립하려는 현재의 계획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지하수가 고르레벤(Gorleben) 소금 돔 건물을 활발히 부식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 연구조사반의 제1차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핵폐기물 매립 계획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는 최근 다른 핵관련 설비를 건설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봉쇄하려는 소동들로 나타나고 있다.

나라마다 핵 처리장 반대 시위
 스웨덴은 원자력 발전소를 점차적으로 없애려는 결정을 한 덕으로 아마도 가장 논쟁의 여지가 적은 핵폐기물 프로그램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스웨덴은 단순히 땅속 깊이 매립한 것보다는 풍부한 토목공학적인 장벽 체계에 의존한 계획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으로 우수한 처리방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의 원자력 정책입안자들은 여전히 기술적인 불확실성과 후보 매립지에 대한 반대여론에 부딪혀 있다고 전해진다.

 옛 소련에서는 체르노빌 참사 이후 핵폐기물 저장고를 세우려고 몇 차례 시도했으나 대중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했었다. 그 뒤로 여기에서 새로 탄생한 각 공화국 정부는 핵폐기물 처리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90년에 러시아 의회가 제정한 한 법률에 따르면 다른 공화국이나 외국으로부터 반입된 핵폐기물 매립을 금지한다고 되어있다.

 대만에서는 원전 여섯 군데에서 생기는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한 정부 노력이 연구조사에 그치고 있어 매립장소 선정조차 되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오키드섬에 저준위 핵폐기물을 집적한 정부 조처에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땅속 매립은 ‘계산된 위험’일 뿐
 지금까지의 연구조사가 밝혀낸 것은 핵폐기물을 생산해온 거의 모든 나라가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 지지자들도 만족시키고 핵폐기물 생산을 중지시키려고 노력해온 사람들도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찾은 나라는 여태까지 하나도 없다. 현재로서 지층에 매립하는 방식으론 핵폐기물이 봉쇄된 채로 남아 있는 다고 보장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땅속에 묻어두고 안심한다는 것은 ‘계산된 위험’에 어리석게 대응한 데 지나지 않는다.

 미국 원자력 산업은 의심 많은 네바다 주민들이 유카산 매립지를 인정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가 드는 홍보 캠페인에 착수했다. 그러나 핵폐기물 매립을 촉진함으로서 진창에 빠져 오도가도 못 하는 상업용 원자력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노력은 예상 밖에 불리한 결과를 낳아 현재로서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핵폐기물을 묻기 위한 몰아붙이는 식의 성급한 시도는 돌이킬 수 없는 시행착오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많은 나라는 지상에서 임시변통으로 저장하는 것을 21세기의 핵 쓰레기 해결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잠정적인 저장 방식은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고 검토하는 동안 시간이 지나게 할 뿐이다.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적의에 찬 지상 논쟁이 지속되는 한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원자력 발전소 보유국들은 원자력에 관한 논쟁 때문에 자국의 정치체계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현재의 핵폐기물 논쟁이 처한 막다른 길은 각국이 단호하게 원자력발전을 거부할 때만 비로소 뚫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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