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위기, 독자가 없다
  • 이문재기자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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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南昊씨 등 평론가 “대중성 확보 시급”주장 … “문학 = 재미 아니다” 반론도

 ‘책읽기 극장’이 텅 비어 있다. 이른바 순수소설을 쓰는 본격작가들만이 그 대극장의 무대에 올라가 독백을 하고 있을 뿐, 객석은 썰렁하기만 하다. 그 모노드라마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극장의 스태프들이 고작이다. 반면에 본격작가 · 비평가들이 외면해온, 혹은 무시해온 ‘책읽기의 노천극장’애는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른바 대중소설이라고 불리는 ‘드라마’들이 연일 만원사례를 외치고 있다.

 문학평론가 李南昊씨(고려대 교수)가 최근 발표한 평문 ‘小衆의 시대에서 大衆으로의 길’(《세계의 문학》겨울호)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따라서 독자도 없는” 요즘 한국소설의 위기를 지적하고 그 타개책을 제시해 주목된다. 또한 평론가 朴德奎씨도 비슷한 시기에 “소설의 위기, 거듭 논의되어야 한다”면서 중견작가들이 지난해 발표해 호평을 받은 중편소설의 반대중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같은 소설의 위기는 문학전문지들의 신년특집 좌담에도 논제로 올라가 소설의 대중성 획득 문제가 92년 문학계의 한 이슈로 떠올랐다.

소설의 대중화는 소설의 생존문제
 “이제 예술(소설)은 고독한 古城의 망루로부터 속세로 내려와 스스로 세일즈맨이 되어 대중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남호씨의 발언은 독자와 유리된 소설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씨는 ‘소중의 시대에서 대중으로의 길’에서 소설의 목을 죄는 안팎의 적을 지목한다. 먼저 밖의 적은 문화적 상황의 변화이다. 레저산업의 번창, 영상매체의 막강한 위력, 대중매체의 범람 등 문화의 서열이 재편되는 후기산업사회 속에서 문학의 입지는 약화되고 있다. 소설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적도 만만치 않다. 그 내부의 적은 “소설의 대중적 친화력 상실을 (작가 · 비평가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소설의 대중성은 어떻게 확보돼 기사회생할 수 있는 것일까. 小衆 혹은 無衆 작가(순수작가)들에게 이씨는 파격적인 텍스트를 내놓으면서, 그 속에서 위기의 타개책을 뽑아낸다. 왜 파격적이냐 하면 그가 소석의 위기를 뛰어넘기 위해 분석한 두 작품이 다름아닌 이은성씨의 《소설 동의보감》(창작과비평사 펴냄)과 김윤희씨의 《잃어버린 너》(다나 펴냄)이기 때문이다.

 이 두 소설은 소위 정통작가의 작품이 아니며, 게다가 초베스트셀러 소설이어서 권위주의적인 작가 · 평론가들의 시야에 들어가지 못한 부류였던 것이다. 그동안 대중소설에 대한 ‘판결’은 대중의 정서를 파괴하고 현실 도피적 성향을 부추김으로써 결과적으로 독자를 보수주의 성향으로 만든다는 것이었고 사실 거개의 대중소설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씨는 대중소설의 위와 같은 역기능과 대중소설이 지닌 대중적 친화력을 구별하면서 이 두 대중소설을 비평의 진지한 대상으로 삼았다. “대중의 속물적 취향에 대한 야합이 문제이지, 대중적 친화력 자체가 거부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적 친화성의 조건 속에 약간의 통속성이 만일 있다면 (작가가) 그것까지도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극적 구성과 풍부한 체험이 관건
 《소설 동의보감》과 《잃어버린 너》는 빼어난 문학작품이 아니다. 두 소설의 결점들은 그의 비평적 그물에 거의 다 걸려든다. 《소설 동의보감》은 우연적이고 작위적인 대목이 많고 특히 시대적 · 사회적 원근법을 지니지 못하며, 성격의 사실성이 부족하다. 또한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들은 대개 선과 악이란 이분법으로 유형화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엄청난 독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일차적으로 그 까닭은 “극적인 사건 전개와 인물의 과장된 성격”에서 비롯되는 소설적 재미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동양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옛 의술세계의 秘談들에 대한 풍부한 자료수집”이 전통적 의술세계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를 택해 그에 대한 풍부한 자료 수집을 했다는 것이 광범위한 대중성을 획득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저자의 실화를 다룬 《잃어버린 너》역시 결함이 많다. 이씨에 따르면 이 소설은 한 여자의 개인적 삶만이 조명될 뿐, 세상살이의 다양한 풍경이나 사회적 현실의 각박함이나 삶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 보이지 않는다. “여주인공이 광신적으로 한 남자를 사랑 한다”는 이야기만 있는, 시야가 매우 좁은 단순한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소설도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 동의보감》이 그러하듯 이 소설도 대중적 친화력을 갖고 있거니와, 그것은 “소박한 감동의 힘”이다. 이 실화소설은 “내면적 고통을 오래 인고한 자의 겸손하고 깊고 쓸쓸한 마음결”을 느끼게 하는 문체와 “디테일의 풍부함과 적절함”으로 통속적인 이야기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다름 아닌 “절실하고 풍부한 체험” 이 이 소설의 대중적 친화력이라고 강조한다.

 독자의 구매력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는 소설, 자본주의적 소비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소설의 상품으로서의 운명을 강조하는 ‘소중의 시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작가들에게 제시한다. 첫째 스토리 자체의 흥미와 극적 구성력에 대한 배려, 둘째 소재에 대한 남다른 체험의 풍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한 일간지와 《문화예술》 1월호에 발표한 시평을 통해 소설의 위기를 거듭 지적한 평론가 박덕규씨는 중견작가들의 대표적 중편소설을 분석하면서 소설 위기의 현주소와 그 대안을 모색한다. 대중소설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이남호씨와는 다른 방향인 것이다.

 박씨가 메스를 들이댄 김원우 조성기 안정효씨의 중편들은 지난해 문학상을 수상했거나 후보로 오른바 있는, 91년 소설계의 성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실제로 이 중편들이 실린 수상 작품집과 중편집은 적지 않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가 보기에, 세태묘사 소설이란 공통점을 지닌 이 소설들 속에 위기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작가들이 “자본주의적 현실 해석을 위한 주도면밀한 인식과 경험을 수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논리에 길드는 대중에 충격 가해야
 중견작가 김원우씨의 동인문학상 수상작<방황하는 내국인>과 조성기씨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우리시대의 소설가>는 둘 다 연작형 소설인데, 연작 소설의 강점을 살리기보다는 “단편소설이 자랑하던 집약성의 와해와 장편소설이 특히 자랑삼던 총체성 상실”의 징후를 보인다는 것이다. 안정효씨의 <미늘>도 낚시에 대한 전문성을 살렸다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도시인의 피상적인 갈등만을 추적하는 통속 구조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박씨는 집약성과 총체성의 무너짐으로 요약되는 소설 현상이 소설뿐만 아니라“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탈 중심 화 세속화 표피 성 경계와해 등 포스트 모더니즘적 요소의 한 대목”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이 위기적 상황에 대한 대안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소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복잡한 자본주의 현실을 살아가는 일상인의 고립되고 파편화된 ‘전문적인’삶을 집중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풍성한 체험세계를 살려내는 문체와 독자를 긴장시키는 극적 구성을 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남호씨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두 평론가는 자유주의진영 작가와 작품들을 주로 겨냥했지만, 짧게나마 현실주의 진영 작가들의 대중성 논의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남호씨는 이들이 “대중의 성격을 너무 주관적이고 이상적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입각해 논리를 세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고 박덕규씨는 “작가의 문제의식의 과잉”에서 야기되는 상투성을 극복해야 독자들이 다가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평론가들의 제언에 대한 반대론도 없지 않다. 작가 김영현씨는 《현대문학》신년호 정담에서 “대중성이 꼭 좋은 소설이 필요조건은 아니다”라며 자유주의 진영의 작가든 현실주의 작가든 “작가정신 자체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며 소설의 대중석 확보 문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평론가 임우기씨는 ‘재미 론에 입각한 대중성 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임씨는 “무엇을 위한 대중성 확보인가라는 천착이 전제되지 않는 대중성 논의는 우파 보수주의의 시의적 변주”라고 해석한다. 문학의 변혁적 기능을 도외시한 채, 문학은 곧 재미라는 등식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대중추수주의에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주의 진영에서의 대중성 논의도 “사회주의를 고정불변의 무엇으로 상정해놓은 한, 그 이념 자체에 대한 반성이 없는 한 대중성 논의는 수박 겉 핡기 식일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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