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과거사 사죄는 ‘말의 유희’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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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 미야자와 회담 이후에도 한 · 일 마찰 심화될 듯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된 이래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양국간에는 먹구름이 걷힐 날이 없다.

 미야자와 일본총리의 방한을 1주일쯤 앞둔 지난 주말, 일본정부의 한 당국자는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해 “오로지 빌 수밖에 없다. 머리를 땅에 조아려서라도 빌겠다”라고 발언했다. 얼핏 들으면 과거사의 반성과 청산에 인색했던 일본정부의 자세에 큰 전환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발언은 미야자와 방한을 앞두고 한국의 여론무마용으로 흘린 외교적 ‘말의 유희’라는 지적이다. 일본정부는 여태까지 종군위안부문제는 민간업자의 소행이므로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오리발 작전’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지난 10일 일본 방위청도서관에서 종군위안부를 일본군이 관장, 통제했다는 자료가 발견되자 일본정부는 당혹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종군위안부문제가 미야자와 방한의 초점으로 부각되어가는 마당에 일본군의 관여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문서가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급진전하자 정부 대변인인 가토 관방장관은 별수 없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일본정부의 책임을 처음으로 시인하고, 한 · 일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더 이상 확대 거론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진화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불과 2년 전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일본이 “머리를 땅에 조 아리겠다”고 할 만큼 그동안 한 · 일관계의 전체구도에 큰 진전이 있었던 것도 결코 아니다. ‘21세기를 향한 동반자 관계의 구축’이라는 공동목표가 전후청산의 미비, 무역불균형의 확대 등으로 오히려 후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다.

 또한 2년여 남짓 사이 국제정세의 급변으로 한 · 일양국은 ‘마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첫째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마찰음이다. 재작년 5월 일왕의 사죄발언을 계기로 과거사를 청산하고 동반자관계의 구축을 외쳤던 일본은 불과 넉 달 뒤 평양에서 ‘3당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북한과의 수교교섭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본외교의 이중성은 ‘한반도 분할지배 야욕’으로 한국인들에 투여돼 또 다른 반일감정을 분출시켰다. 즉 이전의 반일잠정은 과거사의 사죄나 반성, 전후청산문제에 집중되었으나 일본이 한반도 통일의 훼방꾼이 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부터는 그 풍향이 바뀐 것이다.

 일본정부는 작년 말 남북합의서가 교환되고 북한이 핵사찰수용을 표명함에 따라 이달 말 제6차 수교교섭을 재개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들도 올해야말로 ‘일 · 북수교위 원년’이 되어야 한다는 논조를 내걸고 조기수교를 재촉하고 있다.

 둘째는 일왕의 사죄발언 이후 석 달 뒤에 일어난 ‘걸프위기’가 한 · 일관계의 장래에 먹구름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재작년 8월의 걸프위기와 작년 1월의 걸프전쟁은 일본의 대국의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정부는 이를 기회로 작년 4월 첫 해외파병을 성사시켰다. “일본은 결코 군사대국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은 한국의 ‘대일경계론’을 부채질했고 다시 이것이 일본의 ‘대한경계론’을 자극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발전하고 있다.

 셋째는 노태우 대통령이 이번 한 · 일정상회담의 최대 현안으로 지적한 무역불균형의 확대문제이다. 노대통령의 방일 이후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는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작년 57억 5천만 달러, 작년 약 90억 달러(추정)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 전체 무역적자의 약 90%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불균형 문제의 시정을 둘러싸고 이번 회담에서도 한국은 일본의 수입촉진과 기술이전을 요구할 것이고 이에 대해 일본은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보여 한 · 일간의 마찰관계는 과거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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