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내 생물 1백만 종 멸종”
  • 이병훈 (전북대 교수 · 동물학)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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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는 환경오염과 자연파괴가 국내외 곳곳에서 벌어진 한해였다. 걸프전쟁 때 바다를 뒤덮은 기름과 검은 연기, 유전의 불기둥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국내에서는 낙동강 상류의 페놀방류사건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는가 하면, 이 좁은 땅에 운영중이거나 건설 중인 2백 개 이상의 골프장이 자연파괴를 가중시킨 주범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최근에는 지구상 생물의 별종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어 우리나라에도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동 · 식물의 남획과 남벌을 막고 생물다양성 보존 차원에서 동 · 식물을 보호하도록 조처하라는 것이다. 광대한 아마존유역과 보르네오 등의 열대삼림은 벌채 도로건설 개간 등으로 매년 7만6천㎢씩 사라지는데 이때 함께 없어지는 생물이 하루에 1백여 종씩이나 되자 유엔이 나선 것이다. 오는 6월에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를 열어 여러 가지 환경문제와 함께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5년 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생물다양성에 관한 전국토론회’에 필자가 참석했을 때 이미 논의되고 암시된 것이다. 당시 토론회 발표자들은 육지 면적의 6%에 불과한 열대림에 지구상 생물종의 2분의 1이상이 서식하는데 이 숲이 매년 1%씩 준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자연 연구와 관리 면에서 최하위국”
 국제자연보존연맹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2만5천여 종의 식물과 1천여 종의 척추동물이 멸종위기에 있으며 앞으로 20년 안에 50만종 내지 1백만 종의 생물이 사라질 것이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생물보호 ’ 상태는 과연 어떠한가. 우선 우리의 생물자원이 종류로 보아 얼마나 되고 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가 밝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의 20%만 조사됐을 뿐이다. 따라서 호랑이 크낙새 개똥벌레 등 이미 멸종되었거나 멸종되어가는 것이 많지만 실제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은 곧 기초 생물자원에 대한 우리 지식의 커다란 공백을 의미한다. 또한 그동안 국가가 이를 메울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투자도 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는 또 국가적 차원에서 아직까지도 국립자연사박물관 같은 자연연구의 중심기관이 없다는 사실로도 대변된다. 자연사박물관이 미국엔 4백여 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엔 각각 2백여 개씩 있고 헝가리 루마니아에도 각각 40~50개나 된다. 북한도 동물학연구소와 생물학연구소를 국립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무역량 세계 12위, 10년 내 기술선진 7위권 안에 들겠다면 서도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이나 동 · 식물 연구소 하나는 한국은 자연연구와 관리면 에서 세계 최하위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이 점은 그동안 우리가 기초연구에 솔홀 했던 반면에 응용과학과 첨단에만 급급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밖에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서는 천연보호지구와 국립공원을 제대로 설정, 운영해야 한다. 유네스코는 지난 90년까지 세계 72개국에 2백90여개의 생물권 보존지역을 설정했는데 설악산과 백두산이 여기에 들어 있다. 그러나 재벌과 정부는 이 명산들을 가급적 그대로 보존할 생각보다 앞 다퉈 개발만 부르짖는다. 세계적 명산인 금강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생각도 그 하나다. 더욱이 최근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자, 세계적으로 다시없을 자연실험실인 광대한 휴전선 일대에 자연보존구역이나 자연공원을 조성하자는 이야기는 없고 ‘남 · 북한합작공업단지’ 조성계획안을 발표하는 등 민족의 마지막 기대마저 깨뜨리는 듯하다.

 한때 과학기술처는 늦게나마 89년을 기초과학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기초과학 발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최근에 ‘산업기술발전’으로 대치되었고 기초과학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우리가 시급히 손써야 할 생물다양성 보존도 일찍부터 우리가 기초과학의 균형발전을 도모했더라면 지금같이 속수무책의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 다양성 존중은 비단 자연생태계 유지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정책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마치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요체이고 가장 강력한 발전전략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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