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UR항쟁 농민은 맨주먹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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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도대체 그동안 뭘했나” 중농마저 전업 채비

농업예산 증액ㆍ경쟁력있는 품목 집중투자 서둘러야

농촌이 UR(우루과이라운드)에 가위 눌려 있다.  4년 전 우루과이에서 형성된 기압골은 그동안 약해진 듯했으나 지난 7월 태풍으로 돌변해 우리 농촌을 삼킬 듯이 맹렬한 기세로 몰려오고 있다.  젊은 사람이 없어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될 정도로 피폐해진 우리 농촌은 벌거벗은 알몸으로 강풍을 맞아야 하는가.  UR태풍이 상륙하기도 전에 농민들은 이미 탈진한 상태다.  과연 태풍의 강도는 어느정도이며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힐 것인가.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농촌현실 있는 그대로 써달라”

10월 중순 어느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곡창지대 중 하나인 전북 김제군의 금만평야는 한창 바쁜 때는 지난 듯 비교적 한가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논은 벼베기를 끝냈고 탈곡을 하거나 멍석에 나락을 말리는 장면이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러나 아직도 추수 안한 논이 듬성듬성 남아 있고 허수아비들이 낫을 기다리는 벼를 지키고 서 있다.  UR태풍을 아랑곳하지 않은 듯한 한가로운 풍경은 평야를 뚫고 나 있는 도로 위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죽산면 농협이 소개한 金英吉(48)씨를 만나기 위해 연포리 삼진부락을 찾았다.  김씨는 할아버지 때부터 논농사를 대물림받은 ‘부지런하기로 소문난’농부다.

48마지기(9천6백평)를 짓고 있으니 中農중에서도 잘사는 편에 속한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농촌현실을 있는 그대로 써달라”는 주문부터 했다.

김씨는 요즘 UR 때문에 걱정이 태산같다고 했다.  “지금도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면 농사를 그만 지어야 할 지경이 되겠지요.” 그는 UR이 이렇게 심각한 것인 줄 알았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텐데 이를 빨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정부를 원망했다.

“우루과이라운드가 4년 전부터 시작됐다는데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요.  정부가 감추고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벌써부터 대응책을 갖췄어야 하는 건데 협상타결이 얼마 남지 않은 막다른 시점에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으니 한심하고 분통 터지는 일입니다.”

김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민은 UR이 우리나라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짓눌려 있다.  그러면 농민들은 어느정도의 타격을 받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가라고 할 수 있는 벼농가와 과수농가 그리고 축산농가가 UR로 인해 입을 피해를 구체적으로 예측해보기로 하자.

부인 오귀녀(46)씨와 2남3녀를 둔 김씨의 경우, 1년 농사를 지어 쌀 2백가마(가마당 80kg) 정도를 수확한다.  올해에는 이미 햅쌀 70여가마를 한가마에 9만2천~9만4천원에 팔았다.  정부가 수매를 시작하기 전에 헐값으로 시장에 낸 이유는 우선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쌀 한가마 값을 10만원으로 친다면 김씨는 1년 쌀농사를 지어 2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이중 그가 추수를 해서 갚아야 할 돈은 7백50만원.  여기에는 각종 세금 1백10여만원, 비료값, 농약값, 영농자재비 1백20여만원, 인건비와 농기계 사용비 2백40만원 등이 포함된다.  총수입에서 경비를 제하면 1천2백50만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 식비, 5자녀의 교육비, 생활비, 경조비를 대기가 어려워 농협 부채 4백만원을 지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만약 현행5%의 관세율을 적용, 쌀시장을 당장 개방할 경우, 우리나라 쌀농사의 순손실은 88년을 기준으로 1년에 3조7천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88년 쌀의 총생산량은 4천만섬(1섬은 1백44kg).  이를 80kg들이 가마로 환산하면 7천2백만가마다.  2백가마를 생산하는 김씨의 경우, 매년 1천27만8천원의 피해를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손실액에 생산비와 세금 7백50만원을 포함시키면 김씨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고작 2백22만원이다.  또 연구원은 현행 관세율로 쌀시장을 개방하면 국내 쌀 생산량은 88년6백5만톤의 6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쌀 국내가격은 국제가격의 6배

UR협상에서 가장 입김이 센 미국과 EC 입장의 중간지점에서 협상이 타결돼 국내보조금을 10년내 50% 수준으로 감축해야 할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가 실제로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다.  총 쌀생산액 6조2천8백90억원 중 국내보조 총액은 정부보조금 6천9백27억원과 수입규제를 통한 가격지지 금액 4조7천5백76억원을 합쳐 총생산액의 87%에 달한다.  김씨의 1년 수입 2천만원 중 1천7백40만원은 정부의 보조에 의한 수입이란 말이 된다.  쌀시장을 개방, 1년에 정부보조 규모를 5%씩 감축한다면 매년 87만원씩의 소득이 감소, 10년 후 김씨의 쌀농사 총수입은 1천1백30만원에 머물게 된다.  경비 7백50만원을 제하면 1년 농사 순수익이 3백80만원밖에 안된다.  다시 말하면 김씨의 생계가 걸린 현재의 쌀농사 수입 1천2백50만원은 5년 뒤에는 지금의 65% 수준으로, 10년 뒤에는 30% 수준으로 줄어든다.

UR협상에서는 수입물량 규제 등을 없애고 관세로 대체한다는 데 기본적으로 합의하고있다.  현재 쌀의 국내가격은 국제가격의 6배정도.  UR협상의 앞의 가정대로 타결된다면 수입쌀에 5백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관세를 절반으로 내려야한다.  그렇게 되면 국산쌀은 경쟁력이 전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올 들어 40호 중 3가구 이미 마을 떠나

여하한 조건하에서도 쌀시장의 개방은 생산기반의 붕괴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씨는 매일 농사를 그만두고 수퍼마킷이나 화장품 할인코너를 해볼까 아내와 함께 궁리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들어서만도 삼진부락 40호 중 3가구가 마을을 떠났다고 그는 전했다.  김씨의 경우는 쌀농사에 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 농가의 전형에 해당한다.  농림수산부 통계에 의하면 88년 현재 우리나라 쌀재배 농가는 모두 1백63만호다.  이중 대부분은 김씨보다 경지면적이 훨씬 좁은 영세농이어서 UR의 타격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과수농가는 어떨가.  충남 예산군은 과수재배면적이 1천8백ha, 1천5백여 가구가 사과를 재배하는 사과 주산단지다.  예산읍 석양리의 崔鎭萬(44)씨는 부인과 2남1녀를 거느린 사과 전업농이다.  언덕바지에 걸쳐 있는 7천평 넓이의 과수원에는 후지종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신선놀음 같아 보인다.  그러나 10월말부터 2주일간 엄청난 양의 땀을 이곳에 쏟아야 한다.  15명의 인부가 사과를 따서, 꼭지를 제거하고 사과의 크기 색깔 등 품위를 선별, 상자에 넣어 창고에 보관하는 작업이다.  9월상순까지 수확한 아오리종과 합쳐 3천상자 정도의 수확이 예상된다고 최씨는 설명한다.  올해에는 사과뿐만 아니라 귤 단감 등 다른 과일의 현격한 수확감소로 사과값이 올라 한 상자에 1만2천원 정도를 받을 것 같다고 최씨는 말했다.


사과 재배에서 나오는 최씨의 올해 수입은 3천6백만원.  그중 60% 정도가 경비로 나가고 순이익은 1천4백만원선이다.  경비는 농약대 7백만원, 비료값 5백만원, 인건비 6백만원, 자재ㆍ유통관계 비용 4백만원 등이다.  그는 영농비 교육비 생활비 등을 사과농사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워 현재 3백5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사과재배 농민들은 사과시장이 개방되면 값싼 외국산 사과가 파죽지세로 몰려들어올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는 사실과는 좀 다르다.  우리나라 사과는 품질이 좋을 뿐 아니라 국내가격이 국제가격의 1.3배에 불과해 경쟁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사과 수입자유화로 인한 피해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개방시 생산량도 63만7천톤으로 예상돼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바나나 시장개방이다.  최씨는 며칠전 예산 역전시장에서 트럭에 가득 실은 바나나가 1시간만에 동이 나는 것을 보고 “섬뜩했다”고 말했다.  내년에 바나나가 쏟아져들어오면 사과 소비량이 급격히 줄 것이며 가격 또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연간 2천톤 정도가 대만과의 구상무역으로 들어오나 내년에는 30만톤 이상이 수입될 것으로 농촌경제연구언의 한 전문가는 내다봤다.  바나나 수입개방으로 최씨가 입을 손실을 지금 추산하기 어렵다.  다만 일본의 경우 70년 바나나 수입개방으로 사과 1인당 연간소비량이 69년의 6.5kg에서 4kg까지 감소된 사실에 비추어, 최씨의 수입도 몇년내에 3분의1 이상이 줄 것으로 어림잡아볼 수 있다.  그러나 3~4년 후에는 사과소비량이 현수준에 가깝게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될 경우, 소 축산농가의 피해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풍일리 李瑞圭(53)씨의 집을 찾았을 때 이 동네 소 양축가 5사람이 모여 있다가 “취재 같은건 해서 무엇하느냐”며 격앙된 표정으로 윽박질렀다.  “쇠고기를 수입해 들여오는데 마진은 누가 먹느냐? 정부가 장사하기 위해 농민들 죽이는 거 아니냐.” 명절 때나 수지를 좀 맞추려고 값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때마다 정부에서 소비자물가를 억제한답시고 수입쇠고기를 풀어버려 값을 더 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난지도의 밭 4천평에서 땅콩과 낙화생 농사를 짓던 이씨는 10년전에 축산으로 전업했다.  정부가 자신의 농토를 쓰레기장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처음 한우 13마리로 시작해서 지금은 43마리로 늘렸다.  매년 1천만원씩을 투자한 덕분이다.  그는 3~4개월 동안 송아지 10마리를 마리당 1백45만~1백50만원에 사와 10개월 후에 2백만~2백10만원을 받고 출하한다.  사료대, 볏짚대, 약값을 제하고 마리당 월평균수익은 1만5천원선.  88년 정부가 쇠고기수입을 재개하기 전에는 마리당 월평균수익이 2만~2만5천원선이었다.  10개월 단위로 40마리를 출하하면 6백만원이 떨어진다.  월평균 6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이씨는 이 돈으로 다섯 식구가 최저수준의 생활을 하며 현재1천만원의 사채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쇠고기수입을 쿼터제로 제한하고 있는데 수입쇠고기에 대해 30%의 관세를 매기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관세율을 적용, 쇠고기시장을 완전 개방했을 때, 전국 한우 축산농가의 연간 소득은 2천6백억원이 줄어든다.  전국의 한우가 총 1백50만두이므로 이씨의 연간 소득감소액은 6백90만원이다.  ‘쇠똥만 치울뿐’ 겨우 본전치기 밖에 안된다.  쇠고기 국내가격은 국제가격의 2.6배다.  쇠고기 보조총액은 수입제한으로 인한 가격지지 5천5백74억원 등을 포함, 총생산액의 79%를 차지하고 있다.  이씨의 1년 수입 7백20만원 중 5백70만원은 정부의 보조에 의한 셈이다.

 

“도시 영세인이 되는 수밖에 없겠죠”

UR협상이 앞의 가정대로 타결해 향후 10년 동안 보조금이 50% 수준으로 감축된다면 최씨의 1년 수입 중 40%인 2백90만원이 감소된다.  또 다른 보고서는 1백% 관세를 부과, 쇠고기수입을 자유화할 경우 99년 이후 송아지 생산이 중단될 것으로 예측했다.  89년 현재 한우 축산농가는 65만가구로 호당 평균 2.3두를 키운다.  따라서 이씨보다 규모가 작은 대부분의 한우 축산농가는 소키우기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가격경쟁력이 있는 돼지와 닭의 경우는 타격이 훨씬 덜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UR이 타결돼 쇠고기시장이 전면 개방된다면 축사의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못배우고 사회경험도 없어 전업할래야 할 것이 없어요.  다시금 도시 영세민이 되는 수밖에 없겠지요.”

UR협상 타결로 우리 농촌이 받을 타격은 이렇듯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 회원 96개국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국내 농산물은 국제시세보다 대개는 4~6배, 참깨의 경우는 11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야단법석인가.  우리정부가 정신이 번쩍 든 것은 지난 7월초 UR농산물협상그룹의 드쥬 의장이 초안을 제출한후부터다.  이 안은 미국과 농산물 수출국들인 케언즈그룹의 입장을 거의 반영한 것으로 국내보조·수출보조의 현격한 감축과 모든 비관세조치를 관세상당액으로 전환할 것 등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불과 3~4개월 전부터 정부는 큰일났다 싶어 허둥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어떻게 되겠지’식의 안일한 자세로 일관해왔다.  80년대초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농산물 수출보조금 철폐와 시장개방과 관련한 국제적인 추세에 무관심했던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임기중에 안하면 그만이라는 단견으로 농업문제를 보았다.  농산물 수입자유화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라서 진상을 농민에게 알려 대비케 하기는커녕, 행여나 국민이 알까 쉬쉬하기에 바빴다.

쇠고기수입 문제만 해도 처음 미국이 요구한 것은 호텔용 고급 쇠고기였다.  그러나 고급쇠고기 수입을 대통령선거ㆍ국회의원선거 후로 미루기에 급급했던 우리정부는 약점을 잡혀 선거 후에는 일반음식용 쇠고기까지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하면 농가소득 매년 5조4천역원 감소

정부가 UR에 대해 어느정도 나태했는지는 농림수산부의 자세에서 엿볼 수 있다.  국단위인 농업협력통상관실이 생긴 것이 불과 6개월전.  그전에는 과단위인 국제협력담당관실 사무관 한사람이 UR을 담당했는데 그나마 4년동안 8번이나 바꿨다.  아예 전문인력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88년에야 GATT에 농무관을 파견했고 UR협상 초기에는 주무부서인 농림수산부 관리는 참석조차 안했다.  농업과 무관한 외무부관리가 대충 참석했던 것이다.


만약 현행관세로 농산물시장을 완전개방했을 때 매년 5조4천억원의 농촌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UR협상이 애초에 우려했던 수준으로 타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이 EC의 입장을 많이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하는 전망인 것이다.  반면 정부가 시장개방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비교역(NTC)대상품목으로 선정한 쌀 보리 콩 쇠고기 등 15개품목은 쌀만 고려의 대상이 될 뿐, 협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UR협상이 국내외 가격차액을 관세로 부과하고 10년 후 그 관세의 50%를 감축하는 것으로 타결될 때 매년 3조원 정도의 손실이 날것으로 농촌경제연구원은 추정했다.  88년 현재 1백82만 농가의 총소득 14조8천억원 중 농업소득은 60%인 8조9천6백억원.  10년 후가 되면 전체 농가의 농업소득 3분의1이 날아가버린다.  즉 가구당 소득 1백65만원이 줄어들어 현재 농외소득을 포함한 총소득의 80% 수준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대책은 없는가.  있다.  아니 살길이 반드시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개방화가 피할 수 없는 국제추세라면 패배의식에서 빨리 벗어나 정면 대결해야 한다.  늦었지만 차분히 2000년대의 농업을 조망하고 획기적인 투자를 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기도 하다.  단국대 장원석 교수(농경제학)는 농업부문예산을 대폭 증액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농업이 국민총생산액(GNP)에 기여하는 비중은 11%이고 농민은 전국민의 16%인데 총예산 중 농업부문예산이 7%를  넘은 해가 한번도 없었다.  또 선진국의 농업생산액에 대한 농업관계 예산액이 22~32% 수준인 데 비해 우리는 7~11% 수준에 그쳐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농산물의 수익금 전부를 피해농민들에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농업전문가들은 농산물의 생산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력있는 품목의 생산과 수출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품목에는 돼지 계란 육계 사과 단감 밤 양파 산채 그리고 화훼와 버섯류 등이 포함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이재욱 국제농업실장은 “이같은 전략품목에 대해서는 생산기술 개발과 기반조성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해외시장 개척에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농업보조금은 어떠한 형태로든 감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사회복지정책의 확충을 통해 농민의 실질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업보조가 아닌 다른 형태로 보조한다는 말이다.

 

정부는 신뢰회복부터

농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신의 문제다.  정부는 비전을 제시하기 앞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신뢰회복은 지난날의 실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간 정부의 말을 잘 따랐으나 앞으로 그렇게는 안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우리주장을 할 것이다”라고 김제의 한 평범한 농민은 말한다.  이런 농민의 소리와 함께 전국농민연합회 등 재야단체에 가입하는 농민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자가 만나본 농민들은 하나같이 농사를 자식대에까지는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절하다시피 해서 차로 모셔와야 할 정도’로 우리 농촌은 사람 구하기가 힘든 형국이다.  산업화에 따라 농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골치아픈 농촌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농지면적과 농민수를 줄이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천만이 아닐 수 없다.  쓰러져가는 우리 농업을 되살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탈진해 있는 농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앞으로 농촌에서도 살만 하겠구나’하는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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