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서 돈벌자” 중국교포 100만 대기
  • 글 · 정희상 기자 / 사진 · 이상철 기자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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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루트 ‘연변-威海-인천’…거의 불법취업

“내가 길림성에 확보해둔 교포가  2백명쯤 된다. 물 좋은 애들 많으니 연락처만 가르쳐 달라.”

 중국교포를 실어나르는 위동해운 소속 한중 연락선 골든브리지호가 인천항에 도착하던 지난 1월 17일 오후 1시경. 이곳 국제여객터미널 청사 앞에서는 장고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50대 후반쯤의 남자(여관업자, 서울 신정동)가 ‘고객’과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고객이란 입국하는 교포를 상대로 사람을 구하려고 직접 인천항을 찾은 국내 업자들. 서울 마포에서 다방을 경영한다는 30대 남자와 경기도 화성에서 왔다는 농장주 김모씨, 안산에 있는 가스충전업소 사장 이모씨 등이 교포인력 브로커 장고문 곁에서 열심히 설명을 듣다가 이따금씩 메모지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같은 시각 터미널 앞 주차장에는 서울 · 경기 · 충청 등지의 번호판을 단 봉고차 10여대가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주)○○산업 등과 같이 버젓이 업체 이름이 적힌 차량도 있었다. 이윽고 배가 도착한 오후 1시 30분경, 입국심사대를 통해 교포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자 마중나온 친지, 브로커, 업주들이 뒤섞여 터미널은 이내 북새통을 이루었다.

 “친척을 만나고 돈벌러 왔다. 한국에서 1년만 벌면 돌아가서 10년은 편히 살 수 있다.”(흑룡강성에서 온 김욱씨(38))

 “부두에 들어오면서 보니 같은 조선말이어도 한국말은 영어가 많이 들어갔는지 리해가 잘 안된다. 서울역으로 가서 먼저 온 교포들에게 한국실정을 들어보고 돈벌이를 하겠다.”(심양에서 온 전성렬씨(38)부부)

 “항구에서 본 풍경은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울 이모집에 들려 일자리를 방조(도움)받겠다.”(길림성에서 온 김모씨(32 · 여))

한결같은 소망은 ‘돈벌이’
 저마다 모국에 대한 첫소감은 달랐지만 그들의 기대는 한결같이 돈벌이에 있었다. 도착한 교포들은 삼삼오오 마중나온 친지를 따라나서거나 이미 계약을 하고 온 듯 대기하던 봉고차를 타고 무리를 지어 빠져나갔다. 곳곳에 사복차림을 한 인천시경 외사과 형사들이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단속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형사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브로커들은 인신매매범으로 몰릴까봐 이 안에 차를 안댄다. 여기는 단속이 심하므로 별 문제 없다. 서울역쪽으로 가 봐라.”

 그러나 그는 브로커들이 업체 이름이 적힌 봉고차에 젊은 교포들을 태우고 나간 일에 대해서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사실 중국서부터 내국인과 짜고 들어오는데 산업체 관계자나 브로커들이 친지로 가장하면 우리도 별 도리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골든브리지호가 첫 취항한 90년 9월15일부터 올 1월 14일까지 16개월간 이 배를 이용한 입국자수는 5만9백53명. 이 중 70%정도인 3만5천여명이 중국교포들이라는 것이 위동해운 관계자의 설명이다. 반면 출국자 3만9천명 중 중국교포는 절반정도인 2만명 수준이다. 결국 이 배를 이용한 중국교포 입국자만도 1만5천여명이 국내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일단 입국한 대부분의 교포에게 한국은 엘도라도(황금의 理想鄕)이다. 그들은 중국과 한국의 환차익으로 엄청난 부를 손쉽게 누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국내 곳곳에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지난해 4월 입국해 10개월째 서울의 주택건설현장을 전전해 왔다는 중국 심양 출신 교포 김원식씨(43)의 계산법을 들어보면 왜 교포들이 불법체류까지 마다하지 않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보통 일반 노동자가 월 2백원~3백원씩 받는다. 한국돈으로 치면 4만원에서 5만원 사이이다. 교포가 한국에서 월 50만원을 벌면 중국에서 1년간 받는 보수와 맞먹는다.”

한국에서 한달 일하면 중국의 1년치 벌어
 이런 실정 때문에 국내에는 어느새 중국교포 인력시장이 형성됐다. 서울역 지하도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는 하루 평균 5백명 정도의 중국교포가 몰려들어 직업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을 사줄 국내 업자를 찾는다.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역 지하도는 북적대는 3백여명의 중국교포들로 인해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직업 소개를 받는가 하면 공사장에서 사람을 구하러 온 한국인니 서성대면 “일할 사람 구하러 왔느냐” “일당은 얼마 주느냐”며 말을 걸곤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따금씩 계약이 성립됐는지 작업복 차림의 구인자들을 따라 빠져나가는 교포들도 있었다.

 4개월 전 중국 장춘에서 왔다는 이옥춘씨(33)는 그동안 경기도 평택 소재 모 화학약품제조 공장에서 숙식 제공에 월 30만원씩 받고 일하다가 보수가 적은 것 같아 그만둔 뒤 서울역을 찾았다며 요즘 서울역 교포 인력시장 실태를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는 얼마 전부터 한국에 가면 서울역으로 가라는 말이 퍼져 있다. 그래서 인천항에 내린 교포들 중 친척집에도 안들리고 곧바로 이곳에 오는 사람도 많다. 우리 같은 젊은 남자들은 공사장 일을 원한다. 일당이 3만원 이상이므로 몇달만 고생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여자들은 주로 식당이나 다방, 파출부로 나간다. 보통 월 45만원에서 50만원정도 받는다.”

 6개월 전 중국 길림성에서 들어와 종로의 모 식당에서 일하다가 마침 쉬는 날이라서 고향 친구를 만나러 서울역에 나왔다는 또 다른 여자교포 이모씨(32)는 교포 인력시장에서 벌어지는 좋지 못한 현상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한국에 온 것이 후회된다. 월 40만원씩 받고 식당에서 밥짓는 일을 하는데 남자들이 너무 지분거린다. 희롱을 하는 것은 예사고 월급을 더 줄테니 좋은 데로 가자는 사람도 있다. 같이 온 친구들 중에 그런 꾐에 빠져 ‘그렇고 그런 데’로 옮긴 경우도 몇명 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다 알면서 왜 묻느냐”고 빤히 쳐다본다.

 이에 대해 남대문경찰서 외사계 당직 형사는 “단속을 하고 있으므로 교포들이 유흥업소로 빠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 관내에서는 아직 사건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15분 뒤인 이날 오후 1시경 서울역 지하도에서는 그 경찰의 자신감을 여지없이 뒤엎는 일이 벌어졌다. 흑룡강성에서 왔다는 이모양(23)이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차림으로 서성대고 있자 중년의 다방업자가 접근했다.

 그녀는 자신이 강남 양재다방에서 석달 동안 일했다고 소개하면서 같이 온 일행 3명을 함 께 써달라고 주문했다. 다방업자는 마음에 들었는지 보수를 흥정하기 시작했다.

여성은 인신매매범 꾐에 빠지기 쉬워
 이때 곁에서 기자와 함께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하늘색 파카차림의 30대 남자가 끼여들었다. 그는 다방업자를 잠깐 보자며 저만치로 데려갔다. 파카차림의 남자가 교포여성들을 술집, 다방 등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꾼이 아닐까 하는 직감은 얼마후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름 황의남, 나이 37세인 문제의 인신매매 브로커는 술집경영자로 행세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나온 교포여자를 직접 상대하면 믿을 만한 물건 못 구한다. 내 소개 받으라. 내가 서울 술집, 다방 같은 데 안대준 곳이 없다. 여자는 얼마든지 대기시켜두고 있다. 나이별, 생김새별로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대주겠다. 소개비는 1인당 10만원씩 내라. 좀처지는(못생긴) 여자는 5만원만 내라. 써 보고 물건 좋으면 나중에 사례를 해달라. 다 그렇게 한다. 다방이나 술집이라면 경험자보다는 하이가시(초보자)를 대주겠다. 손님은 하이가시를 좋아한다.”

 황씨가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서울역에 나오는 일부 여자교포 뒤에는 교포건달들이 있다고 한다. 황씨는 그들과 손잡고 유흥업소 등에 얼마든지 인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비단 ‘사람장사’뿐만이 아니라 웅담 사향 녹용 고급 모피류 따위를 갖춰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오퍼상을 등록해두고 사장 노릇을 한다고 했다. 기자가 허술한 술집경영주쯤으로 보였는지 그는 “같이 손잡고 일해보자”며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수첩을 꺼내 자기가 거래한다는 ‘거물’들 명함, 영업 기법, ‘물건’이 오가는 장소, 약속 일정 등을 자랑스레 늘어놓고는 삐삐번호를 적어준 뒤 시청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같은 사례에 대해 경찰청 외사과장 김병준 총경의 답변은 이러하다.

 “그런 일이 더러 있을 것으로 안다. 경찰 입장에서는 치안측면에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 몇몇 사건을 적발했고, 서비스업 중심으로 단속을 폈지만 중국교포와 내국 여자는 구별이 잘 안된다. 조만간 다시 국내 유흥업소를 상대로 불법 취업과 유인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도록 하겠다.”

 물론 중국교포들의 대거 입국으로 인한 문제점이 비단 국내 범죄조직 또는 개인과 연결된 인신매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법적으로는 중국교포의 국내취업이 엄연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 불법취업이 당국에 의해 묵인되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어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

한국인 악덕 업주에게 임금 떼이기도
 서울역 교포인력시장에서 만난 김원식씨(43)는 지난해 4월 중국 심양에서 들어왔다. 그는 중국에서 20년간 트럭을 몰았다. 그러나 불법취업을 해야 하는 그에게 운전기술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주)○○토건. 마포에서 건축공사 일을 석달 보름 동안 한 그는 3개월 월급만 받고 보름 치는 떼인 채 쫓겨났다.

 “내 경우는 아무것도 아닌 편이다. 중국에서 같이 온 내 친구 전광훈씨(39)는 건설현장에서 3개월 일해주고도 월급을 고스란히 떼여 요즘 실의에 빠져있다.”

 이에 대해 김씨가 일했다는 (주)○○토건 조모 현장소장은 “깜빡 잊었다. 바로 지급해 주겠다”며 사실상 그런 일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김씨의 경우처럼 교포들이 일부 악덕업주에게 사기당하는 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교포들은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불법취업자라는 굴레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할 엄두도 못내고 쓰라린 마음으로 ‘反韓 감정’만 키워가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일단 별문제 없이 취업해 있더라도 만약 돌발사태를 맞으면 교포는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태이다. 지난해 10월 노원구 중계동에서 아파트 건설인부로 일한던 흑룡강성 교포 최모씨(28)가 그런 일을 겪은 경우이다. 최씨는 7층 공사현장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서 무릎뼈가 부서졌다. 그러나 불법취업이라는 이유로 산재혜택도 못받고 그간 모은 3백여만원을 병원비로 날린 채 불구의 몸으로 퇴원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없이 교포들의 대량 입국과 불법체류, 불법취업 관행은 이제 우리사회의 한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외부무 교민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 국내 체류 중국교포 문제는 현지에서 입국 대기중인 1백만여명의 교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고 한다. 한중수교만 이뤄지면 더욱 완화된 절차를 통해 1백만명의 교포가 한꺼번에 몰려들 것이고 그때 발생할 사회문제는 엄청나리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의 중국교포 인력시장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사건이 생겨 신고되는 경우만 강제출국 등으로 다루겠다는 태도이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국의 한 관계자는 “교포들은 30일 비자로 입국하지만 대부분이 체류연장신청을 한다. 여러달 동안 불법체류를 해도 벌금 10만원 정도만 물면 되기 때문에 벌어서 벌금을 물지언정 기한 내에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정부는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국내 제조업, 건설업계의 인력난과 한중수교를 앞두고 지나치게 중국정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자세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북방정책의 결과로 내한한 중국교포들에게 엄격한 법적용을 할 경우 모처럼 한국에 관심을 돌린 교포들이 자칫 반한감정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로도 내한 교포들의 반한감정 파고는 결코 낮지 않다. “돈벌이를 위해 교포들이 많이 들어온 것도 결국은 한국정부의 ‘유도’와 ‘묵인’이 조장한 결과이므로 한국정부가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어느 교포의 항변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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