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조선족, 한국선 중국인” 임금차별 호소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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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국하거나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교포의 대부분은 중국땅에서 태어난 2세들이다.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이들은 시기적으로 1949년 중국혁명 전후에 주로 태어나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문화대혁명 등 굵직한 역사적 격변을 거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모국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이질적인 자본주의사회인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의 눈에는 생소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은 것 같다.

  서울역 교포 인력시장에서 만난 교포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발전과 경제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문화적 이질감을 호소했다.

  “원래 조선민족은 중국에서도 예의범절 바르기로 소문난 민족인데 왜 한국남자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여자를 벌건 대낮에 희롱하려 드는지 모르겠다.”(식당에서 일하는 최금화씨(여.33)

  “공사판에 나가면서 용산역 근처 여인숙에 방을 얻어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매일같이 여자를 불러주고 돈을 받으려 한다. 너무 낯설고 좋지 않은 풍습이다.”(흑룡강성에서 온 육덕환씨(38))

  “남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중국에서는 못보던 일이다.”(심양에서 온 김원식씨(43))

  물론 이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을 다 경험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역 용산역 근처의 싸구려 여인숙촌이나 동대문구 창신동, 미아리 같은 달동네에 기거하며 일터에 나간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장만을 많이 접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그동안 성장의 뒤안에서 우리 사회에 함께 기생해온 문제들을 비교적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나아가 중국사회에서 소수민족의 설움을 딛고 살아온 이들의 민족전통에 대한 긍지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조선족이라는 자부심과 사회주의 중국사회에서 몸에 밴 평등개념은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국인보다 싼 임금으로 고용하려는 국내업계 현실이 그들의 눈에는‘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중국서는 조선족이라고 차별하더니 여기 오니까 중국인이라고 차별하는데 도대체 우리가 설 곳은 어디냐”고 한 어느 교포의 항변은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생활을 비교적 오래 해본 교포들은 좀더 본질적인 우리 사회의 아픈 문제들에 관해 기자에게 날카롭게 질문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TV를 보니까 농민이 탐스런 무를 갈아엎고 벼를 태우던데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가?”

  “정주영씨가 개인재산이 4조원이라고 발표할 때 전세금 2백만원이 없어서 자살했다는 사람이 있다고 신문에 났는데 국가가 그걸 가만히 놔두나?”

  사회주의 중국 시민의 잣대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의문으로 모아지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중국정부가 그러듯이 한국정부도 교포들에게 일자리를 배정해줬으면 하는 ‘엉뚱한’주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들은 한국생활에 적응하면서 애초에 가지고 왔던 막연한 환상들을 하나씩 깨어버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결과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발전한 한국경제의 저력을 배워 조선족 교포사회의 번영을 위해 쓰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많이 자리잡아가는 추세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단순노동으로 많은 돈을 벌어도 결국 중국에 돌아가면 조선족의 발전에 쓰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한국인들이 민족애에 입각해 지원해줄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어쨌든 이제 중국교포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민족분단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우리에게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활하다 온 이들 중국교포가 단순한 노동력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그들의 사고와 생활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앞으로 남북교류가 진전될 때 북한 주민들을 이해하기 위한 예행연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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