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제 유럽과 손잡아야”
  • 편집국 ()
  • 승인 199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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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초청으로 내한한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은 4박5일간의 서울 체류기간 (10월18일~22일) 중 둘째날인 10월19일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아 盧泰愚 대통령과 1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그 면담록이다.

노태우 대통령 : 이번에 처음으로 방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귀하의 방한을 환영합니다.

시라크 시장 : 방한단을 대표하여 각하의 각별한 환대에 감사합니다.

노대통령 : 오늘 아침 판문점을 시찰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방문소감은 어떻습니까?

시라크 시장 : 판문점 시찰을 통해 받은 인상은 독일통일 전 베를린장벽을 보고 느낀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다른 점은 판문점 주위 경관이 베를린장벽 주위보다 아름답다는 점입니다.  판문점에서 볼 수 있는 남북한 대결상황은 계속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개인적 견해이지만 북한사회의 폐쇄성과 고립상태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대북방 외교적 노력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대통령 : 본인도 똑 같은 생각으로, 북한사회의 개방을 위해 노력중입니다.  판문점으로 상징되는 남북한 휴전선은 세계에서 유일한 냉전의 잔재입니다.  오늘(10월19일) 오후 우리나라 총리 일행이 평양에서 북한측 총리와의 회담을 마치고 판문점을 경유하여 서울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한국이 분단상황은 독일의 통일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언젠가는 독일처럼 통일이 될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통일을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국통일에 대해 낙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지금까지 우리의 한반도 평화정착 및 통일기반 조성노력을 성원해준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시라크 시장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정치가와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이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남북한 대결상황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놀라운 속도의 세계 변화 속에서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대통령 : 본인은 파리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리는 프랑스의 역사 정치 문화 경제가 결집되어 있는 매우 오랜 도시이지만, 방문할 때마다 그 다양성과 ‘자유’의 분위기를 항상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시라크 시장께서는 한국을 처음 방문, 판문점 시찰 및 《시사저널》주최 모임에서의 연설 등을 통해 한국인과 친교를 나누고 계시는데, 앞으로 정신적으로 서울사람이 되어 양국간의 우호증진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시라크 시장 : 유럽, 특히 프랑스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장된 역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성장에 따라 정치적 비중이 증대되었으며, 만일 남북한이 통일되면 7천만의 인구를 가진 강한 국가가 될 것이므로 프랑스는 한국을 장래의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외교면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한ㆍ소관계에 관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노대통령 : 한국에 대한 평가에 감사합니다.  한국의 정치ㆍ경제적 역할이 커진 만큼 그에 상응하는 국내외적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남북한관계에서는 긴장완화를 이루어 남북한간의 동질성을 회복,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입니다.  한국은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를 오랫동안 추진하였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여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북방정책을 채택, 북한의 지원세력인 사회주의국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노력을 전개하였습니다.  우리의 북방정책과 동유럽의 급속한 변화가 상승작용을하여 북방정책은 커다란 성과를 올렸습니다.  소련은 얼마 전까지 북한의 가장 중요한 지원세력이었으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개방ㆍ개혁정책을 추구, 대외적으로 신사고를 적용하여 동ㆍ서관계를 변화시키는 등 소련사회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와 같은 소련의 정책변화가 우리의 북방정책과 부합된 것입니다.  서울올림픽 이후 소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증대되었고, 마침내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ㆍ소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본 후 소련이 추구하는 개방ㆍ개혁정책과 우리의 북방정책은 이해를 같이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삼으려는 소련의 의도가 작용하여 수교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보게 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지난 9월30일 한ㆍ소 외무장관이 수교문서에 정식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시라크 시장 : 한ㆍ중관계 전망에 관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노대통령 : 중국과의 수교는 소련과의 관계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과는 얼마 전부터 민간차원의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화 체육 학술 면에서도 광범한 교류가 있습니다.  지난 9월 북경에서 열렸던 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한ㆍ중간에는 무역대표부가 설치될 예정이며 내일(10월20일) 양측 대표간의 협정서명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수교시기를 미루고 있으나 머지않아 양국이 공식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라크 시장 : 한국은 북경아시아대회를 위하여 중국에 대해 많은 지원을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요.

노대통령 : 우리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게임을 주최한 바 있어 경기운영ㆍ시설면에서 우리가 축적한 경험을 중국측에 전수하였으며 중국이 필요로 하는 차량 및 스포츠용품을 제공한 바 있습니다.

시라크 시장 : 한ㆍ미 안보관계에 관련된 문제인데, 유럽 주둔 미군이 대폭 감축된 데 이어 한국에서도 미군이 상당부분 감축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한ㆍ미 안보협력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노대통령 : 한ㆍ미방위조약의 연혁을 살펴보면 1950년 한국전쟁 발발시 유엔 안보리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의한 바 있습니다.  54년 한ㆍ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한반도에서 다시 6ㆍ25전쟁 같은 열전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자유세계의 최전선을 지키는 전략개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동서화해의 기운이 일어나 유럽에서 미ㆍ소의 주둔병력이 대폭 감축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은 유럽정세와는 상이한 면이 있습니다.  북한은 최근에도 계속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으며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합쳐도 북한 군사력의 70%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한미군 감축문제는 북한의 군사력과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점차 군사적 대치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유럽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동북아 정세에도 영향을 끼칠 것인바, 소련ㆍ동유럽의 변화에 비추어 나토 및 바르샤바조약기구 관계 등 향후 동ㆍ서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시라크 시장 : 동유럽의 변화는 동ㆍ서경제에서 소련의 실패를 의미하며 동유럽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동유럽의 서유럽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은 사라졌습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ㆍ서간의 데탕트가 확실히 정착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소련 특히 러시아공화국은 최강의 군사대국이며 아직도 가공할 전략무기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엔나 군축회의에서 재래식 무기에 대해 감축합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소련에 유리한 합의였습니다.  소련은 양적인 무기감축을 통해 질적인 면에서 좀더 우세한 무기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자유세계에 위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유럽정세에 관해 전반적으로 낙관하고있지만 소련의 위협에 대해서 항시 유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 : 소련의 내부정세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라크 시장 : 본인은 고르바초프가 소련내 공화국들을 독립시킬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공화국들의 독립 움직임이 강하고 두번째는 모든 공화국을 유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군사력이 러시아공화국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소련으로서는 러시아공화국만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서방으로부터는 민주주의의 미명 아래 돈을 끌어들여 소련경제를 회복시키려 할 것이며 우크라이나공화국마저도 독립시킬 것입니다.  프랑스는 많은 국유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를 민영화하여 정부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는바, 소련도 국유재산을 처분하여 정부재정을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얼마 동안 권좌에 머무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프랑스는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 일본 등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나 이들과의 특수관계 외에 유럽공동체와의 관계도 추가시켜주기를 요망합니다.

노대통령 : 귀하의 요망사항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본인은 작년 유럽 여러나라 지도자들과 한국·유럽공동체 관계의 심화, 확대방안을 협의하였으며 이를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한국은 단기간내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발전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을 안고 있습니다.  즉 계층간격차ㆍ노사문제ㆍ지역감정 등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모처럼 이룩한 발전이 허사로 돌아가 중남미처럼 퇴보의 길을 갈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최근 이런 문제를 척결하기 위하여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선언 등 갖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바, 프랑스를 포함 우방국들이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해주기 바랍니다.  과거에 한국이 미국ㆍ일본 일변도의 관계를 맺어온 것이 사실이나 앞으로 유럽과도 이에 상응하는 동반자관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라크 시장 : 한국을 중남미와 비교하신 것은 잘못된 비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국민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계획하고 있는 고속전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속전철 문제는 단순한 교역문제가 아니고 양국관계를 가늠하는 정치적 문제입니다.  프랑스의 TGV고속전철은 기술면에서 세계 제일이고 일본 전철보다 좋은 평판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한국에 대해 기술이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결정에 간섭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한국이 유럽전철 도입을 결정할 경우 한국이 유럽을 중시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한ㆍ유럽관계에 커다란 정치적ㆍ심리적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노대통령 : 본인은 프랑스인이 매우 애국심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속전철 건설계획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본인이 작년 유럽순방시 TGV에 시승했을 때 프랑스 관계자들의 열의에 찬 설명 자세에서 잘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전철이 일본의 신칸센보다 기술ㆍ가격ㆍ기술이전 조건 면에서 우수하다는 데 역점을 두어 설명하였습니다.  한국에 설치되는 고속전철은 장차 북으로는 평양~북경~모스크바~파리~런던과 남으로는 도쿄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고속전철에 대한 기초조사를 연내에 마무리짓고 내년에 착공할 예정입니다.  고속전철의 선정은 엄격한 기준을 정하여 공평한 심사를 거쳐서 이루어질 것인바 프랑스 TGV가 좋은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라크 시장 :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노대통령 : 한국인의 친절은 프랑스 키스티용 가문의 친절과 비견되는 바, 귀하의 첫 한국방문이 유익하고 보람된 방문이 되기를 빌며 《시사저널》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시라크 시장 : 대단히 감사합니다.

노대통령 : 귀국하면 미테랑 대통령께 안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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